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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최고의 덕행, 겸손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최고의 덕행, 겸손>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루카 14,1.7-11)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일 것이다.” 언젠가 로마 외곽에 위치한 저희 수도회 본부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처음 본부에 갔던지라 어디가 어딘지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첫날 저녁 기도를 바치려고 대성당에 들어갔습니다. 이리 저리 헤매다가 조금 늦게 성당에 도착했더니 이미 성당은 자리가 꽉 차버렸습니다. 여기 저기 빈자리를 찾아 헤매던 제게 아주 좋은 자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긴 의자 바깥쪽에다가 적당히 뒷쪽! 이게 웬 떡이냐며 저는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에 앉아있던 높은 분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한 높은 분이 제게 다가오더니 조용히 그러나 협박조로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야, 여기 총장 신부님 자리야!” 저는 기겁을 하면서 서둘러 뒤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겨우 발견한 조그만 보조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기도를 바쳤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던 중 그 때 아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루카 14,8-9) 다시 한 번 겸손의 덕의 소중함을 떠올립니다. 가르멜회의 평수사로서 평생토록 아픈 몸을 이끌고 주방장으로, 구두수선공으로, 형제들의 심부름꾼, 다시 말해서 동료 수도자들의 종으로서의 삶을 통해 성덕의 정상에 오른 분이 있습니다. 부활의 라우렌시오 수사입니다. 그의 겸손은 하늘에까지 닿았습니다. “꼭 큰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주방에서 형제들을 위해 프라이팬으로 계란 프라이를 뒤집을 때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습니다.” 그는 영성생활의 대선배로서 “우리 주님께서는 냄비 한 복판에도 현존하고 계십니다.” 라고 말했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추구했던 지극한 겸손의 길을 고스란히 추종했습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덕행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행들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영성생활에 충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덕을 빼놓으면 쌓아올린 점수 다 깎아먹습니다. 바로 겸손의 덕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행의 최고봉이자 기초입니다. 다른 덕들은 겸손의 덕이란 기초 위에 건설됩니다. 겸손이 생략된 신앙, 겸손이 사라진 기도, 겸손이 결여된 권력처럼 위험한 것은 다시 또 없습니다. 겸손은 천국 문을 열수 있는 열쇠입니다. 탁월한 인품을 갖춘 분으로서 학자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존경하는 교수님께 한 제자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답니다. “스승님,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느끼신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그 겸손하고 훌륭한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이런 큰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해주신다는 깨달음입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외칩니다. “나야 나! 나정도 되면 괜찮은 거 아니야? 나 말고 누가 있겠어? 그거 내가 다 했어!” 이렇게 겸손이 사라진 우리에게서 하느님께서도 떠나가십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 내가 가장 큰 죄인입니다.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도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우리를 보시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 사랑의 기적을 펼쳐나가십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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