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일 토요일 †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아퀴노의 성 토마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
(Cap. 14, lect. 2) |
참 생명에 이르는 길 |
욥기에 의한 독서 | 42,7-17 |
하느님께서 욥의 원수들을 누르시고 욥의 명예를 되찾아 주시다 |
제1독서 |
욥기에 의한 독서--하느님께서 욥의 원수들을 누르시고 욥의 명예를 되찾아 주시다 |
7 주께서 욥과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데만 사람 엘리바즈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너의 두 친구를 생각하면 터지는 분노를 참을 길 없구나.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8 이제 너희는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나의 종 욥에게로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려라. 나의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를 드려 주리라. 그러면 그의 기도를 듣고 나는 너희를 크게 벌하지 않으리라.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종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9 데만 사람 엘리바즈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바르는 곧 주님의 분부대로 하였다. 주께서는 욥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셨다. 10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니, 주께서 욥의 소유를 회복시켜 주셨다. 주께서 욥의 소유를 전보다 두 배나 돌려주셨다. 11 그의 동생들과 누이들, 또 그의 옛 친지들이 찾아와서 그의 집에서 함께 먹고 마셨다. 그 동안 주께서 욥에게 내린 재난이 얼마나 괴로웠느냐고 동정어린 말로 그를 위로하면서 저마다 돈을 주고 금반지를 끼워 주었다. 12 주께서 욥의 여생에 전날보다 더한 복을 내려주셨다. 양 만 사천 마리,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 암나귀 천 마리에다 13 또 일곱 아들과 세 딸도 주셨다. 14 첫 딸의 이름을 예미마라 하고, 둘째 딸의 이름은 케지야라 하고, 셋째 딸의 이름은 케렌 하뿌아라 지어 주었다. 15 전세계에서 욥의 딸들만큼 아리따운 여자를 찾을 수 없었다. 욥은 딸들에게도 그들의 오빠에게 준 것과 같은 유산을 나누어 주었다. 16 그 후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사대손을 보았다. 17 욥은 이렇게 수를 다 누리고 늙어서 세상을 떠났다. |
제2독서 |
(아퀴노의 성 토마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참 생명에 이르는 길 |
그리스도 친히 길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길은 목적지에서 떨어져 있지 않고 목적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은 덧붙여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주님은 길이신 동시에 목적지이십니다. 인성에서 볼 때 길이시고 신성에서 볼 때 목적지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으로서 “나는 길이다.”라고 하시고 하느님으로서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덧붙이십니다. “진리와 생명”이라는 이 두 단어는 길의 목적지를 잘 지시해 줍니다. 길의 목적지는 우리 인간 열망의 목적입니다. 인간은 무엇보다 다음 두 가지를 열망합니다. 첫째로 진리를 아는 것을 열망합니다. 이 열망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입니다. 둘째로 존재의 지속을 열망합니다. 이 열망은 모든 피조물에게 공통적입니다. 그리스도 친히 진리이시기 때문에 진리의 앎에 이르는 길이십니다. “주여, 진리 안에서 나를 인도하소서. 그러면 나는 당신 길을 걸으리이다.” 그리스도 친히 생명이시기 때문에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십니다. “주여,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길의 목적지를 진리와 생명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위에서 이 두 가지가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 친히 생명이십니다. 성서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 친히 진리이십니다. 성서는 “그분은 사람들의 빛이셨다.”고 말합니다. 빛은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길을 통해서 가야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면 그리스도를 택하십시오. 그분은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거라.”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사람을 통해서 걸어가라. 그러면 하느님께 도달할 것이다.” 길을 벗어나 속력을 내는 것보다는 길을 따라 절뚝거리며 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길을 따라 절뚝거리며 가는 사람은 비록 진보는 느리지만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다가섭니다. 한편 길을 벗어나 걷는 사람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목적지에서 더 멀어집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면 그리스도께 바싹 다가서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다다르고자 갈망하는 진리이십니다. “내 입은 진리만을 말한다.”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면 그리스도께 바싹 다가서십시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얻으면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다.” 그러므로 안전하게 있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께 바싹 다가서십시오. 주님이 길이시기에 여러분은 곁길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 바싹 다가서는 사람은 곁길로 가지 않고 바른길로 걸어갑니다. 주님은 진리이시고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기 때문에 속이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주님은 생명이시고 또 생명을 주는 분이시기 때문에 불완전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세상에 왔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세상 만사를 그르침 없이 섭리하시는 천주여, 간절히 비오니, 무엇이나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멀리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허락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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