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미우면 미울수록..>
11월 9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어떤 사람이 술을 잔뜩 마시고 수도원을 찾아와서 거금을 청합니다.
드려봐야 그분에게 전혀 도움 되지 않고, 몸만 망가지게 할 것이 뻔하기에
‘돈은 못 드리고, 있을 만한 곳을 알아봐드리겠다’고 하니 그만 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외치는 말이 가슴을 뜨끔하게 합니다.
“수도자들이 많이 받았으면 베풀 줄 알아야지.”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가슴이 철렁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일정부분 현실이기에 가슴을 치며 반성도 많이 합니다.
교회가 너무 고자세이다. 교회가 너무 폐쇄적이다.
교회가 너무 부자다. 돈만 밝힌다.
교회가 너무 속화되었다. 가진 바를 나누지 않는다.
내적 쇄신은 뒷전이고 외형적인 것에만 신경 쓴다.
평신도들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나머지 완전히 들러리다.
성직자·수도자들은 제왕처럼 군림한다.
그들의 자세는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다.
‘예수님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사람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가?’
하면서 큰 마음먹고 발걸음을 교회로 돌려보지만,
끝끝내 교회는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실망만 더 커진다.
한때 활활 불붙던 신앙의 열정도 식어버린다.
오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맞아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진정한 의미,
교회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교회에 대해 실망하시는 분들,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분들,
성전에 대해 보다 폭넓게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성전은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이란 하느님 아버지의 따뜻함이
절절이 느껴지는 포근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곳은 하느님 위로의 손길이 흘러넘치는 곳,
그래서 세파에 지친 영혼들이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 곳,
그래서 틈만 나면 찾아오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전 중에 성전,
진정한 의미의 성전은 예수님 그분 자체입니다.
한없는 위로의 원천, 사랑의 근원, 하느님 아버지와 늘 함께 계시는 분,
하느님 아버지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 역시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가정 공동체, 수도공동체,
본당공동체 역시 성전입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성체를 영하는 우리 자신들이 성전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지닌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속성 가운데 하나가 불완전성입니다.
거룩함을 지향하지만, 부족한 구성원들이 모여 있기에
교회는 당연히 불완전합니다.
어찌 보면 모순덩어리입니다.
교회 안에 모인 모든 구성원들을 한번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사제들도 예수님 추종을 지향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당연히 불완전합니다.
그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 나약하기에 죄도 짓습니다.
수도자들도 거룩함을 지향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관계 안에서 티격태격하고
작은 것에 목숨 거는 우리와 똑같이
부족한 인간일 따름입니다.
본당공동체의 핵심 멤버들도
때로 그럴 듯 해보이지만 어찌 그리 부족합니까?
그런 부족함을 바라보며 속상해하고
손가락질하는 나 자신도 역시 부족합니다.
교회란 어쩔 수 없이 부족한 구성원들이 모여
공동체적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장소입니다.
공동체 안에 내재된 이기심, 개인주의, 미성숙함,
공격성, 동물적 본능 앞에 실망도 크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실망과 지독한 영적 갈증,
지루함, 포기하고픈 유혹이 크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가 아무리 죄로 물들어 있다 하더라도 사랑하십시오.
교회가 미우면 미울수록 하느님께 은총을 구하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갖은 음모와 권모술수, 비리, 이권개입, 검은돈이 판을 치는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그토록 자비롭고 인자하시던 분,
측은지심과 연민으로 똘똘 뭉쳐진 분,
폭력과는 아주 거리가 먼 분께서 돌변하십니다.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 뜰 안에 있던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십니다.
환금상들도 쫓아내십니다.
그들의 밥벌이 도구인 진열장들을 둘러엎으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은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 시대에도 또 다른 차원의 성전 정화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 성전정화는 어떤 것일까요?
보다 가난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극진히 챙기는 교회입니다.
보다 겸손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보다 열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이신 예수님의 영성과 정신에 따라 서로 섬기며,
서로 가진 바를 나누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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