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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 한다

♡1605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 한다. ♡

호라티우스는 ''어리석은 짓을 삼가는 것이 지혜의 입문이다.''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진심만을 말하라. 상대의 환심을 사면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는 늘 기분 좋게 느끼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은 아부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또한 상대를 마음대로 하려는 얄팍한 술책이거나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아첨이라고 말한다. 칭찬과 아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칭찬은 진심이 뒷받침 된 것이다. 칭찬을 할 때 칭찬 그 자체 외에 다른 뜻이 없는 진실한 마음은 눈빛으로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똑똑한 척하지 말라. 똑똑한 척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도 운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우선 똑똑한 척 행동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똑똑하면 이로울 게 없는 것이다.

금 이 순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감사하라. 당신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당신이 이룬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단정하게 차려 입어라. 단정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다. 색상이나 잘 어울리는 옷차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당신이 단정하게 매력적으로 차려 입으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적극적으로 자극을 받아 당신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인내심을 가져라. 운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순간에 페달을 밟지 앓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할 지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질투심을 반드시 버려라. 가장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질투심이다. 질투를 하면 스스로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운과 기회를 망치게 된다. 질투심이 많아 보이면 당신은 결코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운 나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배 아파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을 편히 가져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 뜻한 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어쩌다 힘든 날일뿐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 지금 이 순간 너무 너무 힘들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마음이 좋은 사람이 낫고, 마음 좋은 사람보다 손이 좋은 사람이 낫고, 손이 좋은 사람보다는 발이 좋은 사람이 낫다.” 지금 이 순간 수확할 밭의 일꾼이고자 합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아는 신앙인보다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신앙인이 낫습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신앙인보다는 손으로 봉사하는 신앙인이 더 낫습니다. 봉사하는 손을 가진 신앙인보다는, 그에게로 달려가는 발을 가진 신앙인이 훨씬 더 낫습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영이 있기를 청합니다. 왜냐하면, 은총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나누면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이 은총위에 은총이 있게 됩니다. 함께 나눔으로 은총위에 은총이 있게 되는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먼저”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에게 ‘서로를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고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서로를 가엾게 여기거나 불쌍하게, 측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매일 말씀를 준비할 때, 먼저 10여일전 준비한 초안을 가지고 주제를 정합니다. 주제는 쓰고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인생에 주제는 지금 이 순간 분명해야 합니다. 내 인생 마지막 남은 것은 지금 이 순간 예수님밖에 없음을... 예수님이 전부이심을...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의 흔들림 없는 주제여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주제를 가진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가엾게 여기시어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들이 가엾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고백하는 일꾼들을 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인생에 남은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리고 제 인생의 예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 마태오 복음 18장 33절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이 말씀은 “너도 자비를 받았으니, 상대방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서로 불쌍한 마음으로 자비를 풀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셨고, 사랑하셨고, 용서하셨고, 이해 하여주셨음은 저희에게 기쁜 소식이고 희망입니다. 아멘.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마지막 남은 것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그리고 예수님이 전부이심을...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들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시어 사랑하고 용서하고 계심을 믿고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저희부부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악은 선을 인식시키고 고통은 기쁨을 느끼게 한다.''
- 그리스도 -


♡1606 . ‘주님,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인 - 것처럼 대하게 하소서.’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월요일  조상님과 낙태 영혼위해 연도바치기, 묵주 5단,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1월 11일(시편 27편~ )

