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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말씀을 전하고 훈계하십시오.”

 

21 주여 그들 속에다 겁을 집어 넣으시와 *
저희가 인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시온의 대문에서 당신의 영광을 전하오리다.
 나를 가르치시어, 당신의 법을 지키게 하소서.
 이 마음 다하여 지키리이다.
제1독서
 
1 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2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목자들에게 그들을 쳐서 이르는 내 말을 전하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망하리라. 양을 돌보아야 할 몸으로 제 몸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3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 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4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우어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 주어야 하며 상처 입은 것은 싸매 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만 못살게 굴었을 뿐이다. 5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 온갖 야수에게 잡아 먹히며 뿔뿔이 흩어졌구나. 6 내 양 떼는 산과 높은 언덕들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다니는 목자 하나 없다.

11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나의 양 떼는 내가 찾아보고 내가 돌보리라. 12 양 떼가 마구 흩어지는 날, 목자가 제 양 떼를 돌보듯이 나는 내 양 떼를 돌보리라. 먹구름이 덮여 어두울지라도 사방 흩어진 곳에서 찾아오리라. 13 뭇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고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모아 들여 본고장으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 이산 저산으로 이끌며 시냇가로 인도하고 사람 사는 땅 어디에서나 기를 것이다. 14 좋은 목장을 찾아 다니며 기르리라.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이 목장이 되면 그들이 좋은 목장에서 쉬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이산 저산에서 기름진 풀을 뜯기도 하리라.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기를 것이요,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쉬게 하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상처 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 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하리라.

23 내가 한 목자를 세워 주겠다. 그는 나의 종 다윗이다. 그가 내 양 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리라. 24 나 주님이 몸소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의 영도자가 되리라. 나 주님이 말하였다. 25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라. 그 땅에서 맹수를 없애리니 사막에서도 안심하고 살 수 있고 숲에서도 편히 잠들 수 있으리라. 26 내가 제때에 내려주는 가랑비, 때맞게 내려주는 소나기가 복을 실어다 주는 비가 되리라. 27 들에 서 있는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출을 내면, 그들은 제 농토를 떠나지 않고 안심하고 지낼 것이다. 메었던 멍에를 부수고 부리던 자의 손에서 구해내 주면, 그제야 그들이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28 다시는 이민족들에게 노략질당하지 아니하고 야수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 위협도 받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29 내가 농사가 잘되게 해주어 다시는 굶주려 죽는 자가 없고 이민족들에게 수치를 겪는 일도 없을 것이다. 30 그제야 사람들은 내가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이요 그들이 나의 백성임을 알게 되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31 너희는 나의 양 떼, 내가 기르는 양 무리요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제2독서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말씀을 전하고 훈계하십시오.”
“너희는 길 잃고 헤매는 것을 찾아 데려오지 않았도다.” 이제 우리는 강도의 손아귀와 잔악한 늑대의 이빨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위험들 앞에서 기도해 주기를 청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들마저 뻣뻣한 상태입니다. 그들이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려 우리가 찾으러 나가면 자기들은 오류와 파국 상태에 빠져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왜 나에게 신경을 쓰는 거요? 왜 나를 찾아 다니오?” 우리가 그들에게 신경을 쓰고 그들을 찾는 이유가 흡사 자기네들이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려서가 아닌 것처럼 대꾸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류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자라면 왜 나에게 신경을 쓰며 찾아 다니는 거요?” 바로 당신이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에 당신을 돌이키고자 하는 것이고 또한 당신이 길을 잃었기 때문에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는 방황하고 싶고 파국 상태로 있고 싶소.”

그렇게도 방황하고 싶어하고 파국 상태에 있고 싶어합니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당신이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솔직히 말합니다. 나는 고집 불통입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말씀을 전하고 훈계하십시오.”라는 사도의 말씀이 내 귀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기회가 좋고 또 누구에게 기회가 나쁘겠습니까? 원하는 이에게는 기회가 좋고 원치 않는 이에게는 기회가 좋지 않습니다. 나로 말한다면 고집 불통이므로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당신은 방황하고 싶어하고 파국 상태에 있고 싶어하지만 나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두려워하는 그분이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내가 만일 그것을 원한다면,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꾸짖으실 것입니다. “너희는 길 잃고 헤매는 것을 찾아 데려오지 않았다.” 내가 그분보다 당신을 더 두려워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헤매는 것을 돌이키고 파국에 처해 있는 것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든 말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을 찾다가 숲 속의 가시 덩굴에 찔린다 해도, 가장 좁은 산길까지 헤치고 들어가, 내가 두려워하는 주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데까지 온 천지를 두루 돌아다닐 것입니다. 나는 헤매는 것을 되돌아오게 하고 파멸 지경에 처해있는 것을 찾아내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귀찮게 구는 것을 견딜 마음이 없다면 헤매지 말고 파멸의 지경에 빠지지 말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당신이 헤매고 파멸에 빠져 드는 것을 볼 때 내가 마음 괴로워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소홀히 한다면 그로 인해 튼튼한 양까지도 파멸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예언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살진 놈을 잡아먹었도다.” 내가 헤매고 파멸 지경에 처해 있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튼튼한 양까지도 헤매고 파멸에 빠져 들지 누가 알겠습니까?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천주여, 당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법의 근본이 된다 하셨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의 정신으로 당신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