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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에서)창조물 안에는 지혜의 창조된 모상과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에서 (Oratio 2,78. 79: PG 26,311. 314)
창조물 안에는 지혜의 창조된 모상과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혜서에 의한 독서 7,15-30
지혜는 하느님의 형상이다

27 일어나시어 우리를 도우소서 *
당신 자비 내리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주여, 일어나시어 우리를 도우소서. 당신 자비를 내리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여, 우리가 누구를 찾아가겠나이까?
 주님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고 계시나이다.
제1독서
지혜서에 의한 독서 지혜는 하느님의 형상이다
15 내가 올바로 깨닫고 그대로 말할 수 있게 해주시며
지혜가 가르쳐준 대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하느님께 빈다.
하느님은 바로 지혜의 인도자이시며
현자들의 지도자이시다.
16 우리와 우리의 하는 말이 다 그분의 손에 달렸으며
모든 현명함과 생활의 지혜 또한 그분께 달려 있다.
17 그분은 나에게 만물에 대한 어김없는 지식을 주셔서
세계의 구조와 구성 요소의 힘을 알게 해주셨고
18 시대의 시작과 끝과 중간,
동지, 하지의 구분과 계절의 변화를 알게 해주셨으며
19 해가 바뀌는 것과 별들의 자리를 알게 해주셨고
20 동물들의 성질과 야수들의 본능,
그리고 요귀들의 힘과 인간의 생각,
또 각종 식물들과 그 뿌리의 특성을 알게 해주셨다.
21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의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서
나는 드러나 있는 것은 물론 감추어진 모든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22 지혜 속에 있는 정신은 영리하며 거룩하고,
유일하면서 다양하며 정묘하다.
그리고 민첩하고 명료하며 맑고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며
자비롭고 날카로우며
23 강인하고 은혜로우며 인간에게 빛이 된다.
항구하며 확고하고 동요가 없으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피며
모든 마음과 모든 영리한 자들과
모든 순결한 자들과 가장 정묘한 자들을 꿰뚫어 본다.
24 지혜는 모든 움직임보다 더 빠르며,
순결한 나머지 모든 것을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께서 떨치시는 힘의 바람이며
전능하신 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티없는 빛이다.
그러므로 티끌만한 점 하나라도 지혜를 더럽힐 수 없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찬란한 광채이며
하느님의 활동력을 비쳐 주는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여 주는 형상이다.
27 지혜는 비록 홀로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모든 세대를 통하여 거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하느님의 벗이 되게 하고 예언자가 되게 한다.
28 하느님은 지혜와 더불어 사는 사람만을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태양보다 더 아름다우며 모든 별들을 무색케 하며
햇빛보다도 월등하다.
30 햇빛은 밤이 되면 물러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를 이겨낼 수 있는 악이란 있을 수 없다.
 
제2독서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에서 창조물 안에는 지혜의 창조된 모상과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과 다른 모든 창조물 안에는 지혜의 창조된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만물을 창조하신 참 지혜께서는 창조된 이 형상들을 당신의 것으로 여기시면서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 당신이 지어내신 창조물 안에서 나를 지어내셨다.” 이 말씀에서 주장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즉 인간은 인간의 지혜를 자기 것으로 여기지만, 실상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창조주이신 분이 창조되셨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는 그분의 형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위의 성서 말씀이 흡사 당신에 대해서 일컫는 듯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또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에서도 같은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그분의 모상이 우리 안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창조물 가운데의 하나로 여겨서는 안되지만, 창조물에 주님의 형상과 모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주님 당신 자신인 듯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태초에 만물 안에서 나를 지으셨다.”

그런데 창조물 가운데 지혜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까닭은 세상이 자기 안에서 자신을 지어내신 말씀을 깨닫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가르쳐 주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은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말씀은 본성상 창조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의 성경 구절에서 언급한 지혜는 참으로 우리 안에 있고 또 그렇게 있다고 말해야 할 지혜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단자들이 이런 말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의 다음 질문에 대답하면 좋겠습니다. 창조물 안에 지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면 왜 사도는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에 따라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립니까? 정말 지혜가 없다면 왜 성서는 수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에 대해 말합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근심스레 악을 피한다.” “지혜로써 집을 짓는다.” 성서에는 이와 같은 말이 많습니다.

집회서도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다음의 말로 소심한 자를 나무랍니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 ‘지나간 세월이 지금보다 좋았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창조물 안에 지혜가 있습니다. 시라의 아들은 다음의 말로 그것을 증거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과 모든 인간에게 지혜를 너그러이 내리시고 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풍부히 나누어주신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지혜의 신적 본성이 아닙니다. 그 지혜는 나뉨이 없고 절대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에 새겨진 지혜의 형상입니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지혜와 지식이 그분의 모상과 형상이라면 만물을 창조하시는 지혜 자체께서 다음의 말씀을 하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당신이 지어내신 창조물 안에서 나를 지어 내셨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지혜는 창조자이신 지혜가 아니고 창조물 안에 조성된 지혜입니다. 그 지혜 때문에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 하신 일을 알려 줍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우리에게 신망애 삼덕을 더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계명을 사랑함으로써 당신의 언약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