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의 기도’ 사순 1주간 화요일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익숙한 주님의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서 완전한 기도라고 일컬어 집니다. 주님의 기도는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의 내용은 하느님과 관련된 내용으로서, 먼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게 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구현되도록 기도합니다.
후반부의 내용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으로서,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와 하루의 양식을 청하며, 우리의 덕의 실천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기도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먼저 하느님과 관련된 내용들이 나와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기도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먼저 내 뜻을 요구하고, 나를 찾고,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가 삶의 주도권을 쥐고, 주님을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서 주도권을 쥐시고 내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성녀 예수의 데레사 영성에서 1-3궁방 까지의 수덕궁방에 머무르는 사람들 곧 초심자들의 기도에서 보면 하느님이 주도권을 쥐시기 보다는 인간 편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4-7궁방 신비궁방에 머무르는 사람들 곧 영적으로 진보한 사람들의 기도를 보면, 인간의 주도권은 거의 없습니다. 하느님이 주도권을 갖고 계시며,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따를 뿐입니다.
주님의 기도 후반부의 내용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으로서 인간의 구체적 실천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완덕의 길에서 드러난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영성에서 기도가 공중에 뜨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 이탈, 겸손이라는 덕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에 진보하고, 기도의 열매가 맺어지기 위해서는 용서라는 덕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하느님만 부르고, 하느님만 찾고, 하느님의 생각하고, 많이 기도한다고 해서 영적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덕의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영적교만에 빠질 수 있으며, 기도가 공중에 붕 뜰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기도가 높은 단계에 이루었다고 하는 표지는 덕의 유무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구성을 통해, 기도는 신적이며 또 동시에 인간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하느님의 은총과 더불어 인간의 의지적 노력도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수레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신적은총이라는 한 쪽 바퀴와 인간적 노력이라는 다른 쪽 바퀴가 함께 가야 합니다. 어느 한 편도 무시하거나 덜 중요시해서는 안됩니다.
나무를 보면 광합성을 하는 나뭇잎과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뿌리가 있습니다. 나뭇잎은 해로부터 빛을 받아들이고, 뿌리는 물을 빨아들임으로써 탄수화물이라는 유기물을 생성합니다. 광합성이라는 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뭇잎의 수동성과 뿌리의 능동성 모두 필요합니다. 두 작용 가운데 하나의 작용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광합성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우리 마음을 내어드리는 우리의 수동성과 실제 삶 안에서 인간의 의지적 실천이라는 능동성이 함께 이루어질 때 기도의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기도함으로써 덕의 실천이 열매를 맺고, 덕을 실천함으로써 기도가 성장합니다. 기도는 인간과 하느님이 함께 만나고 함께 공유하는 장소이기에 기도는 신비롭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참된 기도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내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행위입니다. 또한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또한 기도가 완전해 지기 위해서는 용서라는 사랑의 실천 곧 덕의 실천이 요구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2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죄를 짓지 않는것과 용서하는 것입니다. 죄를 안짓는 것도 힘들지만, 나에게 상처와 모욕을 준 형제, 자매들을 용서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상처는 친밀감을 먹고 자란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실 나에게 상처와 멸시와 아픔을 주는 형제, 자매는 다름 아닌 내 주위의 사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용서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 만큼 가까웠고, 그 만큼 친밀했기게 더욱 상처받는 것입니다.
사실 참된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 6,12절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라고 표현했습니다. 언뜻 보면, 인간이 먼저 사람을 용서했기에 하느님께서 용서하신다는 의미로 알아 들을 수 있지만, 실제로 영어 표현이나 희랍어 표현에서는 순서가 뒤바껴져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forgive us our sins as we forgive those who sin against us 라며, 먼저 하느님께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그 다음에야 인간 사이에서의 용서가 나옵니다.
내가 용서받았기에, 내가 주님께로부터 용서받은 존재이며, 용서받은 체험이 있기에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용서의 순간이 필요할 때 하느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말하고,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 참된 기도와 용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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