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목요일 †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 |
(Lib. 29,2-4: PL 76,478-480) |
교회는 밝아 오는 새벽처럼 나아간다 |
욥기에 의한 독서 | 38,1-30 |
하느님께서 욥을 어리둥절케 하시다 |
제1독서 |
욥기에 의한 독서--하느님께서 욥을 어리둥절케 하시다 |
1 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2 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3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해 보아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 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5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6 어디에 땅을 받치는 기둥이 박혀 있느냐? 그 누가 세상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7 그때 새벽 별들이 떨쳐 나와 노래를 부르고 모든 하늘의 천사들이 나와서 합창을 불렀는데, 8 바다가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 그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9 바다를 구름으로 싸고 먹구름으로 묶어둔 것은 바로 나였다. 10 바다가 넘지 못하도록 금 그어 놓고 문에 빗장을 내려놓은 것은 바로 나였다. 11 그리고 나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와도 좋지만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말아라. 너의 도도한 물결은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12 네가 언제고 동이 틀 것을 명령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의 여신에게 “이것이 네 자리다.” 하고 일러준 일이 있느냐? 13 땅의 옷깃을 휘어잡고 불의한 사람들을 그 속에서 털어내라고 명령을 내려 본 일이 있느냐? 14 네가 땅을 도장 찍힌 흙 벽돌처럼 붉게 만들고 옷처럼 울긋불긋하게 만들겠느냐? 15 불량배들이 대낮처럼 활보하던 어둠을 벗기고 높이 쳐들었던 그 팔을 꺾기라도 하겠느냐? 16 네가 바닷속 깊이 더듬어 내려가 바닷물이 솟는 샘구멍까지 찾아가 보았느냐? 17 너는 죽음의 문이 환히 드러나는 것과 암흑의 나라 대문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을 본 일이 있느냐? 18 네가 넓은 땅 위를 구석구석 살펴 알아보지 못한 것이 없거든, 어서 말해 보아라. 19 빛의 전당으로 가는 길은 어디냐?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어디냐? 20 너는 빛을 제 나라로 이끌어 가고 어둠을 본고장으로 몰아갈 수 있느냐? 21 네가 그 한 옛날에 태어나 오래오래 살았으므로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단 말이냐? 22 너는 흰 눈을 저장해 둔 곳에 가본 일이 있으며, 우박 창고에 들어가 본 일이 있느냐? 23 그것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적군이 쳐들어와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쓰려고 보관해 둔 것들이다. 24 바람이 갈라지는 목이 어디인지를 너는 아느냐? 샛바람이 땅 위에서 어느 쪽으로 흩어지는지, 25 소나기가 타고 올 길을 누가 텄는지, 먹구름이 천둥치며 쏟아져 내릴 곳을 누가 팠는지, 너는 아느냐? 26 사람이란 얼씬도 하지 않는 곳, 인종이란 있어본 적도 없는 광야에 비가 쏟아져 27 거친 들을 흠뻑 적시고 메말랐던 땅에 푸성귀가 돋아 나게 하는 것이 누구냐? 28 비에게 아비라도 있단 말이냐? 방울방울 이슬을 낳은 어미라도 있단 말이냐? 29 얼음을 잉태한 배라도 있단 말이냐? 하늘에서 서리를 낳아 내릴 배라도 있단 말이냐? 30 물이 돌처럼 단단해지고 깊은 물이 꽁꽁 얼어붙을 때에. |
제2독서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교회는 밝아 오는 새벽처럼 나아간다 |
동녘이 밝아 올 때 어둠이 빛으로 변하기 때문에, 뽑히운 이들의 교회는 여명 또는 새벽이라고 합니다. 새벽이 어둠 후 태양의 빛나는 광채로 날을 밝혀 주듯이 교회도 불신앙의 밤에서 신앙의 빛으로 밝혀 줍니다. 이것은 아가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밝아 오는 여명처럼 나아오는 그녀는 누구인가?” 천상 생활의 상급을 갈망하는 성교회는 죄의 어둠을 떠나 정의의 빛으로 빛나기 때문에 여명이라고 부릅니다. 여명의 성격에 대해 좀더 깊이 고찰해 봅니다. 여명이란 밤이 이미 지나갔음을 말해 주지만 정오의 완전한 밝음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여명은 밤을 몰아내고 날빛을 환영할 때 빛과 어둠을 혼합 상태로 둡니다. 진리를 따르는 우리 모두는 이 현세에서 빛과 어둠을 혼합 상태로 두는 새벽 같은 존재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빛에 속하는 일도 하지만 어떤 일에서는 아직도 어둠의 잔재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 아뢰었습니다. “살아 있는 누구도 당신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란 없삽나이다.” 또 다른 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일이 많삽나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밤이 거의 새었다.”라고 말할 때 “낮이 왔다.”고 덧붙이지 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밤이 샌 후 낮이 “왔다”고 하지 않고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도 아직 어둠을 지니고 태양이 뜨기 전의 새벽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뽑힌 이들의 성교회는 죄의 어둠이 자신과 섞여 있지 않을 그때에만 완전한 낮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내적인 빛의 완전한 열기로 밝혀 질 때에만 완전한 낮이 될 것입니다. 새벽이 아직도 그 도정에 있다는 사실은 “당신은 새벽에게 ‘이것이 네 자리다.’ 하고 일러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누구를 자기 자리로 보낼 때 그는 분명히 한 자리에서 나와 다른 자리로 갑니다. 새벽의 자리란 영원한 직관의 완전한 광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직관에 도달할 대 지나간 밤의 어둠은 그 흔적조차 없을 것입니다. 새벽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윗이 말해 줍니다.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또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새벽은 자기가 알고 있던 이 자리로 급히 줄달음쳐 달리고 있었습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세상 만사를 그르침 없이 섭리하시는 천주여, 간절히 비오니, 무엇이나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멀리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허락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퀴노의 성 토마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참 생명에 이르는 길 (2) | 2023.06.10 |
---|---|
(캔터베리의 볼드윈 주교의 저서에서) 참된 분별력은 올바른 생각과 거룩한 지향의 결합입니다 (0) | 2023.06.09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참된 가르침은 자만심을 피한다 (0) | 2023.06.07 |
(성 도로테우스 아빠스의 글에서) 마음의 거짓된 평화 (0) | 2023.06.06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의 편지에서)그리스도의 양 떼를 지키는 충실한 목자 (0) | 2023.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