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무른 오동나무 거듭 이야기하지만
무거우면 좋은 나무이고 가벼우면 나쁜 나무인 것이 아니다. 가볍고 물러서 싼 것도 아니다. 무른 오동나무는 악기의 울림통을 만들기에 적절하고, 장을 짤 때 서랍 재료로도 요긴하다. 서랍은 힘을 받지 않는 부분이어서 오동나무를 썼다. 약한 나무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 있다. 서랍에 소나무를 쓰면 뒤틀려 수월하게 여닫지 못할 것이고, 단단한 참나무는 겨울철 온돌방에서 갈라진다. - 김민식의《나무의 시간》중에서 - * 옹달샘에도 카페 옆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서 있습니다. 해마다 몰라보게 쑥쑥 자라 어느덧 거목의 자태를 보입니다. 빨리 자라는 만큼 가볍고 무릅니다. 바로 그 오동나무가 고급 장롱의 목재로 쓰입니다. 도중에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고 오래갑니다. 빨리 자라고 오래가니 그보다 더 좋은 나무가 없습니다. (2020년 9월1일자 앙코르메일)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들꽃 마을 -----블로그에서
나무의 시간, 김민식
내촌 목공소 김민식 ---나무 보헤미안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나무를 주제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낼 몇 안되는 분 중 한 분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무백과를 쓰신 고 임경빈 교수님은 천재 임학자라 불렸고, 얼마전 세종국립수목원장으로 자리를 옮기신 이유미 박사님 또한 뛰어난 나무 이야기꾼이시다. 그런데 약간 결이 다르다. 두 분은 나무학자, 생태학자로서 이야기를 풀어내시지만 이 책의 저자 김민식님은 목재를 다루던 분으로서 풀어내는 이야기다. 목재 수출입을 위해 누비고 다녔던 수많은 나라와 그 나라들에서 경험한 건축물, 가구, 악기 등에 얽힌 이야기들이 아주 맛깔스럽게 비벼졌다. 나무와 관련된 동서양의 신화며 문학이며 음악에 대한 지식은 어찌 이렇게 박식할 수 있는지... 솔직히 이 책에 있었던 모든 내용을 옮겨적어 놓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내용, 문장이 많다. 감히 단언컨데 이 책은 반드시 직접 구입해서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를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현인이라며 대접한 이도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무는 대단한 활동가이고 그의 활동은 죽은 후 시작된다는 점에서 신비롭기 그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기억해야 할 역사에는 언제나 나무가 인간과 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인류는 나무로 말미암아 풍요로워졌고 나무와 같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1970~80년대 초 부산 앞바다의 일상적 풍경, 수영만에서 시작하여 중앙부두, 감만동 낙동강 하구 다대포까지 나왕 원목이 띠를 두르며 바다에 떠 있었다. 자동차, 철강, 조선, 전자, 반도체, 화학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 우리나라 산업의 수출 품목은 합판이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00달러에서 1,000달러로 급속히 성장하던 시기, 세계 최대 합판 수출국 한국, 상공부와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매달의 합판 수출액을 점검했다.
