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이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데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루카 14,1-6)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사랑했던 사람의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 큰 것이기에
홀로 남게 된 사람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딸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는
쓰라린 가슴을 달래보려고 전국산천을 다 헤매 다녀보지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끔찍이도 챙겨주던 부인과 백년해로한 후 사별한 남편이지만,
부인이 없는 이 세상은 세상도 아닙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가장 못 견딜 일은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데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야속하게도 어제와 조금도 다름없는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그가 없는데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또 다시 일상을 엮어가야 합니다.
또 다시 밥숟가락을 들어야 합니다.
슬슬 부고(訃告)를 전달받는 일이 늘어갑니다.
점점 먼저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축의금보다는 조의금 지출이 늘어갑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표시겠지요.
위령성월이 돌아오면서 먼저 떠난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만 해도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살아있을 때 조금 더 잘할 걸, 한 번 더 찾아가봤어야 했었는데,
떠나기 전에 이 말을 꼭 했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이렇습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대상인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래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확실히 챙기고 넘어갑니다.
중요한 자료에 대한 보안, 업무 업그레이드,
회의, 세미나, 꼭 챙겨야할 관계, 거래처, 취미활동...
그러나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고 삽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사랑이 우리의 사랑을 얼마나 갈구하고 있는지,
그 사랑이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닙니다.
업적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우리는 인간 존재 그 자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며
그 어떤 제도나 법조문, 가치나 사상,
일이나 사물 그 위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 각자는 세상의 중심이며 우선적 가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사이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시다가
당신 눈앞에서 서성대고 있는 수종병자 한 사람을 발견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어떻게 식사를 합니까?
최대한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합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며
식사 시간만큼은 스트레스 안주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누군가가 식사 중에 일과 관련된 대화를 던지면
‘자 지금은 식사시간입니다’며 애써 그런 대화를 피합니다.
바람직한 모습이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식사하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십니다.
수종병자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바리사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식사시간에 식사하다말고 사람을 치료하다니.
더구나 오늘은 안식일이 아닌가?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며 예수님을 노려봅니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께서
정곡을 찌르는 말씀 한 마디를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바리사이들이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안식일 규정이
나중에는 사람을 꼼짝 못하게 속박하는
올가미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안식일 규정은
안식일 날 사람들이 시체처럼
방안에 드러누워 있게 만들었습니다.
개개인이 처한 특수한 상황,
그가 안고 있는 구체적인 어려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한 가지 잣대만을 들이대며
일방적인 준수를 강요하는 안식일 규정은
사람을 살리는 규정이 아니라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쏟아 붓는
사람을 죽이는 규정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가
올바른 신앙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잣대가 한 가지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인지 죽이는 종교인지가 그 기준입니다.
이웃, 특히 가장 가까운 이웃,
내 혈육과 피붙이들을 끊임없이 사랑하게 만드는
종교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 그 기준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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