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의 노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어린이의 길>
부산 가르멜 수녀원 역
“데레사 수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길을 가르쳐 주고 싶으세요?” “영적 어린이의 길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신뢰하며 온전히 맡기며 사는 길을 요.”
데레사는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 쯤 어느 날, 병상 곁에서 간호하던 언니 폴리나(예수의 안나 수녀)의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병세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거듭하면서 차츰 악화되었고, 몸이 허약해지면서 일 년 넘도록 엄습해 온 신앙의 시련에 한층 더 시달렸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대합한 이 말은 데레사가 얼마나 “영적 어린이의 길”에 확신을 갖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며 또 그 길을 얼마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는지 잘 드러냅니다. 그럼 이 “영적 어린이의 길”은 어떤 것일까요?
이 길을 살펴보기 위하여 데레사의 자서전 원고 B에 삽입된 <작은 새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원고 B는 요즘 영성 문학에서 주옥같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니 데레사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올해(1997년)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 원고 B의 중요성을 연대순으로 살펴 보기로 합시다.
우선 원고 B는 성심의 마리아 수녀(데레사의 큰언니)의 요청에 따라 1896년 9월에 편지 형식으로 썼습니다. 데레사의 생애에서 영적 생활 중에 1895년이란 해가 두 가지 사건으로 정점을 이루고 있는데, 원고 B는 그 다음 해에 쓴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난해의 두 사건을 더욱 심화시킨 데레사가 자신의 소명 “나의 소명, 그것은 사랑입니다.”를 발견한 모습이 쓰여 있습니다.
1895년의 두 가지 사건이란 “어린이의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발견이라고 해도 이 시기에 갑자기 그 길을 찾아 낸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마음 속에 움트고 있던 것이 꽃을 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삼위일체 대축일에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자신을 봉헌한 것입니다. 또 그 며칠 뒤에는 데레사 생애에서 드문 신비로운 은혜를 받았습니다.(십자가의길을 묵상할 때...)
이에 계속되는 1896년은 데레사 성녀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이고 결핵이 발병된 해입니다. 데레사는 결핵으로 죽어 가면서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최후의 정화, “신앙의 어둔 밤”이 4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원고 B가 이와 같은 심신의 시련 중에 씌여진 것임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원고 B는 데레사에게 마지막이 된 개인 피정 중에 동생이 받은 은혜를 예감한 언니 마리아의 부탁으로 썼다는 사실을 이미 말했습니다. 이 원고에서 데레사는 “마리아 언니가 ‘저의 작은 가르침’에 대해 쓰도록 부탁하셨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그래서 이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원고 B 전체가‘자신의 작은 가르침’을 전할 목적으로 썼다는 말입니다. <작은 새의 이야기>는 원고 B의 마지막 부분에 우화 형식으로 썼는데 데레사가 직접 자신에 관해 표현한 곳은 아마 여기 하나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 작은 새가 말하는 ‘작은 가르침’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그 비밀을 조금이나마 밝혀준다고 생각합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245 - 267 쪽(가톨릭 출판사)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편지」 322 - 331 쪽(분도 출판사)
작은 새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데레사는 자기를 작은 새에 비유하고 독수리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인들을 상징하지만 결국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 작은 새의 특징 있는 자세가 드러납니다. 작은 새는 첫째, 자신의 나약함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나약함을 바탕으로 대담한 신뢰의 자세, 그리고 셋째는 나약함 때문에 떨어지는 어려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작은 새의 이 세 가지 움직임은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약함을 자각함
우선 데레사가 말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온 생애동안 오로지 진리만 찾았습니다.” 이 말대로 자신에 대한 데레사의 눈길에는 거짓도 허위적 겸손도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 데레사는 “충만한 사랑을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평생의 소망을 이루기에는 자신은 너무나 “불완전”하다는 것을 마음깊이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새는 “솜털뿐인 가냘픈 아기 새”였으니 독수리처럼 사랑의 하느님께로 날아가고 싶어도 날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도가니로 날아가 그 속에 잠기고 싶어도 작은 새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날개를 조금 펴보는 게 고작이고 날지는 못합니다. 그건 작은 새의 조그만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날지 못할 바에야 사랑의 대양 아래 머물며 거룩한 태양을 바라보고 있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가련한 작은 새는 여전히 이 지상의 하찮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 “구름에 가리어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을 때, 작은 눈은 자기도 모르게 감기고 작은 머리를 작은 날개 속에 파묻고서 가여운 작은 새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저 태앙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잠들어 버립니다.”
