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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8/21)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8/21)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투아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또한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대항하여 싸웠다. 1914년에 선종한 비오 10세 교황은 1954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유다 베들레헴 출신으로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내려간 나오미는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는다. 그러나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올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모압 여자인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지내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제1독서).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된다(복음).
    제1독서
    <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 ▥ 룻기의 시작입니다. 1,1.3-6.14ㄴ-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 룻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 줍니다. 모압 땅 친족에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홀로 남은 시어머니 곁에 남을 것인가?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룻은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룻은 자기를 사랑해 줄 사람, 곧 새로운 배우자를 찾아 나서지 않고 자기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을 선택합니다. 나오미와 함께 머물겠다는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룻기는 룻의 동서인 오르파를 비난하지 않으며, 반드시 룻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오르파의 선택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모압 여자였기에, 모압인들이 섬기던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도 룻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합니다. 오르파의 선택은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아들이 없는 과부는 살 길이 막막했기에, 차라리 자기 친족에게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지켜 가기에도 너무나 각박한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타산적으로 삭막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룻은,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이 세상에는 룻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수많은 ‘나오미’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룻의 선택으로 나오미의 생존은 물론, 훗날 다윗 왕조가 탄생하게 됩니다. 오늘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당연한 선택과 결정이라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사랑안에 하느님 사랑이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저녁노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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