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화가 피테르 아르첸(Pieter Aertsen)과 요아힘 뵈컬라르(Joachim Beukelar)는 그림 화면이 온통 사물로 가득찬 부엌과 시장이라는 전례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대에 손님을 환대하는 의미에서 음식물이나 과일바구니 등을 그렸던 벽화 ‘제니아 Xenia’ 이래 정물화는 오랜 기간 서양 미술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사물에 지나지 않는 정물적 요소들이 다시 미술사에 출현했고, 진짜처럼 착각할 만큼 감쪽같이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아르첸과 뵈컬라르의 그림은 회화사적으로 의미가 상당히 크다. 미술사의 주류는 유사 이래 ‘역사화(실제 역사라기 보다는 이야기를 다룬 그림을 뜻한다)’였다. 역사화는 성서, 신화의 내용 혹은 왕이나 영웅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다룬다. 즉, 하찮은 사물인 정물적 요소를 다룬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대단히 예외적인 ‘사건’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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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집중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는 후일 서구 근대 시민사회로 이어지는 부르주아 계급의 발흥, 물질과 가치를 중요시하는 부르주아 계층 특유의 세속적 태도가 반영되었다고 생각된다. 시장, 부엌을 그린 장르화의 발생에는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매우 다양한 갈래의 도상적 계보들이 얽혀있다. 지면이 짧아 한번에 전부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계보의 하나가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이다.
이런 주제들을 다루는데 있어 플랑드르 화가들은 종종 성서에 등장하는 그림의 실제 주제를 그림 후경에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곤 했다. 그대신 15세기 이래로 경배화 등에서 주요 성경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던 정물적 요소를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 사실적 사로 인해 성경 텍스트를 설명하는 사물들을 눈에 띄게 나타냈다. 화가들이 갑자기 왜 이런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를 했는지, 그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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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뵈컬라르 [식료품이 가득한 부엌] 1566년
패널에 유화, 171cmx250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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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뵈컬라르 [요리사] 1574년
목판에 유화, 112cmx81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
성서 이야기와 정물화의 조합
아르첸과 뵈컬라르의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에서 후경에 잘 보이지 않게 묘사된 마르타 마리아 이야기는 성서 뿐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널리 읽혔던 대표적 성인전 [황금전설]에 등장하는 잘 알려진 주제였다.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날 예수님을 비롯 한 무리의 사도들이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들이닥친다. 마르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분주해 한다. 마르타가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철딱서니 없는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딱 달라붙어 값진 향유를 발에 쏟아붓는 등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다. 마르타는 사도들을 접대하느라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당연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마르타는 투덜대며 뾰족한 소리를 하고 만다. 그러자 야속하게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르타, 마르타여 그대는 근심이 많구나. 그리고 많은 것들로 고통받는구나. 그러나 마리아는 그가 좋은 쪽을 선택하였으니, 그것을 그녀로부터 빼앗지 말아라. (루카 10:39-42)
이 귀절은 예수 찬미에 몰두한 나머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잊은 (사실상 따지고 보자면 게으르고 낭비하는) 마리아를 옹호하고 도리어 애써 일하는 사람 마르타를 훈계한다. 그녀가 일상적, 세속적 관심사에 지나치게 얽매여있다는 것이다. 곧이어 일어나는 일 모두를 아는 우리로서는 예수 수난 전체를 놓고 보면 이 장면의 말씀이 일리가 있지만, 꼭 집어 이 부분만 놓고 보자면 정작 사도들을 접대하느라 동분서주 일하는 사람은 자신인데 마르타가 많이 섭섭했을 법 하다.
후일 마르타 역시 막달레나 마리아와 함께 전도에 힘써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우아한 접대인’이자 가정 주부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수호성인으로서 자신의 집에서 그리스도를 접대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전도 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미술사 속에서 재현되었다. 마리아보다 약간은 나이 많은 모습으로 재현되는 마르타의 상징물은 주로 가사일과 관련된 부엌 도구들이다. 그녀는 종종 열쇠 꾸러미, 양동이와 국자 및 마르타라는 이름의 또다른 성인전설의 갈래로는 용을 물리칠 때 사용했던 성수 단지, 성수채를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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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틴토레토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1570~1575년
캔버스에 유화, 200cmx132cm, 알테 피나코텍, 뮌헨 작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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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베르메르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1654~1655(?)년
캔버스에 유화, 160 x 142 cm,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작품 보러가기 |
아르첸과 뵈컬라르의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에서는 대부분 부엌 일을 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하녀처럼 보이는 익명의 여자들이 전경에서 넘치는 식재료를 다루고 있는 모습으로 함께 묘사되고 있다. 그녀들은 종종 닭이나 가금류 혹은 큼지막한 고깃 덩어리를 꼬치에 꿰고 있는 요리사의 모습이다. 식재료는 다양한 콩, 아티초크, 가금류를 비롯 각종 고기, 소시지, 생선, 빵, 버터, 양배추, 순무, 당근 등으로 흘러넘칠 듯이 풍부하고 다양하다. 때로 절제를 나타내는 주전자와 유리잔, 성모의 백합과 카네이션이 꽂힌 꽃병이 포함된다.