이 상징은 보기에 매우 귀여운 영상이지만, 데레사 살아 온 가르멜 생활을 대강 간추린 것이며, 이 사랑스런 상징 속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숨겨져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선 1986년 4월 이후에 데레사를 괴롭힌 신앙의 시련이 그중 하나입니다. 이 “어둔 터널” 속에 들어 간 데레사에게는 이 신앙의 장벽은 “하늘까지 맞닿은 벽”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는 데레사의 눈길을 가로 막으려고 합니다.
작은 새의 눈을 가리는 “검은 구름” 저편에는 태양이 여전히 빛나고 있고 그 빛은 한 순간도 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작은 새가 말할 때, 거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망,애의 행위가 있습니다. 더구나 데레사는 이 시기에, 수녀원 안에서 공식 직책은 없는 채로 수련자의 수련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작은 마음은 그 꽃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립니다.“ 이는 가냘픈 작은 새가 수련자들을 올바른 수도자로 기르려고 숱한 마음 고생을 하며 싸우는 데레사의 생생한 모습일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엄한 규칙에서 오는 추위와 수면 부족을 작은 새는 ”사랑의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잠들어 버립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현대의 위대한 성인으로 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생전에는 우리와 꼭같은 ‘일상 생활’을 보내면서 그 속에서 비약하지 못하는 무력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뜻에서는 우리보다 더 깊은 무력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데레사와 우리의 다른 점은 데레사는 이 나약함을 자각함으로써 또는 그 자각을 통하여 신뢰와 기쁨에 이른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상생활 가운데서 다른 ‘현실’을 바라본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신뢰
작은 새를 다시 한번 바라봅시다. 작은 새는 자신의 나약함을 보아도 “그것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담하게 완전히 신뢰하면서” 태양을 계속 바라봅니다. 지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갖가지 잘못을 한 뒤에도, 작은 새는 “구석에 숨어서 자신의 가련함을 슬퍼하며 운다든지 죽고 싶다고 후회하지 않고, 그 대신 님이신 태양에게로 돌아서서 젖은 작은 날개를 태양의 깊은 은혜의 빛 앞에 펼칩니다.” 그렇게 하면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더욱 완전히 그 사랑을 끌어 당길 수 있다고 염치없이 믿습니다.” 비록 태양 앞에서 잠들어 버려도 “슬퍼하지 않고 마음은 평화를 잃지 않으며 다시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대담함이 어디서 올까요? 그 설명은 같은 「자서전 B」안에 다음과 같은 내용에 있습니다.“사랑이 완전히 만족스럽게 되려면 낮은 데로 내려가야 합니다. 허무에 까지 내려가서 이 허무를 불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이시고 허무는 인간의 허무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려면 인간은 허무까지 내려가 그 허무를 주님 사랑의 불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데레사 또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자기 허무의 깊은 데까지 낮게 내려가야 높이 높이 드높여져서 마침내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데레사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좋아했는데,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의빈 무덤에 가서 몸을 굽혀 들여 다 보았던 사실을 예수님을 찾아 자기의 깊은 허무가지 내려가는 자기 자신에 견주어 봅니다. 그러므로 작은 새의 이야기 서두에 드러난 데레사의 “충만한 사랑을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려면, 작디작게 되어 허무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거기서 하느님 사랑의 불로 바꾸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신의 불완전함이나 나약함, 작음이 하느님의 사랑을 청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무기가 됩니다. 그 모두가 하느님 앞에 낮게 내려가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작은 새는 자신의 잘못으로 젖은 작은 날개를 한탄하기는커녕 태양의 깊은 은혜의 빛 앞에 맘껏 펼쳐서 말립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작은 새의 자세는 매우 수동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 새는 태양 아래 가만히 머물러 태양을 계속 바라봅니다. 때로는 검은 구름이 작은 새의 눈을 가로 막기에 졸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태양 빛에 그 날개를 펼쳐 자기 불충실을 고백하고 다시 태양 아래 머물러 있습니다.