p21
역사를 보면 빠른 배와 많은 배를 가진 지역이나 국가가 상대적으로 더 번창하였다. 베니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이 그렇다. 그런데 모든 보트, 배는 나무로 만들었다. 아직 철을 제련하지 못하던 시절, 주변국이나 식민지에서 목재를 확보해 본국으로 운송하는 일은 열강에게 최우선 가치이자 정책이었다. 보통 배의 뼈대는 단단한 활엽수로 만든다. p23 이렇게 영국 마차의 헤리티지 위에서 자동차의 수퍼 럭셔리 롤스 로이스, 벤틀리가 탄생했으니 부러울 뿐이다.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육두마차, 스테이트 코치 브리타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프렉클링턴 작업이다. 60주년 행사를 위하여 제작한 이 마차는 온통 역사와 이야기, 상징으로 채운 영국 역사의 타임 캡슐이었다. 내부 장식으로 패칭 처리한 나무 리스트를 살펴보니 영국에서 발견한 청동기 시대 페이바이 보트, 범선 커티 사크, 제임스 쿡 선장의 인데버호, 존 해리슨이 시계를 위해 제조한 목재 기어, 뉴턴 경 집에 있던 사과나무, 셰익스피어의 뽕나무, 로버트 스콧 경의 1912년 남극 탐험 썰매 등 그야말로 영국 역사 속 나무의 총집합니다. 역사에서 이 나무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겠다. 이뿐만 아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여러 개인이 참여해 이 마차 속에 그들 영연방 역사의 유산을 남겼다. 기억해야 할 전쟁터 워털루에서 남긴 조각, 대법원 문짝의 일부, 켄싱턴 궁, 캔터버리 대성당과 세인트폴 대성당, 윔블던 구장 그리고 다우닝가 10번지, 웨스트민스터를 상징하는 실물 나무 파편과 흔적을 정밀한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장식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1215년 권리 대장전을 마이크로 카드로 마차 벽면에 부착했다는 것이다. 국왕의 통치 60주년을 축하하는 금마차에 시민의 권리선언 마그나카르타를 장식하는 저들의 담대한 센스라니! 50주년 골드 주빌레를 위해 만든 골드 코치
p26
자작나무 새잎같이 맑고 빛나는 색은 없다. 지상 최고의 연둣빛이다. 이른 벚꽃 지고 나면 자작 잎 나오는 것을 챙겨 보라. 황무지의 개척지에서도, 산불이 난 후에도 가장 먼저 숲을 만드는 나무가 바로 자작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코제트가 있던 숲속에 자작나무가 빛난다. 자작나무는 캄캄한 밤 게슴츠레한 달빛 아래서도 대번에 보인다. 나무 껍질이 온통 하얗기 때문이다. p30 <안나 카레리나>, <부활>, <바보 이반>을 잉태한 자작나무 숲은 내게는 그저 꿈의 풍경. 네흘류도프와 카츄사의 거룩함만으로도 벅찬, 두꺼운 <부활>에는 나무가 딱 '한 번' 쓰였을 뿐이다. 귀족의 영지에서 자작나무 한 그루를 베어 간 농노를 벌주는 장면에 귀족의 서슬 퍼런 영지에 '빛나는 들판의 자작나무'가 서 있었던 것. 자작은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가 나무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 일상생활과 풍습에 깊숙이 스며 있다. 핀란드와 러시아에서는 사우나를 할 때 자작나무 다발로 등을 두드리면 잎이 함유하고 있는 성분이 우리 몸을 소생시킨다고 믿고 있다. 한국인이 소나무, 일본인이 편백나무에 대하여 신앙을 가지고 있듯이 핀란드와 발트해 연안 지역, 러시아 사람들이 자작나무를 대하는 것도 그러하다. 우리가 초봄에 고로쇠 물을 뽑듯 그쪽 사람들도 봄이면 자작나무 물을 받아 마시고 또 시럽을 만든다.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하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자작나무와 관련한 큰 사건이 있었다. 1970년대 초 경북 경주, 역사학자들이 작은 고분을 발굴하다가 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화려하게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을 발견했다. 천마총의 천마도다. 나무 껍질 위에 그림을 그린 이 물건의 용도는 바로 '말다래'인데, 말 안장에 붙여 타고 있는 사람에게 흙이 튀는 것을 막는 장식품이다. 이 천마도의 캔버스가 자작나무 껍질로 밝혀졌고, 이는 신라의 문화, 한반도 민족 이동이 북방에서 비롯된 뚜렷한 증거라며 역사학계가 흥분했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 대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자작 껍질에 새긴 산스크리트어 불경이 인도 북부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원 전 12세기에 기록된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다. p40