또한 그녀들은 대개 식료품이 잔뜩 쌓인 부엌이나 벽난로 불가에 서있는데, 벽난로는 부엌의 중심이며 난방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기도 하는데 사용되었다. 정작 진짜 주제는 후경에 멀리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대부분 그림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 발치에 앉아있고, 그리스도가 마르타를 타이른다든지 하는 모습이다. 진짜 주제인 이 후경은 그리자이유 기법처럼 단조롭게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실제 서사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그림의 진짜 주제를 알려면 눈을 사로잡는, 흘러넘치는 전경의 정물적 요소들로부터 주의를 돌려 정신을 집중해서 찾아봐야 한다. | |
식욕과 성욕을 나타내는 음식, 부엌 풍경
아르첸과 뵈컬라르의 이같은 시장 부엌 장면화들은 사물을 압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며 물질적인 차원에서의 신체적 욕구와 삶의 물적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16세기 중반의 장르화에서는 사물 하나하나가 상징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중의적이고 양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다른 곳에서 차용된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해석하려면 상당히 복잡하다. 그러나 대부분 성애를 암시하고 있는 점은 유사하다. 이는 무엇보다 북구 르네상스가 일어난 이래 에라스무스가 [격언록], [광우예찬]과 같은 저서를 통해 붐을 일으킨 것처럼, 속담이라든지 간결한 일상적 경구를 선호하고 그림에 종종 언어 유희를 도입하는 당대 플랑드르화 특유의 전통에 기인한다.
16세기 중반의 라틴 문학(주로 로마 풍자문학)과 고전 번역붐은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마르티알리스, 루킬리우스, 호라티우스, 바로 등 수많은 로마 풍자문학 저작들이 플랑드르 지방에 번역, 소개되었고 인문학적 취향을 지닌 수집가들의 취향에 반영되었다. 시인이자 번역가, 문필가이자 내과의사이기도 했던 하드리아누스 유니우스같은 박학한 르네상스적 인물들은 아르첸과 뵈컬라르식의 복잡한 그림을 선호했다. 그는 플리니우스 를 인용하며 아르첸을 하찮은 사물을 그렸으나 크게 성공했던 고대 화가 피라이코스라든지, 위대한 화가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아펠레스에 비유하며 찬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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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스 엥게브레흐츠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1515년경 패널에 유화, 55cmx44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
피테르 아르첸 [요리하는 여인] 1559년 목판에 유채, 82cmx127cm, 벨기에 왕립미술관 작품 보러가기 |
한편 이와 같은 주/부 서사가 전도된 그림이 그려진 이유가 이쪽 지역에서 격렬했던 종교 분쟁 및 성상 파괴 운동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에서 종래 사용하던 상징적 재현은 신교 입장에서는 철저히 금지되었다. 따라서 같은 내용을 표현하더라도 아예 주 서사를 배제하거나 사물을 통해 눈에 띄지 않게 중의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르첸 뵈컬라르의 그림에는 라틴어와 네덜란드어 언어 유희 및 로마 풍자문학에서 온 현학적이고 복잡한 내용이 대단히 정교하게 짜여 있다. 꼬치에 줄줄이 꿴 새라든지 손가락에 건 연어 토막 그리고 양배추와 순무라든지, 맥주 저그를 든 사람은 단지 먹고 마시는 탐식에 대한 경고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라틴 풍자문학 구절의 인용 형태를 차용한 르네상스적인 박학다식함의 과시이다.
많은 그림 속에서 시각적 사물 속에 깃든 언어 유희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의 물질적 조건 두 가지, 음식에 대한 욕구와 성욕과 성 행위에 대한 부정적 경계를 나타낸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성욕은 식욕보다 강한 경계 대상이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살)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그 자신을 죄인으로서 단죄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아이일 시절에 죄를 지었고, 그 죄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 |
- 글 최정은 / 미술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에서 회화 및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책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동물, 괴물지, 엠블럼]이 있다.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출처 : 가르멜 산길 Subida Del Monte Car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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