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성소 (Vocation)
1. 성소란 무엇인가?
⑴ 기원: 부르심이란 말은 라틴어 Vocare(동사), Vox(명사)이며, 부르다 외쳐 부르다의 뜻. 구약, 신약 성경에서 보면 부르심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창세 1장),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심(탈출 3장), 사무엘 예언자를 부르심(1사무 3장),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레위, 자캐오를 부르시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역시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⑵ 주체: 하느님께서 부르십니다. ⑶ 원천: 어디에서 음성이 들려오는가? ① 마음 아주 깊은 곳- 성녀 데레사의 ‘영혼의 성’에서 우리 안에 임금님이 거처하시는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② 참자아- 참자아가 있다면 거짓자아도 있는데, 이 거짓자아는 구분만 했을 뿐, 상황에 따라 이중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여러 사람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나의 모습이 거짓된 모습으로 차 있 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은 진짜 나로부터 나오는 것, 이 진실한 나의 모습, 참자아는 하느님 목소리의 원천이 됩니다. ③ 양심- 양심으로부터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있는 내면의 기준입니다. 모든 양심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고, 양심이 무디어지면 잘 안 들리게 되므로 양심을 올바르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⑷ 목적: 왜 우리를 부르시는가?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합일(일치)을 위해, 우리의 성화를 위해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 하셨을 때, 그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것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신화(Deification)에로 부르심_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것으로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비슷해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을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성화, 신화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되는가? 마음의 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환경이나 다른 외부, 내적인 영향으로 변질되어 하느님께로 부터 멀어지는 죄를 짓게 되는데, 마음으로부터 전적으로 변화되면 행동까지 달라집니다. 테드 윌리암스는 전직 앵커였는데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과 직장을 잃고 거지로 살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천상의 선물이 있다. 그것은 목소리이다.”라고 했는데, 이 좋은 목소리가 유명해졌고, 이를 안 이들이 방송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회개를 하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갖고 일을 했지만 또 술을 마시게 됐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릅니다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는 변하기 어려운가 라는 것입니다. 에제키엘서(에제 11,19)에서 보면 “......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에게 내립니다. 우리는 변하기 어려운 이 마음을 바꾸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노력도 필 요하지만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여러 가지 시련, 고통, 상처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잘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결국 최종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부르심입니다. 이는 사랑하시는 분과 일치, 나 중심적 삶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2. 부르심에 대한 태도
⑴ 잘 들어야 한다: ① 마음 깊은 곳에서 들린다- 열왕기(1열왕 19,11-12)에서 엘리야는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 속에서도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조용하고 부드러움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시끄러운 삶속에서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묵상과 마음기도를 통해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초심자의 마음입니다. 하느님께 도와주시리라는 겸손한 초심으로 들어갈 때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② 다른 사람들의 쓴 소리- 내가 듣기 싫어하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찔리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무언가 말씀하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③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자연이나 어떤 사건들, 무엇이든지 모든 것을 통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잘 듣는 것입니다.
⑵ 잘 보아야 한다: 시각적 성인들의 시현에서, 또 꿈을 통해서도 보입니다. 성경에서도 꿈을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꿈이 반복된다고 할 때 그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며, 꿈은 무의식에서 꾸는데 무의식에서 반복되는 꿈은 그 꿈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꿈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그 내용들을 적어놓았다가 그 내용들이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주의할 것은 꿈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극단은 피하고 균형 있는 생각이어야 합니다. 3. 식별의 문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아닌지를 식별합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것을 했을 때, 3가지 측면에서 질문해 봅니다. ① 기쁨이 있는가? - 고통스럽고 힘듦 속에서도 마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잔잔한 기쁨이 있습니다. ② 재능, 능력, 가능성이 있는가? - 재속회원으로서 공동체 생활을 할 능력이 있는가, 화합하지 못하고 고집만을 내세운다면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 물론 가능성이 있는가도 보아야 합니다. ③ 공동선, 사람들한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자기 자신이 보는 것보다 객관적인 식별로 공동체에서 식별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한테 내가 하는 봉사가 실질적으로 유익하고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위 3가지가 다 있어야 하고, 공동체에서 식별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 덧붙이면, 우리는 가르멜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회헌에도 식별이 나와 있는데, 단순함, 침묵도 필요하지만 균형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불림을 받았으므로 사도직적 관점에서 기도하면서 활동도 해야 합니다. 내면의 목소리도 들어야 하고 세상현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공동체와 사회적 차원에서도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갈망이 다를까요? 아닙니다. 나의 진정한 모습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다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 삶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성소를 찾을 수 없습니다. ☆ 성소의 3가지 측면 1. 자아 정체성: Who(어떤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 -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왜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셨는지를 알아내어 그 누구가 되어야 합니다. 2. 구체적인 생활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How(어떻게 살아라)고 부르신 것 - 우리는 결혼생활로 부르셨고, 구체적으로 가르멜 성모 재속회로 왔습니다. 3. 구체적인 사명을 내리신다: What(무엇을 하라)고 부르신 것 - 다 똑같은 부르심이 아니라, 다 각자 부르신 사명이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소를 주셨는데, 완성된 상태가 아닌 성소에 씨앗을 심어 주셨고, 보이지는 않지만 자라나고 꽃피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나무가 될 수 있도록, 얼마나 애쓰며 노력해야 함을 알고 기도하며, 주님께 맡겨드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The Power Of Love (사랑의 힘) Vienna Symphonic Orchestra |
'영육간의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억겁을 바라봐도 ... (0) | 2012.02.13 |
|---|---|
| [스크랩] 은밀한 곳까지 뚫고 들어가야 ...... (0) | 2012.02.09 |
| [스크랩] 비움과 버림 (0) | 2012.02.05 |
| [스크랩] 칭찬 10계명 (0) | 2012.02.05 |
| [스크랩] 나의 삶이 늘 정지된 상태가 ..... (0) | 201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