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강좌 체험기
성녀 데레사의 계단을 타고 예수님께로 - 제1차 아빌라 영성강좌 & 순례피정을 다녀와서 -
홍영희
II. 순례 여정 넷째 날인 13일에는 오전에 강의를 들은 후, 오후에 도보로 아빌라 시의 성 밖에 있는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 성 토마스 수도원을 순례했습니다.
첫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인 성 요셉 수녀원은, 156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첫 미사를 봉헌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창립에 대한 반대가 심해 창립이 된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카스틸랴 지방을 통치하던 관구장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이에 성녀는 아빌라의 주교이신 멘도사 데 알바로 주교님께 순명하면서 그분 보호 아래 창립을 이루셨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주교님께서 부정적인 견해를 비치셨는데, 이를 보다 못해 성녀의 영적 지도자이신 프란치스코회 알깐따라의 베드로 신부님께서 직접 나서서 주교님을 설득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주교님께서 허락을 주시고 주교님의 보호 아래 창립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어서 모든 가르멜 수녀원은 법적으로 해당 교구의 주교님께 순명하며 주교님의 보호를 받거나, 지역 관구 수도원의 관구장님께 순명하며 보호를 받는 것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데 많은 수녀원이 해당 교구의 주교님께 순명하며 주교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쨌든 멘도사 데 알바로 주교님은 첫 맨발 가르멜 수녀원 창립의 큰 은인이신 바,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그분의 유해는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 대성당의 제대 오른편에 석상과 함께 대리석 무덤 안에 잘 모셔져 있음을 저희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대륙에 이민을 가서 성공함으로써 성녀가 이 수녀원을 창립할 당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던 동생 로렌조의 공덕도 기리기 위해 성당 한편에 그분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녀가 쓰신 책에서만 보던 500년 전의 여러 인물들을 직접 만나고 몸으로 체득하는 듯하여 정말이지 신기했고 그분들이 책에서 살아나와 당시의 정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듯 했습니다.
이 성 요셉 수녀원에서 저희는 성녀께서 창립 후 몇 년간 사셨던 수방을 재현한 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녀는 그곳에서 1562년부터 1565년까지 자서전을 집필하셨고 1566년 1월부터 그해 가을까지 완덕의 길을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그밖에 저희는 그곳에서 복녀 바르톨로메오의 안나 수녀님과 예수의 안나 수녀님 이 두 분의 초상화를 보며 그분들에 얽힌 이야기를 윤 베네딕도 신부님으로부터 자세히 들었습니다. 두 분은 성녀가 지극히 아끼던 훌륭한 제자 수녀님들이셨는데 성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프랑스의 당대 훌륭한 영성가셨던 베륄 추기경님의 초대로 프랑스 맨발 가르멜 수녀원의 창립 멤버로 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추기경님께서 프랑스 가르멜을 독자적으로 세우시면서 두 분은 프랑스를 떠나셔야 했고 이에 벨기에로 가서 브뤼셀에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은 수도회 역사상 프랑스 가르멜과 벨기에 가르멜의 어머니로서 성녀 데레사의 카리스마를 이 두 나라에 이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두 분 가운데 예수의 안나 수녀님은 사부님께서 톨레도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탈출하신 후 안달루시아 지방의 엘 갈바리오라는 작은 마을에서 수도생활을 하실 당시 그 근처의 베아스 데 세구라 마을에 창립된 지 얼마 안 된 가르멜 수녀원의 원장으로 계셨는데, 사부님께 수녀님들의 영적 지도를 부탁하셨고 영혼의 노래에 대한 해설을 부탁하셔서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그 주옥같은 작품이 탄생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신 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수녀님께서 성녀의 사후에 창립된 마드리드 가르멜 수녀원의 원장으로 재임하실 당시 종교재판소 수중에 있던 성녀의 자서전을 되찾았으며 총장이신 도리안 신부님과 함께 살라망카 대학의 당대 석학이신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루이스 데 레온 신부님께 성녀의 작품 전집을 편찬해서 출간할 수 있도록 주선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성녀의 작품 전집이 1588년 살라망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출판이 된 것입니다.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 방문을 마치며 저희는 성녀께서 1582년 8월 24일 비장한 각오로 젊은 네 수녀님과 미사를 봉헌하셨던 경당에서 그분들의 전구를 청하며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맨발 가르멜이 첫 발을 디딘 역사적인 장소를 직접 확인하고 상세한 설명도 듣고 차분히 기도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성 요셉 수녀원에서 이렇듯 복된 시간을 가진 다음, 저희는 성녀의 영적 지도를 하시던 도미니꼬회 신부님들이 살던 성 토마스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을 가는 길에 저희는 글라렛 수녀원을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성녀의 맨발 가르멜 수녀원 창립에 있어 중요한 정신 가운데 하나가 ‘청빈’이었는데 이러한 이상은 성 요셉 수녀원에서 5분 거리에 이웃하며 살던 바로 그곳 글라렛 수녀원 수녀님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합니다. 자서전에서 글로만 보던 그 수녀원을 직접 확인하며 저희는 잠시나마 함께 그에 얽힌 자서전 구절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 성 토마스 수도원에 도착한 저희는 그곳에 배어있는 성녀의 발자취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녀는 이곳에 자주 고해성사를 보러 오곤 하셨다 합니다. 그래서 여러 제대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의 성화가 있는 조그마한 제대 바로 옆에 성녀가 고해성사를 보곤 하셨다는 곳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성녀는 바로 그곳에서 중요한 신비체험을 하셨는데, 특히 성모님의 현시를 보셨다고 합니다. 이 현시에서 성모님께서는 당시 성녀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성 요셉 수녀원 창립에서 관구장 신부님과 아빌라 주교님 두 분께 드려야 할 순명 간의 갈등 문제를 언급하시며 주교님 보호 아래 들어가도록 권고하셔서 성녀는 성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고 합니다. 그 후로 창립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저희는 그에 얽힌 이야기를 윤 베네딕도 신부님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들으며 그 현시 이야기가 상세히 담겨있는 자서전 33장 14-16을 함께 읽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정말 살아서 말을 거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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