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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형제 사티루스의 죽음’에서)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분과 함께 죽도록 합시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형제 사티루스의 죽음’에서 (Lib. 2,40. 41. 46. 47. 132. 133: CSEL 73,270-274. 323-324)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분과 함께 죽도록 합시다
2 내 영혼아 어찌하여 시름에 잠겨 있느냐 *
어찌하여 내 속에서 설레이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
나는 다시 그 님을 찬미하게 되리라 *
내 낯을 살려 주시는 분 내 하느님을.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주여, 당신 사랑 누리에 가득하오니,
 말씀하신 대로 나를 살려 주소서.
제1독서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
15,12-34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희망입니다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13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짓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16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22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4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25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 발 아래 굴복시키셨다.”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굴복시키셨다고 할 때 굴복시키시는 그분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8 이리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당할 때에는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느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

29 그런데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30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살고 있습니까? 31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32 내가 설혹 에페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위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일이라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집니다.” 34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응송:
1고린 15,25-26; 묵시 20,13. 14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하리니, *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이로다.
 죽음과 지옥도 자기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놓고, 죽음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지리라.
 마지막으로.


또는_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
15,35-57
죽은 자들의 부활과 주의 재림

형제 여러분 35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36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37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38 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지어 주시는 것으로 씨앗 하나하나에 각각 알맞은 몸을 주십니다. 39 모든 육체가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동물의 육체가 다르고 새의 육체가 다르고 물고기의 육체가 또 다릅니다. 40 하늘에 속한 것들이 있고 또 땅에 속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들의 영광이 다르고 땅에 속한 것들의 영광도 다릅니다.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르며 또 별과 별 사이에도 그 영광이 다릅니다.

42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43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44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45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영적인 것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영적인 것이 왔습니다. 47 첫째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지만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습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50 형제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어두십시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어 없어질 것은 불멸의 것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51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52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53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54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56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응송:
욥 19,25. 26. 27 참조
 내 구세주 살아 계심을 나는 믿노라. 마지막 날에 나는 땅에서 부활하리라. * 나는 내 두 눈으로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뵈오리라.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 자신이 그분을 뵈올 것이요 내 두 눈이 뵈오리라.
 나는.


또는_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의한 독서
4,16-5,10
지상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게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4,16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17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18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5,1 우리가 들어 있는 지상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워 주시는 집입니다. 2 지금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사는 우리는 옷을 입듯이 하늘에 있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그것을 입으면 벌거숭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4 이 장막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장막을 벗어 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늘의 집을 덧입음으로써 죽음이 생명에게 삼켜져 없어지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5 이런 일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러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7 사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든든하며 오히려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평안히 살기를 원합니다. 9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10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응송:
시편 50(51),5 참조
 주여, 나의 행실대로 심판하지 마옵소서. 주님 대전에 잘한 일이 아무것도 없사오니, 지존하신 어전에 간구하나이다. * 하느님,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나의 불의를 씻어 주시고, 내 죄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소서.
 하느님.
제2독서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형제 사티루스의 죽음’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분과 함께 죽도록 합시다
죽는 것이 이득이고 사는 것은 형벌임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며 죽는 것도 이득이다.” 우리 육신이 죽어야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생의 전부가 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분과 함께 죽도록 합시다. 죽음이라는 별리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육정에서 떨어져 나와 높은 데에 자리잡고 정욕들이 그를 붙잡아 매거나 더럽히지 못하게 되도록, 우리 안에는 매일매일 죽음을 향한 심성과 성향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영혼이 현세부터 죽음의 유사성을 입으면 훗날에 죽음은 그의 형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육의 법은 영의 법을 거슬러 싸워 영혼이 죄의 법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이것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유해 주실 의사가 계십니다. 그분의 치료제를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치료제는 그리스도의 은총이고 죽음의 몸은 우리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 있지 않도록 우리 육신을 멀리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아직 육신 안에 있지만 육신의 일을 따르지 말고 인간 본성이 지닌 권리들을 요구하지 말며 은총의 선물을 요구하도록 합시다.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세상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속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원하기만 하셨다면 죽음을 피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피하여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써가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죽음은 모든 이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분 죽음의 인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그 죽음을 전하며 제사를 바칠 때 그것을 선포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승리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성사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연례적인 세상의 축제입니다.

그분의 죽음에 대해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분의 거룩한 죽음에서 죽음이 불사 불멸을 얻고 죽음이 죽음을 속량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죽음에 대해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멸시하지 않으시고 피하지도 않으신 그런 죽음을 우리가 피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처음에 죽음은 인간 본성의 부분이 아니었다가 후에만 그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물들의 시초부터 죽음을 설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치료제로서 세우셨습니다. 사람이 범한 죄의 책벌로서 인간 삶에 비참한 상태가 시작되어 사람들이 수고와 비애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잃어버린 것을 죽음이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이 모든 고통들이 끝맺어져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사 불멸은 이 은총 없이는 이득보다는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혼은 이 삶의 짓눌림과 지상의 몸이 눌리는 중압에서 해방되어 천상의 집회에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성인들만 거기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예언서가 말하는 칠현금을 타는 이들이 바치는 찬미를 우리도 바칠 것입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시여, 주님의 길은 바르고 참되십니다. 주님,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 누구이오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니 모든 민족이 주님 앞에 와 경배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영혼은 “모든 육신이 당신께로 오리이다.”라는 시편 작가의 말에 따라 노래하는 이들이 기쁨 가운데 지상의 집에서 천상의 집에로 인도되어, 세상에 예속되지 않고 영과 일치된 신부와 예수님과의 혼인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복된 다윗은 누구보다 더 이날을 보게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오직 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당신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그것이외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여, 비오니, 우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당신 성자의 부활을 앎으로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듯이, 죽은 형제들의 부활을 기다림으로 우리의 희망도 굳어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