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울타리/감동순간 그림과 사진

[스크랩] “잃어버렸던 어린양을 찾았습니다”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25)

낡은 가방에 가득 담아 온 것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큰 사랑
“잃어버렸던 어린양을 찾았습니다”



- 착한 목자상, 4세기, 대리석,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어린양을 어깨에 메고 있는 ‘착한 목자상’은 석관의 한쪽 모서리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후 석관은 사라지고 모서리에 있던 이 조각상만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 석관에 묻혔을 사람은 당시 신분이 높았던 그리스도교 신자였을 것이다. 가족들은 그가 하느님의 보호 속에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며 이 석관을 제작하였을 것이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세상을 떠난 그가 주님의 돌보심 속에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갈망하였을 것이다.

착한 목자 도상은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즐겨 표현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착한 목자상은 로마 근교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의 벽화나 대리석 석관의 부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착한 목자상은 모자이크나 조각, 회화와 유리화 등을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착한 목자 도상은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는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는 회개하는 죄인을 반기는 주님의 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루카 15,4-6)

- 착한 목자상(부분).


길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착한 목자상’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 만났던 본당 신부님이 떠오른다. 고향과 가까운 읍내에 살던 신부님은 독일에서 오신 파란 눈의 선교사제셨다. 왕 레지날도(P.Reginaldus Egner, 1906-1975) 신부님은 1931년에 사제품을 받으신 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우리나라를 찾아 오셨다. 그분이 오실 때 손에 든 것은 낡은 가방 하나뿐이었다. 이 땅에서 사목을 하시던 중 6·25 전쟁 때는 ‘죽음의 행진’으로 북한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셨다.

이후 왕 신부님은 고향 근처에 있던 읍내의 성당으로 부임하셨다. 그분은 언제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여기며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읍내의 본당과 공소 신자들뿐 아니라, 나환자 등 지역의 불쌍한 사람들도 잊지 않고 보살펴 주셨다. 또한 교육자 집안 출신의 신부님은 성당 근처에 여자중고등학교를 세워 가난한 학생들에게 내일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낮에는 헌신적인 사목을 하고 밤에는 독일의 교회와 신자들에게 구호품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며 날을 밝히셨다. 본당 신부님의 낡은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헌옷가지와 물건들이 묶여 있었다.

17년 동안 고향의 읍내 본당에서 사목하시던 왕 신부님의 이임 미사가 자신이 설립한 학교의 마당에서 거행되었다. 신부님으로부터 크고 작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로 학교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미사 때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 시대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꼭 왕 신부님과 같은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 짧은 말씀은 떠나시는 본당 신부님께 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였고 최고의 찬사였다. 오래 전, 왕 레지날도 신부님께서 낡은 가방에 가득 담아 온 것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큰 사랑이었다.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5일,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출처 : 가르멜 산길 Subida Del Monte Carmelo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