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6월 11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마태 10,-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는 말씀이
하루 온 종일 제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지난 세월 돌아보니 참으로 많이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부족한 인간에게 너무도 과분하게
넘치고 또 흘러넘치도록 수많은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공짜’ 다시 말해서 ‘거저’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남아있는 과제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금방 답이 나왔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너무나도 당연히 거저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내게 조금이라도 넘치는 것이 있다면
되받을 생각 하지 말고 거저 나누어야겠습니다.
앞으로는 내게 조금이라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긍정적인 측면, 강점, 경쟁력이 있다면
아낌없이 무상으로 나누어야겠습니다.
위로의 아들 바르나바 사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르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는 이름에 걸맞게 초세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큰 위로와 그칠 줄 모르는 격려를 건넸습니다.
초세기 그리스도교 신자들,
아시다시피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동족들로부터 갖은 오해와 모함, 몰이해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해 하루하루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흔들리고 방황하는 초세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바르나바 사도는 든든함 그 자체였습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가입하기 전에
당대 잘 나가던 큰 부자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답을 비롯해서 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 다 팔아 사도들 앞에 갖다 바쳐
복음 선포 사업에 쓰이게 했습니다.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사도 4,36-37)
바르나바 사도는 성격이
얼마나 관대하고 ‘쿨’한 성격이었는지 모릅니다.
바르나바는 사도들의 제비뽑기에서 탈락해
열두 사도단에 들지는 못하게 됩니다.
승부욕이 강한 저 같았으면
제비뽑기에 떨어진 것을 서운해 하며
12사도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르나바는
12사도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성심성의껏 그리스도교 전파에 투신합니다.
그 결과 12사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로부터 바오로와 함께 사도라는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바르나바는 다른 무엇에 앞서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초세기 교회, 복음 선포 과정에서 직면한
숱한 난관과 시련 가운데서도
그의 태도는 일관되게 긍정적이었고 낙관적이었습니다.
복음 선포 과정에서 겪는 노골적인 적개심,
그리고, 추방 앞에서도 항상 당당했고 기뻐했습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의 삶 한 가운데
늘 현존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설교와 삶,
지칠 줄 모르는 복음 선포 열정에 큰 감동을 받은
수많은 이교도들이 주님께로 돌아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심초기 유다인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당하던
바오로 사도를 끝까지 지지해주었으며
그의 복음 선포 사업에 성심성의껏 협조함을 통해
초기 교회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예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달릴 길을 충실히 달린 바르나바는
결국 하느님의 큰 은총을 받고, 순교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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