더구나 앞서 인용한 데레사의 말 (실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시를 인용한 것)대로 데레사는 자기 허무의 깊은 데까지 내려갔기에 “높이 높이 드높여”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이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작은 새는 어디까지나 수동의 자세로 머물러 있고 삼위일체의 사랑의 도가니 속으로 데려다 주는 것은 실은 독수리의 날개입니다. 작은 새는 너무나 무력해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거기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새는 “거룩한 독수리의 날개로 사랑의 태양에까지 날아 갈 은혜”를 청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께서 작은 새를 맞이하러 오시어 함께 사랑의 도가니가지 데려다 주실 것입니다.”고 희망합니다. 독수리의 날개, 그것은 예수님의 힘입니다. 작은 새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아무 것도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작은 새의 ‘할 일’입니다. 언제나 태양 앞에 머물러 있으면서 낮게 낮게 내려가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협력자가 되는 것, 이것이 하느님께 대한 작은 새의 역할이며 참된 ‘고행’이기도 합니다.
기쁨
작은 새가 말하는 기쁨은 특이한 기쁨입니다. 작은 새의 마음이 폭풍우에 휩쓸리게 되고 자신을 덮고 있는 먹구름 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적도 있습니다. 그 때야말로 이 가엾고 나약한 작은 새가 완전한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젖은 날개를 태양에 펼쳐 말리려고 해도 태양이 숨어 있으면 “작은 새는 젖은 채 있습니다. 추위에 얼어붙는 것도 감수하면서 자업자득의 이 괴로움을 또한 기뻐합니다.”
데레사의 이 기쁨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보통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훨씬 초월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에는 대개의 경우 자신의 이익이나 손익이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새가 말하는 기쁨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새에게는 온갖 시련과 거기서 드러나는 자신은 나약함은 하느님 앞에 (작은 자)가 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드높여지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어찌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자기 결점을 한탄하는 수련자에게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기가 나약하고 비참한 자라고 느끼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완전히 공짜로 하느님께 기대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을 굽히시어 아낌없이 당신의 은혜로 채워 주십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채워 주시려고 작은 새의 허무에까지 내려오십니다. 그러나 작은 새의 무력함은 결국 하느님의 자비를 채워주는 가장 큰 그릇이 되어 하느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작은 새는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 것을 기뻐합니다.
맺음
우리가 “영적 어린이의 길‘을 살펴보기 위해 작은 새의 이야기를 예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가난함, 신뢰, 기쁨이라는 작은 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은 새는 자신의 가난함을 더욱 깊이 개달으면서 동시에 크나 큰 신뢰를 지니고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이 신뢰는 희망입니다. 여기서 ’가난함과 희망‘의 역동적 관계가 생겨납니다.
‘영적 어린이의 길’은 가난함과 희망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는 가난함과 희망은 가끔 기회 있을 때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행위의 기초가 되는 근본 자세이며 하느님께 대한 자기 본연의 자세였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하느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한 당신의 작은 새는 언제나 힘도 날개도 없는 채 있겠습니다. 언제나 늘 당신을 바라보고 있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새는 어느 날인가 사랑하는 독수리가 그 날개에 자기를 태워서 사랑의 도가니인 태양에게로 데려다 줄 때를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까야마 마리 씀 부산 가르멜 수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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