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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감동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감동>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한 형제의 강론이 오늘따라 유난히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별이 유난히도 별이 밝다’라는 표현들을 씁니다. 별이 유난히 밝게 보이는 곳이 어딥니까?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닷가나 산속입니다. 산자락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그야말로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하늘입니다. 도심에서 올려다보는 하늘과 바닷가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왜 그리도 차이가 날까요? 시골의 하늘은 도심의 하늘보다 별들의 수효가 더 많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심이건 시골이건 별의 숫자와 밝기는 동일합니다. 도심의 밤은 전깃불로 밝혀져 있는 화려한 밤이기에 별들의 수효가 적게 보입니다. 바닷가의 밤은 아무런 빛이 없는 어두운 밤이기에 별들의 수효가 많아 보입니다.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밤을 느끼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전깃불이 없는 어두운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찬란한 별이자, 구세주 하느님을 뵙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휘황찬란한 곳, 화려한 곳이 아니라 소박하고 가난한 곳으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주변 빛이 화려한 예루살렘에서는 사람들이 구세주의 별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늘 별빛을 예의주시하면서 어둡고 한적한 곳으로 내려간 동방박사들이었기에 구세주의 별빛을 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상징하는 구원의 별이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인도합니다. 그러나 그 별은 우리가 화려한 불빛 속에 머무를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면, 정녕 구세주 하느님을 뵙고 싶다면 화려한 불빛을 떠나서 고요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난함을 선택해야 합니다. 휘황찬란한 샹드리에가 드리워진 화려한 연회 홀에서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는 사람은 결코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감동을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구세주 하느님의 별빛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좀 더 내려가고, 좀 더 비우고, 좀 더 겸손해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의 구유 바로 그 옆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성탄은 빛의 축제입니다. 당연히 기쁨과 환희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그 빛, 기쁨, 환희는 영혼을 위한 것이지 단지 우리의 육체적인 기분을 흥겹게 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닌 것입니다. 일 년에 단 한번 휘황찬란하게 잘 꾸며진 구유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성탄절이 주는 외적인 매력에 휩싸이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 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란 우리 인생의 최종의미를 향해 다시금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한없이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세속적인 모든 재물에서 벗어난 깨끗한 마음의 순수한 황금, 예수님의 삶과 고난에 참여하기 위한 대가로 지불하게 될 이 세상의 모든 행복에 대한 포기로서의 몰약,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위로 향해 곧게 솟아오르는 의지의 유황...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사랑의 헌신보다 그분 마음에 드는 봉헌은 다시 또 없습니다.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우리 가운데 매일 태어나시는 구세주 하느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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