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 한용운 세상에 만족이 있느냐? 인생에게 만족이 있느냐? 있다면 나에게도 있으리라 세상에 만족이 있기는 있지마는 사람의 앞에만 있다 거리는 사람의 팔 길이와 같고 속력은 사람의 걸음과 비례가 된다 만족은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다 만족을 얻고 보면 얻은 것은 불만족이요 만족은 의연히 앞에 있다 만족은 愚者(우자)나 聖者(성자)의 주관적 소유가 아니며 약자의 기대뿐이다 만족은 언제든지 인생과 竪的平行(수적 평행)이다 나는 차라리 발꿈치를 돌려서 만족의 묵은 자취를 밟을까 하노라 아아! 나는 만족을 얻었노라 아지랑이 같은 꿈과 금실 같은 환상이 님계신 꽃동산에 들릴 때에 아아 ! 나는 만족을 얻었노라 ★★★★★★★★★★★★★★★★ 인 연 설 한 용 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함께 영원히 할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 해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애처롭기까지만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 할 줄 알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않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
길이 막혀 한용운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바칩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를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도 길이 막혀 못 오시는 당신을 기루어요. ★★★★★★★★★★★★★★★★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리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의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 못한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남은 재가 다시 시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
나는 잊고자 한용운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으까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지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하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 나의 길 한용운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돌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발자취를 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芳草)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갑니다. 의(義) 있는 사람은 옮은 일을 위하여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였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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