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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사랑 없이 부활 없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사랑 없이 부활 없습니다.> 3월 26일 부활 성야 (루카 24,1-12)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한 이슬람교도가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신네들에게는 없는 아주 중요한 유산 한 가지가 있습니다.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관이 현존하고 있답니다. 이를 통해 마호메트의 실제성을 확인할 수 있지요. 당신네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봐야 빈 무덤 밖에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교 창시자인 예수님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앞에 남아있는 것은 텅 빈 빈 무덤뿐입니다. 그러나 이 빈 무덤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빈 무덤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수(眞髓)입니다. 빈 무덤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마다 찾아갈 곳은 빈 무덤입니다. 우리 마음이 의혹으로 가득 찰 때 마다 찾아갈 곳은 빈 무덤입니다. 죽기보다 더한 고통 앞에 괴로워할 때 마다 찾아갈 곳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임을 확인한 첫 사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절망과 슬픔, 허전함과 분노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즉시 상황은 반전됩니다. 충만한 기쁨에 사로잡힙니다. 꽉 찬 희망에 들뜹니다. 환희와 감사의 찬가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사건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인해 승리한 것처럼 여겨졌던 악의 세력이 완패했음을 인정한 사건입니다. 악의 승리는 잠시뿐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의 마지막 카드였던 죽음조차도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어둘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진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그리스도교는 빈 무덤으로부터 출발하는 종교입니다.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입니다. 부활신앙을 믿는 우리의 삶은 현세의 삶이 고통스럽다할지라도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비록 오늘 실패했더라도, 그래서 손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다할지라도 새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신앙을 지닌 우리는 절망을 떨치고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용기백배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야만 합니다. 예수부활 성야인 오늘 우리 앞에 일생일대의 큰 숙제가 한 가지 놓여 집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진리인 부활신앙을 어떻게 우리 각자 안에 개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개인 체험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주님 부활에 대한 개별화가 가능할까요? 기도를 열심히 하면 될까요? 신앙고백을 열렬히 외우면 될까요? 마음속으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천 번만 외우면 될까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체험은 그런 방식으로 체험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체험하고자 원한다면 방법은 단 한가지뿐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죽는 것입니다. 자살이라도 하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크게 양보하라는 말입니다. 크게 마음먹고 살라는 말입니다. 크게 한번 희생하라는 말입니다. 큰 마음먹고 한번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예수님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만드는 노력입니다. 생생한 부활체험은 내 개인적인 의지를 접고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에게 가능합니다. 나를 죽이고 예수님을 내 안에 탄생시키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 생생한 부활 체험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체험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게 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체험을 이뤄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발현하신 예수님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찾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활체험을 원하시는 분들은 일단 사랑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면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가는 곳마다에서 어디든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겸손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 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 부활 없고 부활 없이 사랑 없습니다. 저 하찮은 초목들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느님 죽음도 물리치신 부활의 증거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믿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 유안진 -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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