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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과 비움 /독서

김건종의《마음의 여섯 얼굴》많은 어머니들이 듣고 위로 받는 말

 
많은 어머니들이 듣고 위로 받는 말


위니코트는 이렇게 썼다.
"아동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할 수 있으려면 그가 누가 됐든 아동이 도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계가 완전히
깨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많은 어머니들이
위니코트의 이 말을 듣고 위로 받는다.


- 김건종의《마음의 여섯 얼굴》중에서 -


*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미움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움으로 인해 아동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부모 역시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너무 자책하지 않도록 해요.

어쩌면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니까요.
 
 

목차

  • 추천의 글: 아주 두꺼운 책 006
    머리말 011

    첫 번째 얼굴: 우울 019
    두 번째 얼굴: 불안 063
    세 번째 얼굴: 분노 101
    네 번째 얼굴: 중독 129
    다섯 번째 얼굴: 광기 159
    여섯 번째 얼굴: 사랑 197

    맺음말 229
    미주 240
    그림 및 사진 출처 244
    찾아보기 245
우리는 왜 우울하고, 불안하며, 화를 내고, 중독되며, 미치고, 사랑하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 김건종이 흔히 병리이자 질환이라고 여겨지는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와 같은 감정들이 가장 정의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 중 하나인 사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색하는 『마음의 여섯 얼굴』. 우리의 여섯 가지 감정을 주제로 쓴 이 책에서 저자는 의사로서 혹은 치유자로서 환자의 마음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사람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관통했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저자는 우울과 사랑이 아주 미묘한 경계선을 가지는 것처럼, 분노와 수치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중독과 사랑이 어둠과 빛처럼 맞닿아 있듯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정의하기 어렵고 모호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내적 고백과 환자들의 목소리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모자이크처럼 붙이고 연결한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에 관한 시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을 오랜 시간 동안 벼리고 다듬어 쓴 간결하고 빛나는 문장에 담아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마음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론을 내세우고 결론을 내고 적절한 스토리와 살을 붙여서 통합적으로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감정과 마음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이론가들과 정신분석가들의 개념 그리고 최신 과학적 성과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저자는 주로 자신이 이 고단한 현실을 살면서 느끼고, 겪고 자신의 몸을 통과해낸 것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감정은, 정상과 병리는, 우울과 사랑은, 균형과 불균형은 정확하게 경계가 나뉘지 않기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삶 속 괴리와 모순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추천사

  • “나에겐 깊은 우울과 불안이 있다. 거기다 쉽게 들끓는 분노와 사랑에의 갈망은 나를 더욱더 우울하고 불안하게 한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각자 고개를 쳐들면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내면의 폭풍은 서로 절묘하게 연결되어 때론 시로, 노래로, 그림으로 재탄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런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지은이의 인문학적 지식은 놀랍다. 언젠가 지은이가 인간의 복잡한 마음의 연결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여 우리에게 보여줄 날을 기다려본다.”
    (정신분석 전문의,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지은이)
  • “탁월한 임상가이자 진지한 분석가인 지은이가 오랜 세월 동안 삶의 굴곡을 몸으로 겪으며 엮어낸 여섯 가지 두꺼운 고백에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저자(글) 김건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의사보다는 책 읽는 일을 하는 게 적성인 것 같아 대학교 1학년 때 한 번, 의대를 졸업하고 한 번, 의학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지금은 결국 공부와 일과 삶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마흔을 앞두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두 아이 아빠가 되었고, ‘담은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밭을 갈 듯 꼼지락꼼지락 문장을 만지는 일이 좋아 틈틈이 『감정의 치유력』 『정신적 은신처』 『수치 어린 눈』 『황홀』 『자아와 방어기제』 『리딩 위니코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우울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하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을 느끼고 받아들여본 적이 없기에 이들은 안 좋은 감정이 생기면 이를 느끼기 전에 밖으로, 정확하게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버린다. 그래서 그 감정을 받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어 놓고 자신은 텅 빈 상태를 겨우 유지하면서,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잘난 척한다. 나는 자수성가해서 이렇게 살아남았는데, 자식놈은 왜 이리 나약한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왜 클라인은 하필 '우울 자리'라는 '우울한 이름을 이렇게 더 건강해 보이는 상태에 붙였을까? 이 우울 자리'의 핵심은 '너 때문이야'라고 하는 대신에 나 때 문이야'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것은 다시 말해 내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사랑하는사람을 내가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우울 자리의 핵심인 것이다.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우울해진다.클라인의 생각이 절묘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우울 자리는 따라서 한편으로 능력이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이다.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내가 그에 책임지는 자세는 성숙하고 멋진 일이지만, 그 마음자리에 오래 있는 것은 너무도 지치고 힘든 일이 라서 언젠가 우리는 거기서 도망칠 수밖에 없다.

