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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성당

천주교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천호 성지

교리당-- 희망의 공간 
완주 초남이성지는 지난해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 유해와 유물이 200여년 만에 발견돼 큰 관심을 끌었다.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복자의 유골과 신유박해(1801) 때 순교한 윤지헌 프란치스코 복자 등 3인의 유해와 유물이 확인됐고, 유해는 초남이성지 교리당에 안치됐다.

순교자 묘소 

○ 초남이 성지 교리당은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동생 유관검이 박해시대에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논한 장소이다. 1784년 이승훈(베드로)으로 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항검은 먼저 가족과 가속들에게, 점차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숙식을 제공해 가면서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
 
○ 순교복자들인 김제의 한정흠(스타니슬라오)과 고창의 최여겸(마티아)과 전주의 김천애(안드레아) 등 수많은 사람들이 유항검과 믿음을 교류하였던 호남 최초의 교리당은 당시 신앙 전습의 장이었다. 유항검은 이곳을 통해 전주, 김제, 금구, 영광 등에까지 천주교를 전하였다
 
○ 유항검의 편지와 경비제공을 통하여 조선에 온 최초의 사제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1795년 6월에 이존창과 유관검의 안내로 전라도 순방에 나섰다. 고산 저구리를 거쳐 초남이에 한 주간 머물렀는데, 이때 호남지방 최초의 미사와 고해성사가 이루어졌다
 
○  교리당 순교자묘소에는 신유박해 때 참수치명된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바오로), 권상연(야고보),윤지헌(프란치스코) 의 온전한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은 자신의 이종사촌 동생인 윤지충과 외종사촌 형인 권상연이 순교한 이후 이들의 유해를 자신의 땅인 바우배기에 안장하였고, 함께 묻은 백자사발지석에 이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였다.
 
○ 이들이 순교한지 230년이 지난 2021년 3월 11일, 바우배기 묘지 정비 중에 이들의 유해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전주교구 교구장의 훈령으로 순교자 유해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여, 과학적인 검사를 통하여 진정성이 확인되자 2021년 9월 1일 교령을 통해 이를 공표하였다.
바우배기 -성찰의 공간 

호남 천주교가 발원한 초남이성지에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 떨어진 바우배기란 곳입니다.
 
이곳에 한국 최초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등 순교자 3명이 묻혔다는 사실이 지난해 9월 공식 확인됐습니다.
조선 후기 신해박해와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들의 유해와 유물이 230년 만에 빛을 본 것입니다.
[이영춘 신부/ 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
"작년에 세 분 복자와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대단히 기뻤고 그리고 또 다른 선교자들도 더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바우배기 매장지의 발견을 계기로 문화재청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유적인 바우배기 일대에 대한 학술적 발굴 조사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주변에 매장자가 더 있는지 확인하고 순교자들의 최초 매장지가 어디였는지 추적하는 조사도 한 달여간 진행됩니다.
[유재은/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장]
"토양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원래의 지금 발견된 순교자분의 유해가 어디에서 왔는지 가능하지 않을까, 유추가"

바우배기 매장지의 발굴 조사가 마무리되면 초남이성지인 순교자 유항검 생가에 대한 중장기 발굴 조사가 실시될 계획입니다.
유항검 생가는 조선시대 죄인의 집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웅덩이를 파 연못을 만드는 형벌, 즉 파가저택의 위치가 확인된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남 천주교의 뿌리인 완주 초남이성지, 바우배기가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생가터-영적인 공간 

초남이 성지는 지금의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부락! 이곳이 바로 호남의 사도라고불리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 45) 복자와 그의 부인 신희, 동정부부로 유명한 유항검의 맏아들 유중철 요한과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과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 마태오 등 유항검 일가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가 자리한 곳입니다.

주 신부의 주선으로 
1798년에는 초남이에서
전대미문의 동정서약이 거행되었답니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가 평생을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하느님과 부모님 앞에서 한 것입니다. 바로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부부가 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이 둘은 1801년에 치명할 때까지 4년간 동정생활을 하였습니다.

유항검은 전주 남문 밖에서 유관검(유항검의 동생), 윤지헌(프란치스코, 37)(윤지충의 동생)과 함께 전라감영에서 심문을 받았으며, 윤지헌은 유항검과 함께 1801 10 24(음력 9 17) 전주읍성의
풍남문 밖에서 능지처참의 참수치명(목이 잘려 순교(殉敎)하는 일.)을 순교를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생가를 파가저택(破家瀦宅)(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물을 채워 저수지로 만드는 형벌)하고,그 많던 재산도 몰수하였답니다.

로마 8장 29절 -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 8장 39절 -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1784년--- 천주교 창립지 발상지   남인파 ------------------------------------------------------------------------------------------개신교 1884년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생가터"
 
초남이 성지는 유항검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생가터이다. 유항검은 1784년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내려와 가족들과 가솔들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김제, 금구, 고창, 영광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다. 또한 진산 사건의 핵심인물인 윤지충과는 이종사촌 사이. 유항검은 윤지충의 집에서 천주교 교리에 대해서 연구했다고 한다. 가성직 제도 아래에서 신부로도 활동했지만, 가성직제의 부당함을 알고 난 후에는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만 둘 것을 요청했다. 그 후 동료들과 함께 성직자 영입운동을 함께했다. 1795년에는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이곳에 내려와 미사를 집전하고 유항검과 교회의 여러 현안들을 논의했.
 
유항검은 신유박해(1801) 때 체포되었고 대박청래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어 대역무도죄를 선고받아 그해 917일 풍남문 밖(전동성당)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 순교하거나 유배되었고 그의 집은 파가저택 되었다. 또 이곳은 유중철과 이순이가 동정부부의 삶을 4년 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살던 유항검의 가족들 중 7명이 신유박해 때 순교했는데, 이들의 시신은 처음에 바우배기에 모셨다가 1914년에 치명자산으로 이장했다.
 
최근에는 바우배기 성역화 과정 중 천주교에서 복자로 공경하는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가 나왔으며 초남이 성지 인근에 세 순교복자의 유해를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