페니키아인들의 기원전 3000년경부터 건조하기 시작한 캘리선은 16~17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이르러 범선이 주류를 차지하기까지 역사에서 인류가 사용한 최상의 전투함이자 운송선이었다. 이 캘리선을 건조하는 데 사용된 페니키아의 목재가 바로 레바논 국기 속의 삼나무다. 그토록 울창했던 숲은 수천 년간 계속된 벌채로 지금은 흔적도 없고, 이제 페니키아의 영광은 레바논 국기 속에만 남아 있다. 나무가 사라진 곳에서 문명은 황폐해 갔다. 사막화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는 지금 우리가 보는 바대로다. 게르만인은 '숲에서 온 사람들'로 불리던 족속이다. "문명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따른다." 제국의 명멸에 대하여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샤토브리앙이 남긴 말이다. p44 영국의 일기 작가 존 에블린은 "모든 물질 문화는 나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무가 없는 것보다는 황금이 없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며 세상을 통찰했다. 그렇지만 전해 오는 신화에서는 숲을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엄중한 교훈과 경고를 빠뜨리지 않았다. 인류의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신의 숲을 파괴하니 홍수가 닥쳤다는 내용이 나오고, 성경 창세기에는 생명의 나무를 건드린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그런데 숲과 나무를 건드려 낙원에서 인간이 추방된다는 신화는 지금 우리의 처지이기도 하다. 레바논 국기 속의 삼나무
p50
알레, 애비뉴, 불르바르 등 가로수가 있는 길이라는 뜻의 단어들은 모두 프랑스어에서 나왔다. 17세기에 '조경의 황제'로 불렸던 프랑스의 앙드레 몰레는 그의 저서 <정원에서의 즐거움>에서 양느릅나무와 라임나무를 길 따라 2~3열로 심은 것을 최고의 장식으로 추천했다. 그는 당시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의 궁정에서 일하기도 했고 그의 저술은 유럽 각국의 현지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바 있다. 몰레는 대를 이은 정원사 집안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도 또 아들도 정원사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영국의 조경 정원 디자인에 프랑스풍이 짙은 것은 몰레 가족이 스웨덴과 영국의 왕가, 독일의 여러 제후국에서 자문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p51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 다섯 번째 곡 '보리수'는 라임나무다. 누가 보리수로 번역했을까. 피나무라는 발음이 슈베르트 가곡의 서정을 깨뜨릴까 봐 일부러 그랬을까. p60
16세기 말~17세기 초 셰익스피어의 뽕나무 역시 영국 산업 정책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런던에서 대성공한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말년을 보낸 스트랫포드 고향 집에 뽕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집의 새 주인이 들이닥치는 순례객들을 감당치 못하여 뽕나무를 잘라 재목으로 팔아버렸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심었다는 뽕나무의 가지를 꺾어 가는 여행객들에게 지쳐 아예 나무를 잘라버린 것이다. 1750년경, 얼추 셰익스피어 사후 150년이 지나서 일어난 사건이다. 뽕나무는 참으로 인간과 함께한 나무다. 잎은 비단을 짜는 데, 열매는 식량 역할을 했고, 목재는 재목으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종이는 중국 후한 시대 환관 채륜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중국,한국,일본의 전통 종이는 닥나무나 꾸지나무 껍질로 만든다. 유독 섬유질이 길어 특별히 펄프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나무다. 모두 뽕나무과다. p68
베르디가 뒤마의 소설 <카멜리아 레이디>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각색했고, 소프라노 여자 주인공이 바로 동백꽃 아가씨 비올레타다. 동백꽃은 코코 샤넬 브랜드의 시그니처 플라워다. 샤넬 여사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여, 그녀를 상징하는 꽃이 바로 동백꽃이다. 샤넬 부티크의 거의 모든 제품엔 온통 동백꽃이 달려 있다. 동백꽃은 동서양 할 것 없이 아주 치명적인 상징성을 띠고 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는 동백꽃 없이는 노래하지 못하고, 샤넬 동백꽃의 고혹은 온 세계의 여심을 홀린다. 전차 안의 동백 아가씨에 넋이 나간 타고르 시의 주인공은 나와 그녀가 다른 신분인 것을 알았을 때 동백꽃만 가리킨 채 캘커타로 돌아간다. p76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당연히 기독교와 관련이 있고, 또 나무를 성물화하고 전나무에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독일 지역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화되기 전부터 게르만인들은 전나무를 신성시했다. 독일 구전에 따르면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숲을 걷다가 캄캄한 밤, 달빛에 전나무가 빛나는 것을 보며 "하늘의 달빛에 전나무가 빛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간은 얼마나 빛날 것인가?"