​**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말한다. 아기는 엄마 얼굴 표정을 통해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감지한다. 사랑으로 가득한 엄마의 눈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낀다. 반대로, 무력감으로 텅 빈, 혹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엄마의 눈을 바라보면서 아이는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것, 혹은 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수치가 생긴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추한 존재라는 깊은 상실감, 무력감,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 내가 나를 아는 것은 애당초 타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분노는 가장 흔한 '이차 감정'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원래 감정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지우고 덮기 위해서 동원하는 대체 감정이라는 뜻이다. 나의 경우 분노 밑에는 수치(일차 감정)가 있었다. 또 다른 많은 경우 무력감이 있고 불안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약하다. 내가 못나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여리다. 어쩔 줄 모르겠는 혼란을 있는 그대로 가만히 지켜보기(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라고 키이츠는 말했다. 그리고 비온은 정신분석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를 언급했다)에는 너무 무르다. 그래서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순간의 강렬한 에너지 덕분에 우리를 괴롭히는 저 날카로운 감정들은 잠시 희미해진다. 잠깐 괜찮은 것 같다. 내가 단단한 것 같고 강한 것 같다는 미묘한 확신이 우리를 위로한다. 어쩌면 우리가 더 많이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더 많이 좌절하고 불안해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분노는 어떤 때 나를 지키는 갑옷이 되고 , 잠깐이나마 나를 살리는 양분이되고 잠시 버티게 도와주는 강장제가 된다.

그러나 나를 되살리는 것 같은 분노도 자꾸 의지하다보면 중독이 된다. 분노 자체가 마치 알코올처럼 습관이 되고 만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이 필요하게된다. 밖에서는 내가 돈도 못 벌고 마누라에게 구박받고 상사한테 비난당하는 찌그러진 인생이지만, 지금은! 아들을 가르치는 지금은!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감정에 중독된다. 그 중독적인 분노가 아빠를 몽롱하게 만든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세상에 그 분노를 되돌려주게 만든다).

*****실제로 연구자들에 따르면 공격적 행동은 인간 뇌에 있는 보상센터를 자극하는데, 거기에 더해 이미지 연구들을 보면 우리가 처벌 행위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불법 약물 복용 시 활성화되는 영역과 겹친다고 한다. 중독적인 기분 좋은 만족감이 온몸을 감씨는 것이다. 양육에 대한 고전인 『카즈딘 교육』에서 저자 앨런 카즈딘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부모들에게 행동을 없애기 위해서 아이를 처벌하는 것은 처벌 고유의 내적 보상에 의해 유지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복수를 하는 순간에도 우리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초법적으로 원수를 응징하는 느와르 영화에 사람들이 은근히 쾌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리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자존감이 낮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눈치보는 부모가 집에서 애들에게 그토록 엄격하고 가혹해지는 이유도 일부는 여기 있다.

******마이클 아이건이 서술한 적 있듯, 복수 역시 자신이 “온전하고 순수하다고 느끼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며, “독소를 우리 마음으로부터 제거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정서심리학 교과서에서도 분노에 담긴 이 미묘하고 복잡한 정서들이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오래전 멜라니 클라인은 질투와 시기를 구분하여 정의한 적이 있다. 클라인에 따르면 나에게 없는데 너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싶다면 질투이다. 그러나 나에게 없는데 너에게 있는 것을 파괴해 버리고 싶다면 그것은 시기이다. 너에게 있고, 나에게 없다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없는 게 낫다. 원시적인 공격성이 스며 있는 시기라는 감정은 그만큼 더 강렬하고, 더 아프고, 더 짜릿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자기보다 작고 약한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무력함에 대한 자기감정을 회피하는 데 가장 좋은 방어이다. 그것은 분열돤 약함의 표현이다- 앨리스 밀러

*****'아동이 고통 받는 가장 큰 외상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내 부모가 나쁘다고 생각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를 선택(물론 무의식적으로)한다. 우리 부모는 착한 사람들이다. 내가 못났기에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낳은 부모가 사실은 부모 자격이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부모는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나는 바꿀 수 있으니까.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리고 무력한 아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일 테지만, 내가 못난 건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 테니​

**********피부가 마취되면 고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도 시원한 바람의 흐름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다.괴로움을 피하면 기쁨도 사라진다.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를 더 심오하게 표현했다.

