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노의 성 토마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 (Cap. 10, lect. 3) |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배불리 먹고 편히 쉬리라 |
예언자 스바니야서에 의한 독서 | 3,8-20 |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시온의 대문에서 당신의 영광을 전하오리다. |
○ 나를 가르치시어, 당신의 법을 지키게 하소서. ◎ 이 마음 다하여 지키리이다. |
제1독서 |
예언자 스바니야서에 의한 독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다 |
8 “너희는 참고 기다려라.” 주님의 말씀이시다. “내가 몸을 일으켜 그런 것들을 벌할 날이 오면, 만방에서 뭇 민족을 불러모으고 분노를 마구 터뜨려 한꺼번에 벌하리라. 나의 진노가 불같이 타올라 온 땅을 살라 버리리라. 9 그런 다음 뭇 민족의 입술을 정하게 하여 모두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를 섬기게 하리라. 10 에티오피아강 저편으로 추방했던 자들도 예물을 가지고 강을 건너 나를 예배하러 오게 하리라. 11 “그날이 오면, 나를 거역하여 저지른 온갖 일들을 너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 내가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 자를 네 안에서 쓸어버리면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거만한 모습이 자취를 감출텐데 무엇을 다시 부끄러워하랴. 12 내가 기를 못 펴는 가난한 사람만을 네 안에 남기리니 이렇게 살아 남은 이스라엘은 주님의 이름만 믿고 안심하리라. 13 그들은 남을 억울하게 속일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며 간사한 혀로 사기칠 줄도 모른다. 그러나 배불리 먹고 편히 쉬리니, 아무도 들볶지 못하리라.” 14 수도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큰소리로 외쳐라.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15 주께서 원수들을 쫓으셨다. 너를 벌하던 자들을 몰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임금, 주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16 그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이렇게 일러주어라. “시온아, 두려워 말라. 기운을 내어라. 17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주 하느님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18 “나는 너에게 내리던 재앙을 거두어 들여 다시는 수모를 받지 않게 하리라. 19 그때가 되면, 너를 억누르던 자를 다 없애 버리고 절름발이는 고쳐 주며 길 잃은 자들을 찾아내어 고국으로 데려오리라. 그때가 되면, 온 세상에서 내 백성은 칭송을 자자하게 받으며 이름을 떨치리라. 20 그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데려오리라. 너희를 이리로 모아들이리라. 내가 너희의 면전에서 너희에게 광복을 안겨 줄 때, 너희는 세계 만방에서 칭송을 자자하게 받으며 이름을 떨치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
제2독서 |
아퀴노의 성 토마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배불리 먹고 편히 쉬리라 |
“나는 착한 목자입니다.” 목자직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직분입니다. 일반 목자가 자기 양 떼를 돌보고 풀을 먹이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인 양식 및 당신의 몸과 피로써 신자들을 양육하십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길 잃은 양처럼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에게로 돌아왔습니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또 예언자는 “그분은 목자처럼 당신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시리라.” 하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는 문을 통해서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고 또 당신은 문이라고 일컬으셨지만, 여기에선 당신이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통해서 들어가시는 목자이십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을 통하여 아버지를 아시기 때문에 또한 당신 자신을 통해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행복에 이르기 때문에 그분을 통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외에는 문이 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밖에는 참 빛인 사람이 없고 다른 이들은 그분으로부터 빛을 받아 반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한편 그리스도께 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따라서 자기가 문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에게만 유보하신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이들도 목자직에 참여케 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목자였고 다른 사도들도 그러하고 모든 선한 주교들도 그러합니다.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 주리라.” 하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자녀로서 남아 있는 한 모두 다 목자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덕을 넌지시 시사하시고자 당신 자신에 대해서 단독적으로 “나는 착한 목자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덕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참되신 목자의 지체가 되지 않고서는 아무도 착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착한 목자의 임무입니다. 성서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착한 목자와 나쁜 목자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착한 목자는 양 떼의 이익만 찾고 나쁜 목자는 자기 이익만 찾습니다. 육신의 목자들에게 있어선 착한 목자가 되고자 양 떼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 떼의 영적 구원은 목자의 육신 생명보다 더 중대한 것이기에, 자기 양 떼의 구원을 거스르는 어떤 위험이 임박해올 때 모든 영신의 목자들은 양 떼의 구원을 위해 자기 육신을 내놓아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즉 권위와 사랑의 봉사로써 자기 자신을 그들에게 바칩니다. 양 떼를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권위와 양 떼를 돌보아 주는 사랑, 이 두 가지 모두가 그에게서 요구됩니다. 사랑 없이는 권위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가르침에 대한 모범을 당신의 생활에서 남겨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다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모든 신자들을 한마음과 한뜻이 되게 하시는 천주여,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이 명하신 바를 사랑하고 당신이 언약하신 바를 갈망하며, 현세의 변천 속에서도 참 기쁨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을 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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