라면서 '홀리 나이트'에 전나무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루터의 고향인 작센 안할트 주는 독일의 숲 슈바르츠발트로 유명하다. 그도 숲의 사람이 분명하며 그 숲은 온통 전나무로 덮여 있었을 테고.... 크리스마트트리를 세계의 트렌드로 만든 주인공은 앞서 말한 독일계 앨버트 공이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과 윈저 성에 살며 독일의 문화와 방식도 많이 가져왔는데, 1840년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앨버트 공과 빅토리아 여왕, 그 자녀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두고 함께 모인 삽화가 실렸다. 런던 앨버트홀은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을 기념한 건축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 제국의 전성기였다. p89
우리 조상들만 피나무를 적절하게 사용한 게 아니다. 르네상스 이전, 직물 캔버스가 등장하기 전에는 피나무 목판에 회화를 그렸다. 피나무와 함께 참나무, 전나무, 포플러도 캔버스로 애용되던 나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포플러 나무 패널 위에 그렸다. 독일과 슬라브 지역의 나무 캔버스는 대부분 피나무였다. p95
목재를 극도로 정밀히 가공하며 다루는 분야는 단연 악기를 제조하는 공정이다. 악기에 비하면 가구와 건축에서 목재를 다루는 솜씨는 오히려 거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동차 내장에 사용하는 목재의 선별, 가공 과정, 최종 마감 처리에 대하여 그가 언급하는 것이 마치 오랜 목재 장인이나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기를 만드는 마스터 같았다. 자동차 회사의 CEO란 첨단 공학이 낳은 스피드와 안전성, 시장 점유율, 마케팅이나 환경 문제, 이런 토픽을 얘기하는 자들 아닌가. 나무로 마차를 만들던 조상의 헤리티지를 물려받은 것인가. 초기 자동차 형태는 말이 끌던 마차의 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자동차의 힘은 마력으로 표시하며, 마차의 형태에 따른 카브리올레, 쿠페, 왜건, 코치, 리무진이 자동차의 종류를 구분하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카브리올레는 지붕을 접을 수 있는 마차였으니 컨버터블이 가능한 차 이름으로 남았고, 문이 양쪽으로 두 짝인 마차가 쿠페다. 왜건은 곡식이나 화물을 싣는 마차였고, 리무진은 마부의 자리가 지붕이 없는 바깥에 고정되어 있고 실내에 여러 사람의 자리가 있는 긴 마차였다. 카브리올레, 쿠페, 리무진은 모두 프랑스에서 영어권으로 넘어가 독일에서도 또 미국에서도 자동차 종류 이름으로 굳어졌다. p99 내장재에 실제 나무를 쓰는 브랜드가 있다. 롤스로이스, 밴틀리, 레인지로버를 비롯한 영국의 제조사들이다. 이탈리아의 마세라티도 그러하다. p113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다윗 왕의 수금도, 노곤한 봄날 목동의 버들피리도, 이탈리아 메디치가에서 즐겼던 크레모나산 현악기와 아마티 가문의 현악기도 모두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 손에 잡히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 특별한 '신용과 명예'는 있지만 특별한 나무는 없다. p116
모더니즘의 태동 이후 100년 이상 콘트리트, 철근, 유리 박스 안에 갇혀 있던 21세기 인류가 목재 구조 건축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인데, 아마도 이는 본래 나무와 숲에서 나온 인간의 내재적 본능이 아닐는지. 정서적인 측면을 배제하고서라도, 목재로 지은 집은 현대의 철근, 콘트리트 건축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p130
와인은 참나무 통에서만 숙성시켜야 할까. 아니다. 밤나무 통도 있고 사과나무 통도 있다. 나무에 따라 숙성한 와인의 향이 다를 뿐이다. 와인을 담는 용기로 참나무가 굳어진 것은, 프랑스에서 참나무가 가장 풍부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단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우리 땅 깊은 산골의 굴피 지붕, 보르도의 와인 포장 상자, 와인 숙성 통, 코르크 병마개 등을 보노라면 천연의 참나무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다. 채집으로 살았던 조상들도 그 해 참나무에 달리는 도토리가 풍성하면 배고픔에서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었다. p148
뭐니 뭐니 해도 아직까지 감나무가 주인공으로 자리하는 분야는 골프 클럽이다. 우드 3번, 우드 5번이라 불리는 골프 클럽에서 나무를 본 적이 있으신지. 내가 처음 가진 골프 클럽의 머리는 쇠붙이였는데 모두 우드 몇 번이라 불렀다. 이는 전통적으로 공을 가격하는 골프 클럽의 헤드를 감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부터 티타늄, 합금으로 만든 골프 클럽이 대중화해 지금은 나무로 만든 헤드를 단 것이 거의 없는데도 여전히 우드 1번, 우드 3번이란 호칭을 쓰고 있다. 나무 헤드를 메탈로 처음 만든 제조사는 미국의 테일러 메이드다. 이 회사의 최초 브랜드는 피츠버그 퍼시몬이었다. 골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18~19세기 유럽산 골프 클럽의 헤드는 너도밤나무, 물푸레나무가 대부분이지만 골프가 대중화한 20세기 미국, 일본에서 만든 클럽의 헤드는 대부분 감나무였다. 미국에는 지금도 감나무 클럽만 사용하는 고색창연한 골프 커뮤니티가 있다. 이름하여 '퍼시몬 클럽'으로 전통이란 단어를 함께 쓰며 감나무 헤드 골프채만으로 경기를 한다. p155