"언젠가 닥칠 삶의 무시무시함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존재의 형언할 수 없는 풍부함과 힘을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가장자리를 배회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심판이 내릴 때, 그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닐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 못 마시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기묘한 사회, 알코올중독의 평생 유병률이 22퍼센트에 달하는, 세계에서 알코올중독의 유병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 자해도 중독의 일종.  - 자해는 이해할수없고 통제할수 없고 감당할수없는 심리적고통을이해할수있고 통제할수있고 감당할수있는 신체적고통으로 대체하려는.시도

*****우리는 거울을 보고 그 안에서 나를 본다. 내 얼굴이 저렇게 생겼구나 알게 된다(라캉은 엄마의 눈동자가 첫 번째 거울이라고 했다). 저게 나로구나 한다. 그런데 내가 나를 인식하는 이때 이미 나는 나의 밖에 있으며 타인이 나를 보듯 스스로를 보고 있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타인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항상 남의 자리에서 사유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는 착각과 오해 속에서, 내가 독립적이며 자율적이라는 망상 속에서, 겨우 멀쩡할 수 있다는것이 라캉의 주장이다. 그러나 라캉도 이러한 '정신증적 주체와 병리적인 정신증 증상 자체는 구분했다(이러한 일견 모순된 입장 없이는 광기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융은 광기 역시 우리의 무의식이 의식에게 주는 일종의 메시지이자 계시로 여겼다. 마치 꿈이 그렇듯이 말이다.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을 보면 융의 삶 역시 온갖 신비롭고 환각적인 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는 삶에서 중요한결단을 내릴 때 꿈의 메시지를 따랐다(그가 정신과 의사가 된 것도 전날 꾼 꿈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유독 미친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자신의 내면에서 항상 미친 측면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재미있게도 세 가지 뇌 회로, 그러니까 성욕과 낭만적 끌림과 애착은 모두 다목적용 시스템이다.

성욕과 관련한 시스템은 공격성과 연관되어 있고, 낭만 시스템 중독 및 우울과 연관되어 있으며, 애착 시스템은 불안 혹은 공황 과 연관되어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가 자연스레 느끼는 끌림은 중독자가 느끼는 강박적 허기와 구분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 느끼는 상실의 고통우울과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기제이다.”

성욕은 테스토스테론, 공격성 낭만은 da,ne(경쟁자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sert(결합하다), 애착은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또한 현대 정신분석가 오토 컨버그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발달'은 '우울할 수 있는 능력'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드물지 않게, 우울 때문에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미묘한 불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약을 먹고 우울한 건 좀 사라졌는데요, 이상하게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유리가 끼어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괴로운느낌이 줄어든 대신 좋은 느낌도 적고, 뭔가 무심한 듯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겠어요."

책 속으로

“마음의 여러 얼굴을 만나게 하여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사적 삶에 대해서 쓰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자기노출의 불안 때문에, 개인적 일화를 덧붙이는 것이 오히려 이야기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써놓은 원고를 새로 시작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망함을 무릅쓰고 ‘나’의 이야기를 남겨놓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보다 나 자신의 마음과 몸을 통과(그것이 내게는 ‘연결’의 의미이기도 하다)해가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으로 겪어낸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감정이 생각과 관념과 만나는 현장이 바로 공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독자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이 책의 문장들을 다시 살아보실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책과 다른 유일무이한 책이 마음에서 쓰일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 그만큼 반가운 일은 없을 것 같다.”(17쪽)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이 환자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석’이라는 행위는 항상 정신분석 치료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해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해석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담요를 잊듯, 어떤 때는 증상이 스스로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홍시가 붉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상당히 많은 순간 해석은 하나마나한 뒷북이거나, 치료자가 잘난 척하는 수단이 되거나, 환자의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자극하는 비수가 되어버린다. 위니코트가 자신의 진료실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적은가’라는 표어를 붙여놓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175~176쪽)

“실제로 조현병 환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들에게 환각과 망상은 우리 것과 똑같은 ‘진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만큼(나는 그들과 우리를 형식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생생하게, 어쩌면 지나치게 생생하게 삶을 경험한다.
오히려 마음에 구축된 세계가 지나치게 생생하고 논리적이기에 그들은 이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꿈이나 백일몽을 가지고 놀 듯, 그들은 그 세계를 가지고 놀지 못한다. 마치 나무에 박힌 쐐기처럼 그 세계에 꽉 틀어박혀 있어 자신을 압도하며 짓누르는 저 세계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강렬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그들에겐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고’가 없다. ‘안되면 말고 되면 좋고’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편안함도 여유도, 기쁨도 즐거움도 없다. 우리의 일상 대부분을 지배하는 서로 모순되는 감정의 양립(이를 우리는 양가성이라 부른다)도 불가능해서 사랑 속에 미움이 있고, 여유 속에 지루함이 있고, 불안 속에 설렘이 있고, 우울 속에 날카롭고 미묘한 기쁨이 있는, 삶의 모든 곳에 스며 있는 복잡성이 사라진다. 그늘 속엔 온통 어둠뿐이고, 햇살 속에는 온통 환한 빛뿐이라서 명암과 계조의 미묘한 놀이가 사라져 버린다.”(183~184쪽)

