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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스크랩] * 교회의 본질

* 교회의 본질

연중 21주일

천국이 너무 붐비자, 베드로 사도는 선행점수 100점 이상을 얻은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했습니다. 한 남자가 “저는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3점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어 말했습니다. “저는 십일조도 열심히 바쳤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1점을 추가하니, 그 남자가 가만히 기억을 더듬은 후 말했습니다. “또 저는 남을 비방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베드로 사도는 0.5점을 추가해 주었습니다. 거의 포기 상태가 된 그가 결국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겠는걸. 주님 저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이제 됐네. 들어오게.”

이를 지켜본 부자가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말했습니다. “난 살아서 10원을 적선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자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이르셨습니다. “10원 도로 주고 지옥으로 보내거라.”

오늘 복음은 교회론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본문이며, 베드로의 천국열쇠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선배 수사님중의 한분은 제가 부제시절에 늘 강론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그러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입에서 복음의 핵심이 나옵니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마태오 복음서도 구원의 보편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에게 배척을 받은 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이 살과 피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이제 기쁜 소식은 살과 피라는 유대인 혈통에 묶인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살아계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신앙만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답게 해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유다인들과 이스람교도인들은 예수님을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동양 사람들은 예수님을 공자, 석가모니, 노자와 더불어 4대성인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다 라고 하시며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선언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러한 믿음을 기초로 해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란 용어는 단순히 장소적 개념을 일컫는 용어가 아닙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희랍어로 ekklesia 곧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소, 에클레시아는 히브리어 카할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백성, 공동체를 의미하고 또한 하느님 경배를 위해 모인 공동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있어서 교회란 개념은 하느님 경배를 위한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우실 교회는 새로운 교회입니다. 과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 경배를 위해서 모였더라면, 신약의 교회는 단순히 하느님을 경배하는 모임이 아니라, 예수님을 살아있는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살아있는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이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죽음의 세력도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합니다. 이는 교회의 근원이 신적차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너의 그 믿음은 살과 피 곧 인간적 생각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는 인간적 생각에서 나온것도 아니고, 현세적 목적과 영리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그 근원이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적 가치가 아닌 복음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세상을 초월하는 하느님 나라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근원은 신적인 차원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참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복음적 가치와 하느님 나라라는 초월적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았을 때,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신앙적 영성적 모임이 세상적, 인간적 가치만을 추구하고 세상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활동을 하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 안에 참 기쁨과 생명력이 고갈되어 있음을 봅니다. 얼굴에는 생기와 웃음기가 없으며, 머리속은 여러 가지 바쁜 일들과 생각들로 가득 차 있으며, 마음은 불안하고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우리의 삶이 인간적 생각과 현세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반증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신적생명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삶 안에서 복음적 가치를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지혜는 sapiens라고 하며, sapiens는 sapore 맛보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삶 안에서 복음적 가치를 맛보고, 살아낼 때만이 우리 안에 신적생명이 약동합니다.

복음은 명백하게 인간적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을 구분짓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다음 내용에서 베드로를 꾸중하실 때에,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는 구나라고 꾸중하셨으며, 사도 바오로는 육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를 엄밀하게 구분합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으며, 복음이 선포되고 복음을 삶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출처 : 가르멜
글쓴이 : 유스띠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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