소나무는 최고의 품질을 가졌거나 특별한 개성을 지닌 목재가 아니며, 그저 지구에서 가장 흔한 나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활엽수 느티나무로 세워져 버젓이 우리 곁에 있고, 통영 세병관의 기둥은 참나무다. 결코 소나무를 사용하는 것만이 전통이며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숲에서 길러지고 나무에 의지해서 살아왔다. 단군 신화, 일본 고사기, 메소포타미아,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도 박달나무, 삼나무, 물푸레나무는 인간에게 온전히 베푸는 어머니 같다. 일본 훗카이도의 너도밤나무, 미얀마의 기름 듬뿍 젖은 티크, 지중해의 상쾌한 사이프러스, 다뉴브 강가의 물푸레나무,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미국 시애틀과 캐나다 밴쿠버의 가문비나무, 이 나무들은 모두 그 지역의 신단수 또는 당산목이다. 이처럼 인간들은 자기 주변의 가장 흔하고 큰 나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귀하게 모셔왔다. p162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중략)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p167 참나무는 기독교 문화에서 예수를 상징하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나무다. 손기정 선수는 모교 양정고등학교에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참나무를 심었는데 이제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랐다. 당시 서울 만리동에 있던 양정고등학교는 목동으로 이사하고, 그곳은 손기정 체육공원이 되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참나무를 귀하게 취급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참나무를 일컬어 '성스러운 코끼리' 이른바 '상목'이라 한다.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와 그리스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무라 부르고, 그리스에서도 '쿠에르쿠스(참, 진리라는 뜻)'라 부른다. '참',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성스러운 나무, 참나무야말로 인류의 당산목이 아닐는지. 1970년대 이 노래가 히트한 후 미국에서는 전쟁이나 테러 등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노란 리본을 다는 풍습이 생겼다. 참나무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 우리가 세월호의 슬픔을 새기며 노란 리본을 단 것도 1970년대 이 미국 팝송(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 지중해 연안에서 본 제우스 신전 터에는 꼭 참나무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바로 참나무 잎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로마 신화의 유피테르는 같은 신으로 천둥, 벼락, 참나무의 신이다. 재미있게도 산과 들의 나무 중에 가장 벼락을 잘 맞는 나무가 참나무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도 거슬러 올라 살펴보면 고려 시대에는 건축용 목재로 참나무, 느티나무, 소나무를 함께 사용했고, 삼국 시대와 선사 시대 유적지를 발굴하며 발견된 숯과 나무 조각을 분석하면 90% 이상이 참나무다. 참나무는 역사의 길목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와 영국의 기나긴 패권 다툼은 자국 내 참나무 숲이 얼마나 무성하며 또 황폐한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기도 했다. 참나무 숯은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석유의 역할을 해왔고, 철광석을 제련하는 데도 쓰인 질 좋은 땔감이었다. 영국은 식민지 미국과 프랑스가 동맹하자 미국산 참나무를 구할 수 없어 배를 건조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그리하여 독립 전쟁 당시 노후한 배를 가진 영국은 신생 임업 대국 미국을 이길 수 없었다. 이렇듯 풍부한 참나무 숲을 가진 나라가 강한 나라였다. p178
