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 (Sermo 83,4-6: Opera omnia, Edit. Cisterc. 2[1958], 300-302) |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
집회서에 의한 독서 | 39,1b-10 |
성경에 능통한 학자 |
렴3주여, 당신은 태초에 땅을 만드시고, 하늘도 손수 만드셨나이다. |
○ 네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 내 이름으로 다른 이에게 전하리라. |
제1독서 |
집회서에 의한 독서 성경에 능통한 학자 |
1 그들은 옛 성현들의 지혜를 탐구하고 예언을 연구하는 데 자기 시간을 바친다. 2 그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보전하고 비유의 깊은 뜻을 파고 든다. 3 그는 격언의 숨은 뜻을 연구하고 난해한 비유를 푸는 데 흥미를 느낀다. 4 그는 벼슬에 올라 군주들을 섬기고 통치자들 사이에서 중책을 맡는다. 외국을 두루 여행하며 인간 사회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체험으로 안다. 5 아침에 일어나면서 마음을 모두어 창조주이신 주님께 생각을 돌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온 마음을 바친다. 입을 열면 기도요, 자기 죄의 용서를 빈다. 6 위대하신 주님께서 뜻하신다면그는 깨우침의 영검을 충만히 받을 것이다. 그때 그는 지혜의 말씀을 두루 전할 것이며 주님께 감사 기도를 올릴 것이다. 7 그는 공정한 판단력과 올바른 지식을 얻을 것이며 주님의 신비를 명상할 것이다. 8 그는 배운 지식을 밝히 가르칠 것이며 주님의 계약인 율법을 빛낼 것이다. 9 많은 사람들이 그의 총명함을 칭찬할 것이며 그의 이름은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대대로 그의 이름은 빛날 것이다. 10 만백성이 그의 지혜를 찬양할 것이며, 모임에서는 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할 것이다. |
제2독서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
사랑은 그 자체로 만족을 줍니다. 사랑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닌 그 자체로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공로도 되고 상급도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말고는 다른 이유나 열매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 -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사랑은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되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지향과 감정과 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피조물은 사랑을 통해서만 창조주께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과 같은 정도로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통하여 같은 방법으로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실 때 그 보답으로 사랑만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하실 때 사랑을 받으시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으십니다. 신랑의 사랑은, 즉 사랑이신 신랑은 보답으로 다만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 자체께서 사랑받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신부는 자신의 모든 여타의 정을 포기해 버리고 자신의 전존재로 사랑에게만 헌신합니다. 신부는 보답으로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 안에 자신의 전존재를 쏟아 낸다 해도 이것은 영원한 사랑의 원천에서 흘러 나오는 그 분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자체이신 분, 영혼과 말씀이신 그리스도, 신부와 신랑, 피조물과 창조주, 그리고 목마른 사람과 샘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은 그 풍요성에서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일하지 않다 해서, 즉 경주에 있어서 거인과, 단맛에 있어서 꿀과, 온유함에 있어서 어린 양과, 순결에 있어 백합화와, 광채에 있어 태양과,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사랑 자체이신 분과 겨루지 못한다 해서 혼인하는 이의 욕망과 애통하는 이의 갈망과 사랑하는 이의 열정과 간청하는 이의 희망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더 작아서 그분보다 덜 사랑한다 해도 힘을 다해 사랑한다면 부족함이 없고 있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하는 이는 주님과 혼인했습니다. 이 정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혼인이란 양 배우자가 서로 합의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먼저 또 더 위대하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당신의 궁전을 그리워하는 열정에 불타는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로 하여금 당신 교회에 빛과 뜨거움을 주게 하신 천주여,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우리도 같은 열정에 불타는 정신으로 언제나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잔느의 성 아메데우스 주교의 강론에서)세상과 평화의 여왕 (0) | 2024.08.22 |
---|---|
(사도 바오로가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 의한 독서)주님께 찬미 노래를 바치는 교회 (0) | 2024.08.21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밖으로 싸움을 겪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에 싸여 있었다 (0) | 2024.08.19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마태오 복음에 대한 강론’에서)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 (0) | 2024.08.18 |
(교황 비오 12세의 교황령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에서)당신의 육신은 거룩하고 영광스럽도다 (0) | 202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