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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우리 시대의 기적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우리 시대의 기적>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마태 9,18-26)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공생활의 절정기에 들어선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이지 거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발길 닿는 곳마다 불치병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지만 그 누구도 치유의 기적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평생소원을 이뤘고 환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슈퍼맨과도 같습니다. 당신 손길 한번이면 치유면 치유, 기적이면 기적, 뭐든 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회당장의 딸처럼 이미 숨이 넘어간 사람들도 예외 없이 생명을 되찾아주셨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기적은 하느님의 현존을 알리는 일종의 현시입니다. 기적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인류에게 계시하시는 표시입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역사하심을 드러내는 흔적입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을 찾아다닙니다. 어디 특별한 곳이 있다면 줄지어 대절버스에 승차합니다. 큰 행사만 열리면 하늘만 바라보며 신비스런 현상을 기대합니다. 이 암담한 현실이 단 한순간에 180도로 변화되는 꿈같은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은 사도 시대처럼 눈에 띄는 기적은 찾아보기가 드믑니다. ‘활발한 기적의 감소’,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기적을 만들어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로구나!’ 오늘날도 분명히 기적은 찾아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극단적 이타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기적입니다. 다들 육(肉)만을 따라 살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영적생활에 우선권을 두는 사람들의 삶에서 우리는 기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들 희생이나 헌신을 외면하는 이 세상에서 희생이나 헌신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로 기적입니다. 정말이지 실천하기 힘든 용서를 너무나 쉽게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소생시키시고 혈루증 환자를 치유하시는 모습을 묵상하며 그 기적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육체적 치유라는 것은 지극히 한시적이고 일회성을 지닙니다. 예수님의 은총으로 소생된 회당장의 딸, 한번 소생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계속해서 또 다시 소생, 그리고 다시 한 번 소생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번 소생된 회당장의 딸은 언젠가는 또 다시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치유는 육체적인 치유라기보다 영혼의 치유입니다. 영혼의 치유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치유는 바로 예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 영혼의 치유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곧 구세주 그리스도, 하느님 바로 그분이심을 굳게 믿음에서 이루어집니다. 따지고 보니 신앙 없는 인생처럼 불행한 인생은 다시 또 없습니다. 신앙을 지닌 인간이야말로 참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자 주관자이신 하느님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는 인생처럼 가련한 인생은 다시 또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 없는 생활처럼 무의미한 생활은 다시 또 없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생활이야말로 진정한 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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