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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감동순간 그림과 사진

[스크랩] 최초의 부활 이미지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에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본질이며 핵심 교리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의 기적과 관련된 신화적인 이야기가 반증하듯 부활은 비단 그리스도교에서만 존재하는 사건은 아니다. 구약성서에서 요나가 바다에 빠져 고래에게 잡아먹혀 고래 뱃속에 있었던 사흘은 예수 부활의 전형적인 예표이다. 고래 뱃속의 3일은 신의로 부터의 분리, 무덤, 어두운 죽음의 세계를 의미하며, 다시 토해져 삶을 찾은 것은 믿음에 의한 부활의 빛을 의미한다. 한편 신약에서는 부활의 순간을 묘사하지 않고 부활의 증거만을 언급한다. 그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바로 ‘빈 무덤’이다. 이러한 이유로그리스도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수난장면이 있는 석관] 4세기 중반

 

 

 

최초의 이미지, 빈 무덤


4세기 중엽 제작된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이 있는 석관]에는 다섯 개의 프레임 속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함께 다루고 있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로마 병사에게 체포되고, 빌라도 앞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모습, 왼쪽은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이다. 이 석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가운데 프레임인데,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의 약자를 표시한 키(X)로(P)십자가, 영원을 상징하는 원형, 불사조, 그리고 잠들어 있는 로마 병사로 부활을 표현하였다. 즉 부활한 그리스도를 묘사하기보다 모노그램과 상징으로 예수의 부활을 재현한 것이다.

 

  • 1   [성골함] 7세기
    라테란, 로마
  • 2   니콜라 베르덩 [갑옷 장식 : 부활] 12세기경
    공예품, 법랑기술, 바탕을 파낸 법랑, 도금, 구리, 루브르 박물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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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에 제작된 성골함 뚜껑에도 예수의 일생 중 중요한 사건들-탄생, 세례, 처형, 부활, 승천-이 하단에서부터 차례로 나타난다. 현재 라테란에 있는 이 성골함은 팔레스타인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성골함의 왼쪽 상단에 있는 부활의 장면은 다음과 같은 순간을 묘사하였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 (마태오 28.1-7)


역시 이 작품에서도 부활한 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고, 화면 한가운데 그려진 십자가로 그가 누워 있었던 자리를 표시했으며, 무덤가에 등장한 천사와 여인들과 같은 주변인물로 부활의 사건을 그렸다.

 

 

그리스도, 관에서 일어나다


1180년경 중세 최고의 금세공장이 니콜라 베르덩이 제작한 갑옷 장식에서는 그리스도가 열린 관에서 당당하게 나오고 있다. 그리스도는 아마포를 걷어내고, 깃발을 들고 오른쪽 발을 석관 밖으로 내딛고 있다. 석관 아래 로마 병사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리스도는 머리와 수염을 살짝 바람에 날리며 표정은 생기 넘친다. 그의 깃발은 승리의 상징으로, 예수 부활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니콜라의 깃발은 깃봉위에 십자가가 놓여있는 반면, 1320년경, 피에트로 로렌제티가 그린 부활한 그리스도는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 이 깃발은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의 공인에 견인차가 되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연상시키며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승리했음을 선포한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남측 트랜셉트의 아치 부분에 프레스코로 그려진 로렌제티의 [부활]은 매우 입체적인 석관을 그리고 있다. 흰옷을 입은 천사는 사라지고, 석관의 뚜껑은 뒤로 넘어가 더욱 극적이며, 석관을 둘러싼 로마 병정들은 모두 골아 떨어졌고,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듯하다.

 

  • 1  피에트로 로렌제티 [그리스도의 부활] 1320년경
    프레스코, 성 프란체스코 교회(남측), 아시시
  • 2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1450~1463년
    프레스코, 225cmx200cm, 코무날레 피나코테카, 산세폴크로

 

 

 

잠에 빠진 로마 병사들


깃발과 함께 잠에 빠진 로마 병사들은 부활의 중요 모티브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가 1463년경에 제작한 부활은 부활한 예수와 잠에 빠진 병사를 의도적으로 대비시킨다. 그는 그리스도는 밝게, 병사들은 어둡게 처리함으써 부활은 더 극명해진다. 부활 사건 뒤로 펼쳐진 배경은 피에로의 고향인 산세폴크로(Sansepolcro)의 풍경인데, 산세폴크로는 그리스도의 무덤이라는 의미이며, 이 지방의 문장에도 무덤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피에로는 이 프레스코화를 자신의 고향인 산세폴크로를 위해 제작하면서 특별히 석관을 강조하였다.

 

또 예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왼쪽에 있는 나무는 앙상하다.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시든 나무와 무성한 나무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생명의 나무와 연결되며, 그리스도 부활 전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는 낡고 오래된 유대교와 생명에 찬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상징적으로 대비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바사리(Vazari)는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잠자는 로마 병사가 피에로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름을 딛고 선 그리스도


15세기 중반 이후 부활의 이미지는 변화를 맞게 된다. 조반니 벨리니는 1475-9년 제작한 [부활]에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무덤에서 나오는 순간을 묘사했던 것 대신, 예수를 공중에 띠움으로 그의 부활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귀족 마르코 조르지(Marco Zorzi)가 이솔라의 산 미켈레에 있는 가족묘 예배당의 제단화로 벨리니에게 의뢰하였다.

 

  • 1  조반니 벨리니 [그리스도의 부활] 1475~1479년
    캔버스에 오일, 148cmx128cm, 시립미술관, 베를린
  • 2  티치아노 [부활] 1520~1522년
    목판에 유채, 122cmx278cm, 산 나차로 에 첼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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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동굴 속 석관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는 로인클로스를 걸친 채 승리의 깃발을 들고 한 손은 복을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 중 맨 왼쪽의 병사는 깜짝 놀라 오른손을 들고 멀리 언덕 위에 부활한 예수를 바라보고 있으며, 두 번째 병사는 바위에 기대어, 나머지는 바닥에 앉아 자고 있다. 맨 오른쪽 창을 든 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할 때,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롱기누스로 여겨진다. 배경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중간쯤 가다보면, 세 여인이 무덤으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로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 이른 아침 집을 나선 것이다. 멀리 후경은 몬셀리스(Monselice)라고 하는 마을의 새벽 풍경이며, 벨리니는 의도적으로 해가 뜨는 순간과 부활의 순간을 일치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제자 티치아노의 [부활]로 계승되는데, 1522년 그는 교황 특사인 아베롤로가 의뢰한 다폭 제단화에 부활의 장면을 한가운데 배치한다. 이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나 벨리니의 부활이 보여준 수평-수직의 구도는 힘찬 대각선 구도로 변화하고, 여명이 밝아오는 배경 속에서 이리저리 휘날리는 깃발과 로인클로스의 드레이퍼리는 부활의 기적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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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출처 : 가르멜 산길 Subida Del Monte Carmelo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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