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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삶을 향한 죽음, 순교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삶을 향한 죽음, 순교> 8월 14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마태 19,3-12)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순교자들의 생애, 생각할수록 신비스럽습니다. 보통 사람들 눈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순교자들께서 잠시 지나가는 눈앞의 행복, 눈앞의 이익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참된 행복, 영원한 상급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순교 과정에서의 이루어지는 현실은 끔찍하기만 합니다.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순교자들의 영웅적 순교를 통해 풍성한 에너지를 얻어왔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거룩함의 절정에는 항상 순교자들이 계셨습니다. 하느님 백성들은 순교자들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영웅적 투신에서 새로운 삶의 불꽃을 지피곤 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영원한 삶을 위해 스스로를 죽인 사람들입니다. 순교는 어쩌면 삶을 향한 죽음인 것입니다. 더 큰 삶, 더 큰 인생,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한 현재의 죽음인 것입니다. 순교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는 자신의 순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가장 확실히 참여하게 됩니다. 순교자는 자신의 순교를 통해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2의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역시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종착점은 결국 소멸입니다. 죽음입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절대로 헛된 죽음, 개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활활 불타오른 한 인간의 가장 숭고한 선택이 순교입니다. 사랑 없이 절대로 순교할 수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의 결실이 순교인 것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죽음이 확정되었을 때,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빛났습니다. 사형언도를 받고 난 순교자들은 큰 목소리로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응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예수님의 위로가 순교자들에게 지속적인 격려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의 순교 역시 특별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자신의 눈앞에서 살고 싶어 울부짖던 한 형제를 대신해서 순교당하셨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살고 싶어 울부짖던 그 형제와는 달리 죽고 싶어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콜베 신부님께서 선택한 죽음은 영원히 살기 위한 죽음, 더 큰 행복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수많은 사람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순교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콜베 신부님께서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순교하셨습니다. 콜베 신부님의 모습은 어찌 그리도 착한 목자의 모습을 꼭 빼닮았는지요? 살찐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어린 양 한 마리에 더욱 관심을 지니셨던 착한 목자가 바로 콜베 신부님이셨습니다. 한 인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한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해 죽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위해 죽지 못할 것입니다. 콜베 신부님, 비록 단 한 사람을 위해 순교하셨지만, 어떻게 보면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인 전체를 위해 순교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인류 전체를 위해 순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콜베 신부님의 순교는 더욱 특별하고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이 시대 순교자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저도 과거에 어디가면 순교할 수 있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언제 순교할 기회가 안 오나 간절히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있더군요. 이 시대 순교의 또 다른 얼굴은 희생입니다. 양보입니다. 내려감입니다. 비움입니다. 물러섬입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 영원히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하루되길 바랍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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