유동범은 ''모든 인간은 본래 혼자다. 그래서 혼자일 때가 가장 편안하다. 따로 사는 것만이 함께 살기를 수월하게 한다. 일정한 거리가 없이는 사람이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공동생활을 오래했던 한 수사 신부님이 이탈리아의 한 공동체를 방문했다. 4백 명이 함께 공동 생활하는 곳인데 서로를 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매일, 아침이나 저녁이나 따뜻하고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공동생활의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이런 신선한 사랑을 매일 나눌 수 있습니까? 서로 지겹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들은 매일 아침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인 것처럼 대하게 하소서.’”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즐거울까요, 긴장이 될까요? 당연히 긴장이 됩니다.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합니다. 이미 나의 사람이 되었다고 편하게 생각하면 막 대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함으로써 상대에게 부담을 줍니다. 그렇게 관계가 소원해지게 됩니다. 정채봉씨가 쓴 에세이집에 ‘만남’ 이란 글이 있다. 그곳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만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가장 잘못된 만남이 ''생선 같은 만남''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만남은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으로 ''꽃송이 같은 만남'' 을 듭니다. 피어있을 때에는 환호하지만 시들게 되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지우개 같은 만남'' 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남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어떤 만남일까요? 그것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 입니다. 지금 이 순간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이렇게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지만 크게 보자면 오래 지속되는 만남과 빨리 끝나버리는 만남, 이렇게 딱 두 종류가 있는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만남엔 ‘눈물’ 이 있다. 이 눈물이 마냥 기분 좋은 눈물만은 아닐 것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감싸주기 위한 눈물이요, 나를 사랑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래 가는 만남은 내가 즐겁기 위한 만남이라기보다는 상대를 즐겁게 해 주는 만남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로 누군가를 만날 때 힘이 든다면 잘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즐겁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힘들면서도 즐겁다면 잘 만나는 것입니다. 즐겁기만 하다면 내가 그 사람을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이익을 얻기 위해 만난다면 그 사람과의 만남이 즐겁다. 상대를 위한 만남은 많은 참아냄이 필요합니다. 매번 처음 만나는 것처럼 긴장해야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사람을 만날 때 즐겁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만날 때 힘이 들면 만나도 됩니다.” 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불만 때문에 하느님께 죽여 달라고 청한 인물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에게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 만남이 좋은 만남입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과 만났다. 심지어 삼년 반이나 그들을 피해 있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게서 바알 예언자들을 죽여 이스라엘을 정화하였다. 이런 만남이 좋은 만남입니다. 마냥 즐겁기만 하다면 나중에 남는 것이 없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힘이 듭니다. 좋은 만남인 것입니다. 자녀가 나이든 부모와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만남이 ''남는 만남'' 입니다. 힘이 든다면 계속 만나야합니다. 그래야 나도 발전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기도에도 적용됩니다. 하느님은 나에게 영광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나를 죽이기 위해 기다립니다. 나의 피를 빼내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도 그런 하느님을 만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도 나를 만나시는 것이 힘이 드십니다. 당신의 피인 성령을 주셔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피를 흘리는 만남이기 때문에 오래 가는 만남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이 만남을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영광 속에서만 머물려하고 피를 흘리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순교해야 함을 더욱 확고히 하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성경을 뜻합니다. 성경 말씀은 바로 ‘탈출기’ 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라고 하듯이 ‘나의 죽음’ 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의 영광만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기도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를 만나 자신을 크게 만들려는 사람이 있고, 부모를 만나 자신을 작게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 부모를 만나 자신을 크게 만들려는 사람은 부모를 이용하는 사람이고, 부모를 통해 자신을 작게 만들려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관계가 진정한 관계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도를 하는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뜻에 따라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 어떤 기도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기도이고 어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나아가시는 것을 보시며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고 하시며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만약 자신의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기도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런 영광은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나를 죽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나면 반드시 내가 조금 더 주님의 뜻에 죽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멘.
지금 이 순간 기쁜 일이든 고통스러운 일이든 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라 생각하며,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매 순간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 수 있는 기도의 은총이 바다의 물결처럼 춤을 추듯 놀라운 기적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저희부부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난관은 낙담이 아닌 분발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투쟁을 통해 강해진다." - 윌리엄 엘러리 채닝 -
♡1607 사랑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일 조상님과 낙태 영혼위해 연도바치기, 묵주 5단,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1월 12일(시편 119편~ )

헨리 포드는 ''세상이 당신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게 주라.'' 영화 ‘기생충’ 은 가난한 집 가족과 부잣집 가족 간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가족 간의 관계가 아니라 두 인격체의 관계로 대입해 생각해도 괜찮은 영화 같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난한 우리가 어떻게 으리으리한 집을 차지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벌어서 그 집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가난의 굴레에서 피자 박스나 접으면서 그 집을 살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이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집을 팔 의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느님 나라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살게 될 천국과 같은 집입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 나라의 집을 돈을 많이 모아서 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 인간이 그만한 액수의 돈을 모을 수 없을뿐더러 그분은 그 나라를 우리에게 파실 의향도 없으십니다. 당신의 영원한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순간 인간이 노력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바로 첫 조상들이 그랬다. 그들은 무화과 잎으로 두렁이를 만들어 자신들을 가렸다. 그러면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인간의 행위와 공로만으로는 결코 그 나라에 살 자격을 얻을 수 없다. 하늘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천사들’ 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합당하게 하늘 나라를 누립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잠은 다시 지하 단칸방에 가서 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집의 주인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 집의 모든 것을 내 것처럼 누릴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옥에 가는 것보다 주님의 종으로서 그 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일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종살이하는 것이 싫어 그 집을 다시 강탈하려 한다면 마귀가 됩니다. 아예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사실은 그렇게 주인의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다. 종은 주인의 것과 내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지내야합니다. 종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영화 ‘기생충’ 에서 반지하에 사는 아이는 그 부잣집의 딸의 과외선생으로 들어갑니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만약에 둘이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그 아이는 그 집을 자신의 집처럼 누릴 수 있다. 주인의 자녀와 혼인하면 한 가족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성립되려면 나도 그 집 자녀를 사랑하고 그 집 자녀도 나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죽을 줄 알아야 둘이 한 몸이 될 수 있다. 내가 내 자신을 내어주어야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어 나는 그 상대의 심장에 살고 그 상대는 나의 심장에 살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렇게 차지한 첫 모델과 같은 분이 계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나라의 아드님과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시게 된 것은 그분의 뜻을 당신의 뜻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뜻이 욕구요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라고 하십니다. 당신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당신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주님의 뜻이 당신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며 하느님의 아드님과 한 몸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영광스럽게 하실 것인지 성모님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그 이전부터 차지하고 계셨던 분입니다. 하느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당신 뜻을 봉헌하는 순간부터 하느님의 나라는 성모 마리아의 것이었다. 성모 마리아는 이렇듯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신 구원의 모델이십니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간 것만 경축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의 모범으로 그분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될 것인지를 살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하느님의 아드님, 하느님의 뜻을 잉태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살려고 노력하였습니까? 그러면 당신을 땅으로 내려오게 해 준 우리를 위해 당신이 계신 곳으로 우리를 올려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 땅에 살게 합시다.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뜻은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지금 이 순간 성령의 불을 밝혀 주님의 말씀 속에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늘의 은총과 축복을 보는 눈과 하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린 신앙인 되시어 천상 상급을 받는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작은 성공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큰 성공을 얻지 못한다.'' - 제세 메서 게만 -

