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 | (Lib. 23,23-24: PL 76,265-266) |
참된 가르침은 자만심을 피한다 |
욥기에 의한 독서 | 32,1-6; 33,1-22 |
엘리후가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말하다 |
제1독서 |
욥기에 의한 독서--엘리후가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말하다 |
32,1 욥이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자 세 친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2 그런데 람족 출신인 부스 사람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가 욥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하느님보다도 옳은 체하는 것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3 그는 욥의 세 친구에게도 솟아오르는 의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에게 답변다운 답변을 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잘못이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 되어 버렸으므로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4 그러나 그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욥과 말을 주고받는 동안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5 엘리후는 세 친구가 답변다운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의분을 느꼈다. 6 그리하여 부스 사람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는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였다. 어르신네들에 비하면 저는 한낱 풋나기입니다. 제가 무엇을 안다고 아뢰랴 싶어 황송하여 망설였습니다. 33,1 욥, 이제 내 말을 들어 보시오.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귀를 기울이시오. 2 이제 내가 말하겠소, 입 속에서 혀가 굴려내는 말을. 3 그 말은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 나의 입술은 솔직하게 소신을 토로할 것이오. 4 나도 하느님의 콧김으로 생겨난 몸, 전능하신 분의 입김을 받아 숨쉬게 된 몸이오. 5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해 보시오. 나와서 변론을 펴보시오. 6 나라고 하느님 앞에서 당신과 무엇이 다르겠소? 나도 먼지로 빚어 만드신 것, 7 그러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겁내지 마시오. 내가 당신을 너무 심하게 다루리라고 염려하지도 마시오. 8 내 귀가 당신의 말을 어찌 한마디인들 놓쳤겠소. 당신이 하는 말을 나는 다 들었소. 9 “나는 순결하여 죄가 없다. 깨끗하여 거리낄 것이 없다. 10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나를 몰아세울 구실이나 찾으시고 나를 원수로 여기신다. 11 나의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나의 걸음을 낱낱이 감시하신다.” 12 이런 당신의 말을 나는 도저히 옳게 받아들일 수 없소. 똑똑히 일러 드리리다. 하느님은 사람과 비길 수 없는 분이오. 13 그런데 당신의 말에 한마디 답변도 않으신다고 해서 어떻게 하느님을 비난할 수 있겠소? 14 사람이 모를 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길은 이런 길도 저런 길도 있다오. 15 깊은 잠이 덮어 씌워 모두들 자리에 쓰러져 곯아 떨어지는 밤에 하느님께서는 꿈에 말씀하시고 나타나 말씀하시지 않소? 16 사람들의 귀를 열어 주시고 깜짝 놀라게도 하시어 17 악한 일에서 손을 떼고 건방진 생각을 버리게도 하신다오. 18 그리하여 목숨을 무덤 어귀에서 건져내시고 생명을 저승길에서 돌려 세우시지요. 19 병상에서 신음하는 괴로움, 뼈 마디마디 쑤셔 대는 아픔이 그의 징계가 되는 수도 있다오. 20 음식이 전혀 입에 당기지 않아 진수 성찬도 입에 쓰기만 하고 21 뼈들은 앙상하게 가죽으로 덮여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몰골, 22 그 인간의 넋은 무덤의 문턱에 다다랐고 그의 생명은 죽음의 문턱을 막 넘어서려 한다오. |
제2독서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참된 가르침은 자만심을 피한다 |
“욥, 이제 내 말을 들어 보시오.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귀를 기울이시오.” 오만한 사람들의 가르침은 하나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르침에 겸손하게 전달할 줄 모르며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그대로 전해 줄 수 없습니다. 이 점은 그들이 가르칠 때 쓰는 말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즉, 그들은 자기네가 어떤 탁월한 높은 위치에 앉아 있다고 느끼면서 자기네가 가르치고 있는 이들이 까마득히 저 밑 가장 낮은 데서 앉아 있는 것으로 내려다보고는 권고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명령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주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이런 사람들에게 잘 말해 주십니다. “너희는 폭력과 잔학으로 그들을 다스렸도다.” 폭력과 잔학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은 자기 휘하의 사람들을 온유한 설득으로 고쳐 주려 하지 않고 잔혹한 지배로 꺾으려고 합니다. 한편 겸손한 사람의 참된 가르침은 생각으로 오만의 죄과를 열심히 피하면서 말씀의 화살로써 있는 힘을 다해 오만의 괴수를 추적합니다. 거룩한 말씀으로써 듣는 이들의 마음속에 그 괴수를 추적하는 동안 오만한 태도로 말미암아 도리어 그 괴수를 증거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그는 생도들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진리를 말해 주기 위해 가르침과 생활로써 모든 덕행의 스승이요 어머니인 겸손을 보여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때문에 바오로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흡사 자신의 고유한 사도직의 품위를 잊어버린 듯이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어린이처럼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말합니다.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그리고 나서 우리의 가르침은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합니다. “그러나 답변을 할 때 여러분은 언제나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부드러운 태도로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바오로가 디도에게 “큰 권위를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권고하시오.”라고 말할 때 권위로 지배하라고 권고하지 않고 모범적 생활이 주는 권위로 하도록 권고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것을 실천한다면, 그 사람은 가르치는 바를 권위 있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행동이 말하는 것과 모순된다면 그 가르침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오만한 말이 지니는 권위보다 착한 행실에서 오는 신뢰성을 천거합니다. 주님 역시 “그 가르치신 것이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약점에서 오는 어떤 죄도 범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 홀로 참된 권위를 가지고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인성의 무죄성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고 또 우리를 위하여 행사하신 권위를 당신 신성의 힘으로 말미암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세상 만사를 그르침 없이 섭리하시는 천주여, 간절히 비오니, 무엇이나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멀리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허락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캔터베리의 볼드윈 주교의 저서에서) 참된 분별력은 올바른 생각과 거룩한 지향의 결합입니다 (0) | 2023.06.09 |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교회는 밝아 오는 새벽처럼 나아간다 (3) | 2023.06.08 |
(성 도로테우스 아빠스의 글에서) 마음의 거짓된 평화 (0) | 2023.06.06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의 편지에서)그리스도의 양 떼를 지키는 충실한 목자 (0) | 2023.06.05 |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편지에서) 우리는 성령을 받음으로써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총과 성령의 친교를 누리게 됩니다. (1) | 2023.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