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극심한 고통 중에 살아가시는 분들께..>
8월 11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성녀 글라라 동정 기념일
(마태 18,1-5. 10. 12-1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보육원, 상담소, 쉼터, 그룹홈...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시설을 두루 섭렵한 한 아이,
그래서 더 이상 아무도 데려가기를 원치 않는 아이,
더 이상 보낼 곳이 없는 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난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 저 곳 다 다녔기에
각 시설의 특징이나 장단점, 취약점 등을 귀신같이 꿰고 있었습니다.
우선 더 편안한 곳, 우선 지내기 쉬운 곳,
우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곳만 찾다보니
거의 모든 시설을 다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각 시설 담당자들과 통화하면서 그 아이 때문에
사람들 속이 어지간히도 상했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레시오 회원으로서,
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한 살레시오 회원이 ‘맛이 간’ 아이 때문에
고민하고, 속상하고, 배신감 느끼고, 열불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겠다,
돈보스코 성인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저는 틈만 나면 귀에 못이 박히게 형제들에 이런 강조합니다.
“착하고, 말 잘 듣고, 예의바르고, 고분고분한 아이,
우리가 제시한 노선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따르는 아이들은
사실 어디 가든 잘 견뎌낼 것입니다.
예쁘고, 귀엽고, 품에 ‘착’ 안기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깁시다.
우리의 선택은 보다 다루기 힘들고, 보다 ‘맛이 간’ 아이들,
결국 그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는
한 마리 길 잃은 어린 양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십니다.
착한 목자는 건강한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길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는 기쁨을
삶의 최고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착한 목자임을 역설하십니다.
여러분들께서 세 아들을 두셨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걸리고,
밥숟가락 들 때 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아들이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는 일마다 잘 풀려서
제 갈 길을 보란 듯이 걷고 있는 장남을 생각하면
걱정보다는 뿌듯한 마음에 안심될 것입니다.
일찌감치 시작한 외국생활에 익숙해져서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고, 광활하며 청정한 주변 환경 속에
살아가는 차남 역시 생각만 하면 마음이 흐뭇해질 것입니다.
반면에 나이가 찼는데도 아직 결혼도 못하고,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해 전국산천을 떠도는 막내,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은 없는 막내아들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해옵니다.
눈물이 앞섭니다.
오늘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모든 자녀들이 다 소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더 마음이 가는 자녀,
더 기도하게 되는 자녀는 잘 안 풀리는 자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골고루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보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우선적 선택’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사에 잘 풀리는 사람들도 사랑하시지만
우선 눈길이 가는 대상은
길 잃고 방황하는 한 마리 어린 양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입니다.
좌절과 혼동 속에 죽음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끝도 없는 병고로 시달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
너무도 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세속에서의 복락은 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대신에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시는
애틋한 눈길, 각별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저 역시 제 몫을 잘 해내는 아이들, 이제 걱정 없는 아이들보다
덜 떨어진 아이들, 매일 형들에게 ‘치이고’ 부대끼는 꼬맹이들,
어릴 때 못 먹어서 삐쩍 말라빠진 ‘인간 덜 된’ 녀석들에게
훨씬 마음이 갑니다.
한번이라도 더 손길을 주고 싶습니다.
오늘 극심한 고통 중에 살아가는 분들,
지금 이 순간 다시 못 올 길을 걷고 있는 분들,
끔찍한 외로움에 눈물 흘리시는 분들,
십자가가 너무 커서 어쩔 줄 모르는 분들,
부디 힘내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하느님께서 한없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이루 말로 다 표현 못할 ‘짠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제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받지 못할
각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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