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동쪽에 있는 황금문은 여자들이 출입했다는 문인데 금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베다니아로부터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이 문을 통과했으며,
민중들은 호산나라고 만세를 부르며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황금문이 6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1530년에 투르크군이 문을 봉쇄했고, 1540년에 슐레이만이 성을 보수하면서 완전히 폐쇄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한 곳도 이곳이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개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주시는 구원의 구체적 표현으로 여겼다. 오직 하느님만이 세상에 평화를 주시며 전쟁과 갈등이 없는 평온을 보장해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지금도 하느님의 지성소를 모셨던 성채를 ‘평화의 도시’, ‘평화의 근원’이란 뜻의 히브리말 ‘예루살라임’이라 부른다. 그리스말 ‘예로솔리마’, 라틴말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이 도시가 오늘날 가장 위태로운 지구촌 화약고라니 아이러니하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 산악 지대의 키드론 골짜기 서쪽 해발 700m 고지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동으로 유다 광야, 서로 쉐펠라 목초지, 남으로 베들레헴, 북으로 벤야민 산지가 있다. 예수 시대 예루살렘은 성전을 중심으로 윗도시와 아랫도시로 구획돼 있었다. 윗도시에는 제관들과 고관들이 살았다. 반면, 아랫도시에는 석공, 도기 제조공, 방적공 등 여러 계층의 장인들과 서민들이 거주했다. 극심한 사회 갈등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성전을 중심으로 결속돼 있었다. 성전은 윗도시 사람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자, 아랫도시민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루살렘에는 7개의 성문이 남아있다. 아브라함의 묘가 있는 헤브론으로 통하는 ‘자파 성문’과 시온산 다윗왕의 무덤으로 통하는 ‘시온 성문’. 또 시내의 모든 오물을 버릴 때 사용했던 ‘오물 성문’과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선 ‘스테파노 성문’이라고 불리는 ‘사자 성문’이 있다. 아울러 헤로데 안티파스의 궁전 인근에 있는 ‘헤로데 성문’과 예루살렘 중심 성문으로 가장 아름다운 ‘다마스커스 성문’이 있다. 그리고 1887년 술탄 압둘 하이드가 다마스커스 성문과 자파 성문 사이의 중간 지점 성벽을 뚫어 만든 ‘뉴 게이트’가 남아 있다. 예수께서 벳파게와 베타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마르 11,1-11) 통과한 성문으로 전해지는 ‘금문’은 1530년 이슬람군에 의해 폐쇄됐다.
예루살렘에는 성벽을 끼고 3개의 계곡이 흐른다. 성벽 동쪽과 올리브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키드론 계곡’은 우기를 제외하고 항상 메말라 있다. 키드론은 ‘더럽다’는 뜻인데 여호사밧이 계곡 밑에 무덤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을 키드론이라 이름 붙였다(요엘 4,2-12). 다윗 도시 서쪽 언덕에 형성된 ‘티로포에온 계곡’은 자연스럽게 윗도시와 아랫도시의 경계 역할을 했다. 이 계곡에 실로암 연못(이사 8,6)이 있었으나 지금은 계곡의 흔적만 겨우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서쪽에 발달한 ‘힌놈 계곡’은 우리말로 ‘지옥’ 또는 ‘죽음’을 뜻한다. 유다와 벤야민 지파의 경계지역(여호 15,8)이었던 이 계곡에는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 성 오누프리우스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활동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 복음서는 예수께서 공생활 이후 파스카 축제 때 단 한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마태 21,1-11, 마르 11,1-11, 루카 19,28-38)으로 기술하는 반면, 요한 복음서는 예수께서 적어도 다섯 차례 예루살렘에서 머문 것으로 증언한다. 특히 요한 복음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정확한 날짜와 세부 활동까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전 환전꾼들을 내쫓고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3-22)고 했다. 예수께서는 다시 유다인 축제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 ‘양문’ 근처 벳자타 연못에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유하다 유다인들과 시비가 붙었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은 초막절 때였다. 히브리말로 ‘수꼿’이라 하는 초막절은 유다인 3대 명절 중 하나로 유다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까지 광야에서 떠돌아다닌 것을 기념해 초막을 치고 축제를 벌였다. 초막절은 보통 태양력으로 9~10월경에 열린다. 요한은 예수께서 초막절 때 남몰래 예루살렘에서 갔고, 축제 마지막 날 성전에서 군중들에게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라고 가르쳤다(요한 7,1-39). 예수께서는 초막절 석 달 후 지내는 ‘성전 봉헌 축제’ 때 또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성전 봉헌 축제는 기원전 164년 새 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예수께서는 성전 동편 행각에 있는 솔로몬 주랑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고 가르치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던지려 하며 예수를 배척했다(요한 10,22-39).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오른 것은 라자로를 살린 다음 맞은 파스카 축제 때다. 봄철 축제로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유다인들이 이집트 탈출을 기념해 지내는 이 축제는 히브리말로 ‘페사흐’, 우리말로 ‘과월절’ 또는 ‘무교절’이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라자로를 살렸다는 소식을 들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최고의회를 소집해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결의했다(요한 11,45-57). 이 때 예수께서는 예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입성했다. 예수께서는 마치 왕이 입성하듯 어린 나귀를 타고 성문으로 들어왔고, 순례자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며 “호산나!”를 노래했다. [평화신문, 제917호(2007년 4월 22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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