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유물에 대한 애착이 컸던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년경~1506년)는 로마 건축물과 조각을 깊이 연구하였고, 고대 미술 형식을 철저히 묘사하고, 무대 공간과 같이 구성된 원근법적 공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만테냐는 유럽에서 가장 멋진 군주의 궁정으로 알려진 만토바의 곤차가 가문의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후기 고딕의 호화로운 장식이 지성적이고 인문주의적인 궁정양식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그림은 만토바의 산 조르죠 성의 두칼레 성당 장식을 위해 루도비코 2세 곤차가가 주문한 세 폭 제단화(왼쪽 패널 : 예수님 승천, 오른쪽 패널 : 할례)의 중앙 패널 부분으로, <동방박사들의 경배> 장면이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그린 주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이 드러나게(공현, Epiphany) 되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만테냐의 이 그림에서는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뿐만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의 신비도 시사하고 있다.
오른쪽에 성모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로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다. 케루빔으로 둘러싸인 성모자가 있는 곳은 마구간이 아니라 동굴이다. 칠흑 같은 어두운 동굴은 탄생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무덤의 공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성모님 위에 동방박사들의 여정을 인도한 자연계의 표징인 하늘의 별에서 빛줄기가 칼처럼 날카롭게 수직으로 동굴을 향해 내려져 있다. 뾰족한 칼은 어머니 성모마리아가 아들의 죽음으로 겪어야 할 고통을 상징한다. 동굴 왼쪽 바위에는 무화과나무가 묘사돼 있고, 동굴 위에는 말라버린 나무에 새순이 자란 가지가 있다. 중세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믿어 왔기에, 이 나무는 그리스도 수난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말라버린 나무는 죽음을, 새순이 자란 가지는 탄생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죽음 후에 다시 태어나 부활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성화(聖畵)에서 세 명의 동방박사는 노년, 장년, 청년의 모습으로 각기 다른 연령층으로 표현된다. 각기 다른 연령층은 인간의 삶의 세 단계를 의미하고, 다른 인종의 표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 온 인류의 기쁨임을 상징한다. 동방박사들의 뒤로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이나 성모자 왼쪽에 소와 나귀(이스라엘 백성과 이교도들을 의미)에서도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인간세계뿐만이 아니라 자연세계를 비롯한 전우주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세 명의 동방박사는 모두 호화로운 궁정 예복을 입고 있다. 가장 나이 많은 박사는 꿇어 엎드려 있고,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박사는 한 손에 예물을 들고 허리를 숙여서 예수님께 경배하고 있다. 젊은 흑인 박사는 예물을 손에 들고 무릎을 꿇고 있다. 동방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황금은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왕이신, 임금의 상징이다. 유향은 가장 거룩한 제사에서 태우는 값비싼 향료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의미한다. 몰약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뜻하는 예물로서, 참사람이심을 상징한다. 박사들이 가진 예물을 아기 예수님께 드릴 때 그들은 바로 자기 자신들을 선물로 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에 대한 보답으로 하느님께서는 그 별빛보다 더 강력한 빛으로 그들의 마음을 비추셨다. 초라한 마구간(동굴) 구유에 태어난 아기였을지라도 그들은 그 아기가 바로 세상의 구원자이자 자신의 구원자임을 알아보았다.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시편 72,11)
[2015년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