출판사 서평

십수 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해 온 지은이가 우리의 여섯 가지 감정을 주제로 쓴 책이다. 흔히 병리이자 질환이라고 여겨지는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를 살피는 지은이는 이러한 감정들이 가장 정의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 중 하나인 사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한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과 나눈 수많은 이야기와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삶에서 끌어올린 내적인 자기 고백이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던 학자와 예술가의 생각들과 연결되어 하나의 독특한 그림을 그려낸다. 무엇보다 의사로서 혹은 치유자로서 환자의 마음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관통했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에 관한 시적(詩的)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오랜 시간 동안 벼리고 다듬어 쓴 간결하고 빛나는 문장에 담겨 있다.

우리는 왜 우울하고, 불안하며, 화를 내고, 중독되며, 미치고, 사랑하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과 마음에 관한 시적(詩的)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
오랜 시간 벼리고 다듬어 쓴 간결하고 빛나는 문장

“아주 두꺼운 책”

우리는 왜 우울하고, 불안하며, 화를 내고, 중독되며, 미치고, 사랑하는 것일까? 십수 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해 온 지은이가 우리의 여섯 가지 감정을 주제로 쓴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병리이자 질환이라고 생각하는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가 어떻게 (가장 정의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결되는지를 탐색한다.
사실 책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무궁하고 난해한 주제를 다루기에는 얇은 편이다(물론 책이 두껍다고 해서 마음이라는 주제를 망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아주 두꺼운 책이다. 화려하고 현란한 이론적 개념이나 틀 대신 지은이 자신이 이 고단한 현실을 살면서 느끼고, 겪고 자신의 몸을 통과해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울과 불안과 분노와 중독이라는 감정은 지은이의 어린 시절 기억과 젊은 날의 방황과 일상에서의 감정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글 속에서 그 어떤 고상하고 수준 높은 이론적 개념보다도 더 진하고 설득력 있게 정체를 드러낸다.
타인의 감정과 마음을 해석하는 사람, 의사라는 권위자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삶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 자신이 딛고 선 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두껍게 씌어진’ 책이다(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표현을 빌려왔다).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정신과 마음에 대해서, 타인의 무의식에 대해서 해석하고 분석한 그간의 숱한 책들이 정작 지은이 자신의 삶과 감정과 무의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인색했다면 이 책은 결을 달리한다(우리 사회의 문화적 배경도 한몫했다고 본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무의식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부끄럽고도 힘든 일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우리의 마음에 대해 체계적으로, 그러니까 이론을 내세우고 결론을 내고 적절한 스토리와 살을 붙여서 통합적으로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감정과 마음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이론가들과 정신분석가들의 개념 그리고 최신 과학적 성과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실 좀 부수적이다. 우울과 사랑이 아주 미묘한 경계선을 가지는 것처럼, 분노와 수치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중독과 사랑이 어둠과 빛처럼 맞닿아 있듯이 책의 내용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정의하기 어렵고 모호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내밀한 내적 고백과 환자들의 목소리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모자이크처럼 붙이고 연결한다. 우울을 의지로 억지로 억누르려 시도하는 사람들처럼, 불안해하지 말자고 하면서 자꾸 불안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 깊은 곳의 결핍을 뱃속의 기갈을 채우려 끊임없이 뭔가를 채우려는 중독자들처럼 억지로 틀을 만들어 끼워 넣고, 통합을 생각하고, 빈틈을 채워 넣으려 하지 않는다. 지은이 말마따나 우리의 마음과 감정은, 정상과 병리는, 우울과 사랑은, 균형과 불균형은 정확하게 경계가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삶 속 괴리와 모순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뜻한 시선, 깊고 오래된 생각, 간결하고 빛나는 문장

“질병이 없는 상태가 건강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삶은 아니다.” 우리의 삶과 감정에는 온갖 불투명하고, 고통스럽고, 병리적이고, 모순적인 것들이 들러붙어 있지만, 그것을 없애버리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지은이가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과 나눈 수많은 이야기와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끌어올린 내적인 자기 고백을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던 학자와 예술가의 생각들과 ‘연결’해 그려낸 그림은 맺음말에서 보여주는 파울 클레의 자화상과 닮아있다. 서로 부조화하는 것 같은 여러 색깔과 조각들이 전체적으로는 미묘하게 균형을 갖는 자화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