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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의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청한 다음 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의 ‘주님의 기도’에서 (Nn. 18. 22: CSEL 3,280-281. 283-284)
판관기에 의한 독서 8,22-23. 30-32; 9,1-15. 19-20
제1독서
판관기에 의한 독서
그 무렵 8,22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청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 23 기드온은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하며 그들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대들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시오.”

30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아들이 칠십 명이나 되었다. 31 세겜에 그의 소실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도 기드온에게 아들을 하나 낳아주었는데, 그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불렀다.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수를 다 누리고 죽어 아비에젤의 성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무덤에 묻혔다.

9,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으로 외삼촌들을 찾아가서 외삼촌들과 외가댁 온 일가에게 청하였다. 2 “세겜의 모든 어른들에게,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의 지배를 받는 것과 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나으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그들과 한 골육이라는 것도 잊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3 그의 외삼촌들은 이 말을 세겜의 모든 어른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아비멜렉이 자기들과 한 혈육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그에게 기울어 4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세겔을 내다가 그에게 주었다.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할 일 없는 건달패를 사서 졸개로 삼아 거느리고 5 오브라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들 곧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만은 어디엔가 숨어 있었으므로 살아 남았다. 6 세겜의 모든 어른들과 밀로의 온 집안은 세겜에 있는 석상 옆 상수리나무 아래에 모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받들었다.

7 이 소식이 요담에게 전해지자 그는 그리짐산 꼭대기에 가 서서 소리 높이 외쳤다. “세겜의 어른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도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실 것이오.
8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와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로 하고
올리브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9 그러나 올리브나무는 사양을 했소.
‘내 기름은 모든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런데 나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10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11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사양을 했소.
‘나 어찌 이 훌륭한 과일을 내지 않고,
나 어찌 이 달콤한 맛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12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13 그러나 포도나무도 사양을 했소.
‘내 술은 모든 신과 사람을 흥겹게 해주는 것,
그런데 나 어찌 이 술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14 그래서 모든 나무는 가시나무에게 청을 드려 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15 그러자 가시나무는 그 나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소!
‘너희가 정말로 나를 왕으로 모시려는가?
정녕 그렇거든 와서 내 그늘 아래 숨어라.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가시덤불이 불을 뿜어
레바논의 송백까지 삼켜 버릴 것이다.’

19 만일 여러분이 이날 여룹바알과 그 집안에 한 것이 떳떳하고 아무 잘못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비멜렉과 행복스럽게 잘들 지내 보시오. 20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의 어른들과 밀로의 집안을 삼키고 세겜의 어른들과 밀로의 집안에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삼키라고 나는 빌겠소.”
 
제2독서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의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청한 다음 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의미는 모두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빵입니다. 그리고 이 빵은 모든 이의 빵이 아니고 우리의 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의 자체들인 우리의 빵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매일 매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구원의 양식으로 매일 성체를 영하는 우리는 중한 죄에 빠짐으로 천상의 빵을 영하지 못하게 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이 양식을 매일 매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이 주시는 양식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실 때 영원히 사는 이들이란 당신의 몸을 이루어 합당한 자로서 성체를 영하는 이들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누가 성체를 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두려워하고 이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친히 이 위험을 되새겨 주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분의 은총과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우리의 양식 곧 그리스도를 매일 매일 주십사고 청합니다.

이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면서 우리 죄의 사함을 청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한 다음 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또 우리 죄의 사함을 얻도록 기도하라고 강권하는 것은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슬기로우며 또 얼마나 유익한 가르침입니까?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 죄의 사함을 청하는 동시에 죄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됩니다. 아무도 마치 자신이 무죄한 것처럼 스스로 흡족해 하지 않고 또 자신을 추켜 올림으로 더 깊은 데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가 매일 죄사함을 얻기 위해 기도 드리라고 명할 때 우리가 매일 죄를 범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 요한도 그의 첫째 편지에서 이것을 권고해 줍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면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죄 사함을 얻기 위해 기도를 바쳐야 하고 또 기도를 바칠 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 한다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은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시고 진실하시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죄 사함을 청하라고 가르치신 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다운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께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시는 천주여,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소서. 당신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한 인생이오니, 주의 은총으로 도우시어, 우리로 하여금 마음과 실행으로 당신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