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을 바라보며..,>
12월 8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루카 1,26-38)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생각할수록 알쏭달쏭하고 난해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교리였기에
초 세기부터 수많은 논쟁과 대립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후죽순처럼 이단이 솟아나고
단죄되는 과정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참으로 민감하며 그래서 더욱 심사숙고가 필요한
마리아 교리이며 성모 신심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대한
정통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표현입니다.
“요아킴과 안나의 거룩한 딸인 마리아는
성령의 신방에서 티 없이 살았기에 하느님의 신부가 되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강생을 위해 마리아의 영혼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흠 없는 마리아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사시며 기뻐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무죄한 몸이 거처하실 수 있도록
가꾸어진 순결한 나무입니다.
순결하며 거룩한 영혼과 육신의 소유자 마리아는
가시덤불 속에 핀 한 송이 백합화 같습니다.”
성모님을 극진히 사랑했으며
성모님에 대한 탁월한 신심의 소유자였던
8세기 수도자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모두 죄인이 되어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서 흘러나오는 큰 선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선물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육체와 영혼의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욕정과 무지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마리아만이 은총이 가득하며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습니다.
마리아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시선을 창조주로부터 뗀 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비오 9세 교황님께서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이라는 회칙을 통해서
마리아의 원죄 없으심을 전 세계 그리스도 신자들을 향해
널리 선포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셨다.”
성모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약간의 정화와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성모신심은 단독 교과목처럼 따로 분리시켜놓아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론과 결부시켜야 바람직합니다.
성모님 공경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져야합니다.
성모신심과 관련해서
항상 경계해야 할 위험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지나치게 포장되고 과장된 성모신심입니다.
조금은 두렵고도 부담스러운 성모님 관련 신심서적들입니다.
엄청나게 섬뜩한 성모님 관련 사적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모님에 대한 지나친 신격화도 배제해야 마땅합니다.
원래 성모님께서는 너무나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분,
순수하고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인정 많고 자상한 우리 어머니 같은 성모님이신데,
그분 위에 너무 심하게 도금(鍍金)을 해놓았으니
성모님께서 얼마나 불편하실까 걱정도 많이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모님을
자동판매기나 기적의 요술방망이 같은 존재로 여기고
끊임없이 뭔가를 집요하게 졸라대고 있습니다.
겸손과 순종의 여인,
믿음과 봉사의 여인으로서의 성모님 모습은 뒷전에 둔 채
끝도 없는 한 개인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채워주는
기적의 여인으로서 성모님만을 추구해서는 곤란합니다.
성모님을
높디높은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보다는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어떻게 협조하셨는지를 유심히 바라봐야겠습니다.
성모님께서 갖은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유혹 앞에서 어떻게 기도했는지,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성장시켜나갔는지를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특별한 기적을 되풀이하는
능력의 여신(女神)이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잡다한 소원들을 원 없이 채워주는
완벽한 해결사여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황홀한 신비로 이끌어주시는
묘한 분이어서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모님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칭송합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했던
빛나는 믿음을 찬양합니다.
한결같은 자세로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했던 충실성을 공경합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신 분이기에 존경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 안에 성장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비워냈던 분이라서 사랑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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