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이겨내는 힘은 기도
상처 입은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에 늘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계적으로도 신자들의 3분의 2가 명시적인 가톨릭 신자로서 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하느님을 거부하고 사는 것은 아닐지라도 교회와 관련을 맺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고 사는 경우가 많다.
신자들 상호 간에 입은 상처 때문에 이사를 하거나, 소속 본당이 아닌 다른 본당으로 미사를 참례하며 신앙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목적 배려가 지금으로선 없는 듯싶다. 개인의 신앙 체험이나 신앙 쇄신을 통한 회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처 입은 신자들만큼이나 상처 입는 사목자들도 늘고 있다. 성직자들이 과거에 누렸던 지위나 축성된 그리스도의 사제들이란 신앙적 존경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직 구교우들이 오랜 가톨릭 전통에 따라 사제들을 존경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교회정신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제들이 급속도로 세속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신자들은 사제들이 받은 사제직에 대해 깊은 존경심도 없고, 사제 개인의 인격적 결함과 때로 잘못된 판단으로 생긴 실수들을 덮어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제들만이라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거룩하고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삶을 살아달라는 요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 입은 신자나 상처 입은 사목자 모두가 믿음 안에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기도해 주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시대는 내가 상처 입은 것만 기억하고, 상처 준 일들은 빨리 잊거나 용서받으려는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판단과 욕심 때문에 교회가 가진 소중한 신앙의 유산들을 너무 쉽게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힘과 시련을 견뎌내는 인내심은 그저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가장 기초인, 기도할 줄 아는 능력이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련 중에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공생활 가운데 언제나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으셨다. 그분은 기적을 일으키신 후, 말씀을 선포하시기 전에, 그리고 당신의 전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시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오늘날 서로가 주고받은 상처 때문에 교회생활을 포기하는 이들이나 상처받아 쓰러져가는 사목자들, 그래서 신자들에게 그 상처를 되돌려주거나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이들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과연 나는 그런 시련 중에 기도하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내게 그런 고통의 시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치유를 청하며 신앙을 청하고 있는가?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탁했듯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십시오.”(루카 17,5)라는 간절한 기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이다.
송용민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삼산동본당 주임으로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이며,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이다. 1997년 사제품을 받고, 2003년 독일 본대학교에서 기초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상 속 신앙 읽기」, 「신학, 이해를 찾는 신앙」 등을 썼고, 다음카페 ‘신학하는 즐거움’을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