"소나무의 영어 표현 Japanese red pine은 일본 붉은 소나무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잣나무가 영어로 Korean pine, 한국 소나무입니다"라고 설명하는데 듣는 이들의 의아한 표정이 느껴졌다. 한참 후 워크숍에 참석했던 한 교수를 만났다. 그가 이야기하기를 잣나무가 한국의 소나무, 'Korean pine'이라는 내 강의가 영 미덥지 않았는데 학교에 돌아와 보니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잣나무더라는 것이었다. 누가 고려대학교의 교목으로 잣나무를 정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찬기파랑가'의 잣나무, 'Korean pine'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였을 것 같다. 향가 '찬기파랑가'는 화랑 기파랑을 기리며 그의 절개와 태도를 잣나무의 높은 기상에 비유했다.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모르시올 화랑의 우두머리시여." 이렇듯 화랑 기파랑을 높은 잣나무로 비유할 만큼 잣나무는 이 민족의 기상이었다. 사람들이 고려대학교를 민족 사학이라고 부르는데, 잣나무가 교목인 것이 마침 적절하다. p188
자랑스런 대한민국 대통령이 리프로덕션한 의자에 앉아 있다. 마침 대통령의 의전과 행사를 담당했던 비서관의 기사가 눈을 끈다. 보통 사람으로 돌아와 파리의 오페라 극장 공연을 보며 근무하던 청와대 영빈관이 떠올랐다고 한다. 타이틀이 이러했다. '세계 의전 행사 장소 중 청와대 영빈관 가장 최악' 그리고 '국회, 개보수 공사 예산 절대 승인하지 않을 것', '영빈관 국격 보여주는 곳, 국가 격 아닌 국민의 격'. 그는 "말이 영빈관이지 어떤 상징도 역사도 스토리텔링도 없는 공간에서 국빈 만찬과 환영 공연 등 여러 국가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늘 착잡했다"고 토로한다. 내가 평가한 번쩍거리던 대통령의 의자를 행사 담당 비서관도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의자 한 점에 역사를, 문화를 언급하는 것은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지나친 여유일까? 영국과 일본은 왕이 있는 입헌군주 국가이니 아무래도 전통과 역사 의전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가 일천한 미국도 의미 있는 행사에는 대통령과 내빈을 위해 별도로 의자를 제작하거나 어떤 의미가 담긴 가구를 내놓기도 한다. 의자 한 점에도 역사와 신화, 문학, 미술 그리고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러면서 이야기와 신화가 나온다.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p204
박경리 선생의 모습은 그의 느티나무 책상에서, 그 방을 돌아 나오며 눈에 뜨이던 원목 맞춤 책장에서, 직접 지휘하셨다는 손주 물놀이 공간과 돌담을 쌓은 데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뜰에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중앙의 한 그루는 수령 100년은 넘은 것 같고, 옛집 뒤로 지금은 문학공원이 된 터에도 300년은 버텨왔을 느티나무 거수가 논을 끈다. 선생의 터는 느티나무 동산이더라. 겨울 느티나무 잔가지는 하늘과 겹쳐 있었다. 통영 출신 문호의 취향이 디킨스, 톨스토이, 시바 료타로, 스티븐 킹의 나무 테이블을 바라보던 나의 오랜 부러움을 가라앉혀버렸다. 사실 나의 깊은 콤플렉스였다. p210
놀랍게도 에르메스는 배나무와 사과나무로도 가구를 짰다. 배나무, 사과나무로 접시나 도마 같은 작은 민속 조각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지만 에르메스는 이 나무들로 번듯한 가구를 만들었다. 보통 장인의 솜씨가 아니다. 과실을 맺는 모든 나무는 단단하지만 작고 비틀어져 재목으로 사용하기는커녕 구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직경이 작은 과실 나무를 가구 만드는 데 활용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도 없다. 에르메스는 가구 제작에 사용한 나무만으로 나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p222
"왜 건축가가 이렇게 나무 심기에 전력을 기울이십니까?" <카사 브루투스>는 건축가에게 물었다. "우리는 지금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뉴스를 들으며 살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고,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나는 이 재앙들이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는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마음에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간직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건축과 특정 장소에는 특히 나무가 필요하다. 나무는 풍경을 만든다. 나는 이 풍경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도 선생은 나무 심기 운동을 주도하며 늘 묘목을 심는다고 한다. '어린아이 키우듯 나무를 돌보자', '한 그루 묘목이 숲이 될 20년, 30년의 유지 관리비를 시민 각자가 맡아보자'는 것이다. 이렇듯 시민의 참여에 주목하는 건 나무 심기를 통해 인간의 '선한 관계'를 회복해보자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외침이다. p236
1970년대, 나무를 심기 위해 사람들이 물동이를 이고 줄지어 산을 오르는 모습의 흑백 사진 옆에는 "오지에 나무를 심어라. 그래야 오래간다"라는 SK그룹 선대 최종현 회장의 어록. 그 문장 앞에서 나는 얼음 기둥이 되었다. p241
