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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포장마차에서..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포장마차에서..> 1월 5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 (마르 6,34-44)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저희 살레시오회 회원들의 연례피정 기간 동안 ‘사막의 날’이란 행사가 있습니다. 일주일 가운에 하루는 특별한 강의나 다른 프로그램 없이 각자가 알아서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 후에 원장 신부님은 각 사람에게 만 원 짜리 한 장이 든 봉투를 나눠줍니다. 그걸 들고 하루 종일 무작정 걷는 것입니다. 한번은 홀로 들길을 끝도 없이 걸어가다 보니 엄청 배가 고파졌습니다. 아무리 가도 식당이나 가게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그냥 굶어야겠다, 하는 순간 길모퉁이를 돌아서니 포장마차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신년 일출을 구경하려는 연말연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차린 깜짝 포장마차였습니다. 포장마차 안에 들어갔더니 어묵이며 만두며 산더미처럼 쌓여있긴 한데 손님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마음씨 좋게 보이는 주인아저씨 얼굴도 많이 침울했습니다. 사연인즉슨 작년에 딱 3일 장사해서 순수익만 2백만원 벌어 ‘집사람’이 엄청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올해도 큰 기대를 안고 포장마차를 열었는데... 거의 꽝이랍니다. 그래서 사흘 내내 개점휴업 상태에서 홀로 술만 홀짝이고 있답니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 ‘마누라’ 얼굴을 어떻게 봐야 되나 큰 걱정이랍니다. 주인아저씨의 하소연에 딱한 마음도 든 데다 장난끼 까지 발동한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도 사장님은 행복한거유. 집에 들어가면 그래도 누군가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유?” 주인아저씨가 깜짝 놀라면서 제게 묻습니다. “그럼 사장님은 혼자유?” 저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무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다보니 벌써 오래 전에 이혼당했슈. 연초부터 혼자 포장마차 들어온 거 보면 모르겠슈? ㅋㅋㅋ” 제 말 끝에 주인아저씨 아무 말 없이 소주 한 병을 딱 까더니 큰 유리잔에 콸콸 부어주면서 그러는 겁니다. “인생 다 그런거유. 아 그러지 말고 힘내유!” 그러면서 주인아저씨는 생면부지 초면인 제게 자신의 지난 60평생 스토리를 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측은함으로 바라보며 주인아저씨와 저는 소주를 몇 병이나 더 깠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된 아저씨는 “이거 다 공짜니 오늘 마음껏 들라.”고 했고, 저는 “남은 거 이거 다 내가 사갈 테니 안심하라” 고 허풍을 쳤습니다. 꽤나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한 인간의 측은지심이 불러오는 풍요로움과 너그러움을 마음껏 만끽한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힘차게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인기와 매력은 당시 백성들 사이에 대단했습니다. 순식간에 수천수만 명의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오랜 세월 목자 없는 양떼처럼 힘겹게 살아온 군중을 보신 예수님의 시선 역시 측은지심 그 자체였습니다. 가엾은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다니느라 끼니조차 잊고 있는 백성들을 위한 사랑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렇게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는 기적의 배경에는 하느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측은지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는 기적은 곧 도래할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암시합니다. 이 기적의 과정 안에 우리가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전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르 6,42) 예수님께서 베푸신 빵의 기적에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제외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외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차별과 불평등으로 죽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보다 큰 측은지심, 보다 큰 사랑, 보다 큰 너그러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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