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론

[스크랩] 나를 줄이고 죽일 순간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나를 줄이고 죽일 순간>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루카 13,1-9)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주된 관심사는 영과 육의 대비와 조화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육적인 삶의 끝이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한 것인지를 그 누구보다도 절절히 체험했던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또한 반대로 주님과 함께 걷는 영적인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한 삶인지를 온 몸으로 느꼈던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오로 사도는 틈만 나면 되풀이해서 영적인 삶에 방점을 찍고 강조했습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육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배워 알고 있는 것처럼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 신자가 됨을 통해 우리 영혼에 하느님의 인호가 새겨졌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성령께서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 받은 우리 모두는 성령의 궁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성령의 은총은 견진성사나 신품성사를 통해 더욱 견고히 되고 성체성사나 고백성사를 통해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성령의 흔적, 성령의 향기, 성령의 활발한 움직임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도대체 성령께서 어디로 가셨을까요? 방을 빼셨을까요? 도망가셨을까요? 이러한 현상 앞에 주님의 성령을 탓하고 원망할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그릇된 생활 습관으로 인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주님의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인간 각자 안에 분명히 현존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촉각이 너무나 육적인 대상들로만 향해 있기에, 우리의 나날이 오로지 육을 중심으로 한 생활이기에, 우리의 의식 속에 성령을 향한 인식이 전혀 자리잡고 있지 않기에 원래 충만하던 성령의 입지가 점점 줄어든 것입니다.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우셔야 할 그분의 현존이 우리들의 그릇된 생활 습관으로 인해 계속 위축되고 또 줄어들어 결국 이제는 거의 찾아뵐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요? 이제 다시 한번 우리 내면에 그분의 자리를 내어드릴 시간입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활발히 움직이도록 우리가 조금만 수동적이 될 순간입니다. 오늘 이 시대 인간의 내면을 한번 바라봅니다. 너무나 여유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잡다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와글와글 바글바글 시끄럽습니다. 솔직히 주님의 성령께서 좀 머무시려고 해도 편안히 머물 공간이 없습니다. 내 의지, 내 계획, 내 욕구를 좀 줄일 순간입니다. 대신 주님의 성령께서 활활 불타오르도록, 그래서 우리 마음도 덩달아 주님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뜨겁게 타오르도록 나를 죽일 순간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