한 가지 일을 보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말로 "나뭇잎 하나 떨어지니 천지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표현이 있다. 이 '일엽지추'라는 말은 중국의 고서 <회남자>와 당시에도 자주 등장하며, 한자 문화권에서 익숙한 표현이다. 이 나뭇잎이 오동나무 잎이다. 예부터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딸이 성장하여 결혼할 때 이 오동나무로 장 하나 짜 보내기 위해서다. 가야금과 거문고도 오동나무로 만든다. 우륵의 가야금도 오동나무로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오동나무가 상상의 새 봉황을 부른다고 믿었다. <시경>에 "봉황이 우는 데 오동나무가 있더라"는 구절이 있고, <장자>에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것이나 탐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다는 뜻으로도 쓴다. 일본의 오동나무 사랑도 우리나라나 중국 못지않다. 일본 왕가의 문장에 새겨진 나뭇잎이 오동잎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도 오동잎이었다고 한다. 상상의 새 봉황이 오동나무에만 머문다는 전설이 있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일본 왕가도 오동잎을 문장으로 빌려 왔을 것이다. 일본에서 넘어와 이제 우리의 민속놀이가 된 화투에도 오동잎이 있다. 바로 11월의 패인데, 특히 '광'에는 검은색 오동잎 위에 봉황이 그려져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무거우면 좋은 나무이고 가벼우면 나쁜 나무인 것이 아니다. 가볍고 물러서 싼 것도 아니다. 무른 오동나무는 악기의 울림통을 만들기에 적절하고, 장을 짤 때 서랍 재료로도 요긴하다. 서랍은 힘을 받지 않는 부분이어서 오동나무를 썼다. 약한 나무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 있다. 서랍에 소나무를 쓰면 뒤틀려 수월하게 여닫지 못할 것이고, 단단한 참나무는 겨울철 온돌방에서 갈라진다. 딸의 행복을 위해 부모의 지성으로 심는다는 오동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집창촌의 딸들과 우뚝 서 있는 오동나무 광경을 보는 전주시장의 가슴이 무너졌다고 한다.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핀다.' 지금 선미촌에 들어선 전주시 '현장 시청'의 간판이다. p254
16세기 이후 브라질, 인도,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 벌채된 로즈우드뿐 아니라 인도차이나의 티크 등 열대우림에서 마구 벌채된 고급 목재가 덴마크로 실려 왔다. 빈티지 가구에서 읽는 슬픈 역사다. 가구에 사용한 나무는 최소 수령 100년에서 200~300년 세월은 되었을 텅이니, 빈티지 가구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길다. p261
나는 우리나라, 미국, 유럽, 중동에서 수십만 호의 건축과 집 짓기에 관여하며 갖은 경우의 삶과 맞닥뜨려왔으나 하성란이 <카레 온 더 보더>에서 묘사한 한국 건축의 모습에는 감정을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주택이든 공공 건축물이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면 가장 기초적인 방수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눈속임 건축이다. 이런 건축에서 단열 공사 역시 제대로 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 지하 방에서 사는 다섯 노인이 곰팡이 냄새뿐 아니라 추위와 더위에 지쳤을 것은 뻔하다. 곰팡이 냄새는 카레 향으로 이겨내더라도 냄새 없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은 어찌 할 것인가. 비단 불광동 지하 방뿐 아니라 일류라고 뽐내는 리조트, 호텔, 주택, 병원의 가구와 건축 자재에서 배출하는 유기 화합물로 인해 실내 공기가 오염되어 있다. 하성란이 화학도였다면 '휴먼 인 더 포름알데히드'로 타이틀을 바꿨을지 모를 일이다. p282
7세기에 지어진 호류지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파르테논 신전에도 돌을 사용하기 전 목재를 사용해 건축한 것이 양식으로 선명히 남아 있고, 건조한 지중해, 광대한 중국 대륙과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목조 건축물이 있지만, 호류지의 세월에 버금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일본만 전란이 없었고 화재도 용케 피해 갔을까? 나는 이것이 일본의 편백나무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본다. 호류지는 다른 나무를 섞지 않고 오로지 편백나무로만 지어 천년 세월을 버텨온 건축물이다. 놀라운 것은 니시오카 대목장이 1940년대에 호류지 오층탑과 금당을 해체, 수리했는데 1,300년 묵은 기둥을 대패질하니 편백나무 향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일본 내에는 편백나무 밑둥의 직경이 2m가 넘는 것이 없어 니시오카 대목장이 타이완 고산 지역에서 2,500년 된 편백나무를 공수해 사용했다. 세계 최고의 호류지는 가히 '편백나무가 낳은 건축'이라 할 만하다. Amazing Japanese Trees! "가장 좋은 나무가 뭔가요?"
