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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스크랩] 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꽃이 졌다는 편지  - 장석남
      
      1.
      이 세상에서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 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
      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 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어 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 내고 있네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 맨발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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