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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영신적인 사랑
인간의 사랑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두 가지 있는데 영신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두 가지이다. 감성에 의해선 감성적인 사랑이 생기고 의지에 의해선 영신적 사랑이 생기는데, 우리 마음 안에는 이 두 가지 사랑이 번갈아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의 외모와 외적 행동에 끌리게 될시 우리 마음 안에 감정적 애정이 싹트게 되며 그것은 점차로 감정적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감성적 사랑은 결국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기에 고상한 사랑이 아니다.
의지에 의한 영신적 사랑은 감정적으로는 조금도 호감을 가지지 않은 채 순수한 지향으로 이웃의 선을 도모하는 사랑인데, 이것은 자신의 이익이 포기된 사랑이다. 이러한 영신적 사랑은 감성의 사랑보다 우위에 있으며 우리를 피조물에 대해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영신적 사랑은 의지와 이성의 지배하에 있는데, 이 이성은 신앙으로 길들여진 이성이고 의지는 선을 생각게 하는 의지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본성에 기쁨을 주고 애착을 가지게 하는 것들에서 보호해 준다. 영신적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과 친밀감을 가지게 할 수 있다.
하느님께 나아감에 있어서 왜 이러한 순수 영신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 그에 대해 십자가의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피조물에 대한 애념, 애집을 지닐 시 그 피조물과 같아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왜냐면 사랑이란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를 서로 닮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가지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 안에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과 닮게 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성인은 의지의 정화를 제시한다.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는데 이 의지는 선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은 상반하는 것이기에 이 두 사랑은 한 의지 안에 공존할 수 없다고 성인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지향하려면 의지를 정화시켜야 한다.4) 하느님과 합일하려는 영혼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욕구와 집착을 벗어 던지고 하느님만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성녀 자신도 주님을 사랑하는데 써야할 의지의 힘을 지나친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감소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녀는 순수 영신적인 사랑에 대해 여러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사랑의 시작에 대해 성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차이점, 이승과 저승의 차이점을 올바르게 인식할 때 우리가 맺는 피조물과의 사랑, 창조주와의 사랑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영신적 사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에 취한 영혼이 이 세상 것을 이탈하고 하느님 안에 흡수되어 단지 주어진 행복만을 즐기는 것 외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사랑이 진실한 사랑일 경우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힘이 외부에 나타난다. 영혼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식하고, 사랑하게 하고 싶다는 격렬한 정렬로 끌려가고 있다. 성녀에게 있어서 철저한 사랑이란 "내적 기쁨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거나 때로는 위안을 찾는 상냥하고 감미로운 감정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용기와 겸손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느님께 대한 관심은 다른 영혼들을 향해 눈을 돌린다.
그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찬미를 드리는 것임을 성녀는 보았던 것이다. 성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혼들을 구하고자 하는 무한한 원의는 하느님이 합당하게 찬미 받으시게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은 참된 사랑에서 당연히 우러나온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신적 사랑을 가진 이가 다른 이를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영혼이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게 하게 위해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때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없어져버릴 것이 아니라 ‘늘 있는 것인’ 타인의 영혼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영신적 사랑은 자신이 아끼는 영혼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고 오직 사랑하는 영혼이 천상의 행복을 실컷 누리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자기들의 손해나 이득에 결코 마음을 쓰지 않으며, 하느님을 더욱더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험에 내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그 애정은 매우 힘드는 것으로서 남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하고, 사소한 선을 위하여서도 천의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랑을 가진 이는 타인의 육체적 매력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서 사랑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잇속이나 만족을 채우기 때문이며 설혹 사랑을 받는다면 그 원인도 주님께서 자기네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기에 사랑을 갚는 것도 주님께 맡겨버린다. 이 사랑이 만족을 찾는다면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으려는 것이다.성녀는 영신적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고, 더없이 정깊은 사랑이며, 예수님의 사랑을 본뜨는 것이라고 한다.
* 순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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