나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답을 드리면 가장 좋은 나무란 없다.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이 결정할 뿐이다. p317
버드나무의 서정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은데,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도 본인의 죽음을 예감하고 '버드나무'라는 옛 노래를 부른다. "푸른 버들 노래를 불러라. 버들 노래를 불러라. 버들 버들 버들." 어머니의 하인이 부르던 노래 버드나무였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는 작곡가 베르디가 이를 각색해 만든 오페라 <오셀로>에서 데스데모나의 '윌로우 송'은 세기의 소프라노 가수들이 부르고 있다. 나는 오늘 마리아 칼라스 버전의 '윌로우 송'을 듣고 있다. p328
영국에서 유달리 큰 나무가 많은 지역, 호크니를 통해 요크셔의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를 제대로 보는 법도 호크니에게 배웠다. 요크셔 영감님은 잎이 전부 떨어진 겨울에야 나무의 제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겨우내 '호크니의 시각'으로 잔가지, 줄기까지 드러나는 벌거벗은 나무를 하나하나 보았다. 나무가 보였다. 느티나무의 수형, 밤나무의 세밀한 가지, 무뚝뚝한 물푸레나무, 대추와 산배나무까지. 나무쟁이는 노화가에게 나무 보는 방식을 배웠다. p340
목수는 나무를 자르고,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짓는 목수는 대목, 가구 짜는 목수는 소목으로 구분했다. 도목수라고 불리는 이는 집짓기를 총괄하는 우두머리 목수다. 뛰어난 목공 기술뿐 아니라 공정 관리, 함께 일하는 동료와 어린 목수들을 다독이는 인사 관리에게까지 능숙해야 도목수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문화재청에서 도목수 중에 특별한 기량과 경력을 가진 몇 분을 대목장으로 선정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 중에 목수 이력을 가진 이들이 더러 있다. 조지 나카시마와 안도 다다오는 불우한 시절에 목재를 만졌다. 조지 나카시마 가족은 루스벨트 정부의 태평양전쟁 시절에 일본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격리 수용되는 인권 침해를 당했다. 미국 펜실베니아 벽촌 뉴 호프에서 평생 활엽수 가구만 짜던 조지 나카시마는 MIT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나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태평양전쟁 때는 강제 수용소 생활도 했다. 최고 학력의 건축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건축을 의뢰한 미국인이 없었다. 하여 이 엘리트 목수는 살아가기 위해 원목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오늘날 'Soul of trees'라 불리는 조지 나카시마 가구다.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목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권투 선수로 첫 벌이를 시작해 동네의 카페 내장 공사 등 잡다한 일로 내공을 쌓았다. 스위스와 일본 출신 두 건축가의 작업을 보면 밀도와 디테일에서 젊은 시절 목수 솜씨가 여실히 나타난다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이 아무에게나 갔을 리 없다. joiner란 서로 다른 것을 붙이는 '사람'이나 '무엇'을 말한다. 못이 없던 시절에 집을 짓고 가구를 맞추고 배를 만드는 공정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맞춤, 결구, 연결하는 사람, joiner도 목수를 부르는 말이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아일랜드 시골 출신의 목수나 독일의 마루판 시공자는 학력이 변변치 않아도, 온 세상의 나무를 섭렵해보지 않았어도 지식과 상식을 지녔다. 컴퓨터에서 획득한 데이터를 모르고, 학술 논문과 거리가 멀어도 사회에 축적되어 면면히 내려오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보통 사람들. 성숙한 사회가 부러운 것은 시민들이 "세상의 사물 이치에 대하여 드러나지 않는 지식, 상식, 교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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