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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과 비움 /윤동주

<십자가> - 윤동주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 5. 3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