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 친모를 생각하며
내 친모는
나를 기를 수 없었거나 기르기를 원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버렸다. 내가 그 과거와 마주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런 과거를 인정한 뒤에 조건 없는 사랑을 믿는 게 가능할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부모님, 더 나아가 프랑스 사회에게 또다시 거부당할 이유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플뢰르 펠르랭의《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중에서 - * 입양됐다 파양되기를 거듭하는 반려동물은 또다시 파양당할까 싶어서 과도하게 순종합니다. 버려지는 쓰라림을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타국에서 또다시 거부당할 이유를 만들지 않고자 노력했다는 말이 참으로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한 번 거부당했던 원초적 상처는 사랑 자체를 거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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