♡1608 모든 죄는 교만으로 시작됩니다. 교만하면 거짓말하기 시작합니다. - ♡

샹포르는 ''모든 날 중 가장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웃지 않은 날이다.'' 인도의 제녀 부인은 임금이 사마 부인을 더 사랑하는 것에 질투가 났다. 어느 날 제녀 부인은 용기를 다해서 왕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꾸며댔다. “상감마마, 사마 부인은 자주 절에 출입하는데 아마 중놈과 은정을 통하는가 하나이다.” 제녀 부인은 왕을 위하는 듯이 그럴듯하게 거짓을 꾸며댔다. 왕은 부들부들 떨면서 활을 들고 사마 부인 방으로 달려갔다. 방안에 들어선 왕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마 부인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 이상하게도 첫 화살도 둘째 화살도 맞지 않았다. 셋째 화살도 맞지 않았다. 왕은 숨을 내쉬며 활을 내렸다. 사마 부인에게 비로소 말을 건넸다. “그대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로다. 어찌하여 화살이 맞지 않는가?” 사마 부인은 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상감마마 어찌 별다른 사람이겠나이까. 다만 상감마마를 생각하는 것이 첩의 마음의 전부인지라. 아마 그 화살 사랑에 못 이겨 피한 줄 믿나이다.” 왕의 두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거짓말을 한 제녀 부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짓말은 교만에서 나옵니다. 자신을 더 높이고 더 인정받기 위해 하는 것. 겸손하면 어차피 떨어질 위상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솔직함이 믿음과 직결되는지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이 곧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눈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거짓이 없는 사람만이 성경을 해석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지 못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가리려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것.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는 하느님과 같아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잘못이 있음을 하느님께서 안다면 꾸중을 듣고 작아져야 합니다.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두렁이를 만들어 몸을 가립니다. 그러면 높아질 줄 알았던 것.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는 이 모습이 곧 하느님과 맞서려는 모습입니다. 잘못을 감춤으로써 자신이 높아진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인사 청문회 때 항상 말썽이 생기는 이유는 잘못을 감추어 두었다가 들통 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감추고 들키지 않으면 높은 위치에 앉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사람은 에덴동산에 살기에 합당하지 않다. 아마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이런 묵상을 하고 있었을 것. 이때 필립보가 와서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성경말씀에 철저한 나타나엘은 그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율법에 따르면 메시아는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엘 쪽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며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 ‘뭐지? 하느님의 백성이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어떻게 아셨지?’ 그래서 묻습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아마도 나타나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 이스라엘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거짓이 없어야 이스라엘 백성임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무화과 잎으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던 그 나무 밑에서 그 생각을 더 굳게 다지고 있었던 것.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자신의 속생각까지 다 알아맞힌 예수님께 이젠 믿음이 생겨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죽인 많은 유다인들은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참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던 이유는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 이 교만에서 벗어나는 길은 솔직해지는 것. 모든 죄는 교만으로 시작됩니다. 교만하면 거짓말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높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용서는 겸손으로 시작될 것. 이를 위해서 고해소에서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는 것. 거짓말하지 않고 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함으로써 죄를 짓기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 이런 고해성사가 아니면, 야고보 사도가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야고 5,16)라고 하는 것처럼 면담자에게 깊은면담을 통하여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도 좋다. 고해소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듣고 있는 사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더 좋을 것.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깨닫는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성경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예수님을 더 깊기 믿게 됩니다. 그 이전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죄를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함입니다. 우리는 두렁이를 걸친 채 성경을 이해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로 누군가를 기억하며 주님과 같은 길을 기쁘게 열심히 함께 걸어가는 은총과 축복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가시나무를 심는 자는 장미를 기대해서는 안된다.''-필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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