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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일상/7월에서 12월

[스크랩] 7월 20일 우리의 성조 엘리야 예언자 축일

7월 20일 우리의 성조 엘리야 예언자 축일 아침기도

 

7월 20일 우리의 성조 엘리야 예언자 축일 제2저녁저녁기도

7월 20일 우리의 성조 엘리야 예언자 축일 후 끝기도

 

  

 

 

 

 

 

 

[성서의 세계] 열왕기 - 남북왕국시대Ⅱ- 대 예언자 엘리야
 
송재준 (마르꼬)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7. 예언자들의 활동
 
이스라엘 남북왕국 시대(기원전 933~722년)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예언자들의 등장이다. 예언자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동시대同時代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던 하느님의 사람을 말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무엇보다 당시 바알 신神과 같은 우상숭배와 혼합종교주의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생활을 질타하면서 순수한 야훼신앙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서 시나이 계약의 내용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새롭게 일깨우면서 삶의 방향과 자세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남북왕국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로는 기원전 9세기경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면서 이스라엘 예언운동의 초석을 놓았던 엘리야와 그의 제자인 엘리사가 있으며, 그로부터 약 100년 후에 소위 말하는 문서 예언자들, 즉 아모스와 같이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과 행적이 기록되어 예언서로 전해진 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활동 시기   기원전 9세기           기원전 8세기
활동 장소   북왕국 이스라엘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
예 언 자     엘리야 /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제1이사야(이사 1~39장)/ 미가

남북왕국 시대 후반기에 활동했던 문서예언자들은 후에 예언서 분야에서 만나기로 하고, 여기서는 열왕기가 중점적으로 전하고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엘리야 예언자
 
열왕기는 엘리야의 예언활동에 대해 1열왕 17~19장 ; 21장 ; 2열왕 1~2장에서 전해주고 있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엘리야가 선포하고자 했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1열왕 16,29-34에 따르면 엘리야 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의 임금은 ‘아합’이었는데, 그는 ‘그 이전의 어떤 임금보다도 주님의 눈에 악한 짓을 더 저지른’ 통치자였다. 특히 바알 신을 숭배하던 시돈 임금의 딸인 ‘이세벨’이 왕비로 들어오면서 야훼의 제단 대신 바알 제단이 세워지고, 아세라 목상이 만들어졌으며, 아합 임금 스스로 바알 신에게로 가서 그것을 섬기고 예배하기조차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북 이스라엘에 바알숭배가 성행하게 됨에 따라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던 야훼신앙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 요르단강 동부 지역인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타나 그분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본래 ‘엘리야’란 이름이 가지고 있는 “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라는 의미처럼 예언자는 당시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하느님이신 야훼, 유일하신 그분께 대한 충실한 신앙을 촉구하였다.

가. 야훼만이 참된 하느님(1열왕 17-18장)
 
먼저 엘리야는 “야훼만이 참되고 유일하신 하느님”임을 명백히 밝힌다. 이 진리는 1열왕 17-18장에서 야훼와 당시 우상숭배의 대상이었던 바알 신과의 대결을 통해 드러난다.
 
첫 번째 대결의 초점은 “누가 자연현상인 가뭄과 비를 관장하는가?”이다(1열왕 17장). 세상의 창조주이신 야훼인가? 아니면 풍요의 신 바알인가? 결과는 ‘가뭄에 대한 예고(17,1) - 비가 오리라는 하느님의 예고말씀(18,1) - 비가 내림(18,41-46)’을 통해서 바알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자연을 주관하시는 분임이 증명된다. 또한 17장의 그릿 시내의 마름(7절), 하느님께서 사렙다 과부에게 ‘비가 다시 내릴 때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으리라’(14절)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기적도 야훼만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나타내주고 있다.
 
두 번째 대결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 사이에 벌어진다(18장). 먼저 엘리야는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리는”(21절) 이스라엘 온 백성을 당시 바알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가르멜 산으로 오게 한다. 실상 백성들은 야훼와 바알신에 양다리를 걸치고서 어정쩡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결의 초점은 양측 예언자들의 기도에 불을 내려 제물로 바쳐진 황소를 불살라 응답하는 신이 참된 하느님으로 증명된다는 것이다(24절). 바알 예언자 450명이 한 나절 동안이나 바알을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엘리야가 나선다. 그는 무너졌던 주님의 제단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로 쌓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주십시오”(36절)라고 기도하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불길을 내려 응답해주신다. 이에 온 백성은 “야훼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엎드려 고백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2,800여년 전 하느님께 오롯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마음이 갈려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새롭게 깨닫고, 회개하여 그분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이끌었던 예언자 엘리야!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의 우상들, 곧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갖가지 현세적 유혹과 집착, 나 중심의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아 가야 할 참된 길임을 제시해주고 있다.      
    
나. 참된 종교는 “말씀”의 종교(1열왕 19장)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 예언자들과의 대결 후 바알숭배자인 이세벨 왕비의 박해를 피해 광야에 몸을 숨기게 되는데 하느님께서는 그를 모세에게 당신 계시를 내려주셨던 호렙산(시나이산)으로 인도하신다. 그 곳에서 엘리야는 야훼 종교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다(19장). 바알종교에 맞서 열정적으로 예언자 직분을 수행하다가 도망자의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엘리야를 하느님께서는 당신 앞에 불러 세우시고 그 앞을 지나가신다. 그러나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 속에 그분께서는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 다가오신다. 이를 통해 엘리야는 야훼의 계시가 자연현상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주어짐을 깨닫게 된다. 즉 자연현상을 통해 백성을 현혹시키던 바알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며, 말씀을 통해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야훼종교의 참된 본질임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 가운데에도 신비한 자연현상들에 현혹되어 집착하는 경향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계시의 전조前兆에 불과할 뿐이다. 참된 종교의 본질은 바로 그분의 계시 “말씀”에 있으며, 신앙인은 말씀을 통해 다가오시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져야 한다. 성서 말씀 안에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인간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계시가 담겨져 있다. 바로 그 말씀에로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계신다.
 
다. 예언자의 참된 역할(1열왕 21장 ; 2열왕 1장)
 
열왕기를 후대에 최종 편집한 신명기계 역사가에 있어 엘리야는 이스라엘 예언운동의 초석을 놓은 이요, 예언자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예언직 수행에 있어 출발점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이어 예언자는 현실적 상황을 시나이 계약의 정신,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바탕으로 반성하여 백성들의 잘못을 질책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하느님의 심판과 사랑을 선포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예언자의 역할은 1열왕 21장에 잘 나타난다. 아합 임금은 왕권을 남용하여 나봇의 포도밭을 취하려 하고, 이세벨 왕비는 모략을 꾸민다. “나봇이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10절)고 고발토록 사주한 말 안에는 임금과 하느님을 동격으로 거명한 신성모독, 거짓증언의 잘못이 드러나며, 결국 나봇을 살해하고 포도밭을 빼앗음으로써 살인과 탐욕의 죄를 범하게 된다. 이에 엘리야는 분연히 일어나 시나이 계약의 여러 계명들을 어긴 그들의 죄악을 신랄하게 고발하며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비록 임금일지라도 그의 권력을 남용할 수 없으며, 공동체 구성원 모두는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일깨우고 촉구하였던 것이다.
 
또한 엘리야는 아합의 후계자 아하지야 임금이 자신의 병에 관해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에게 문의토록 하여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잘못을 고발한다(2열왕 1장). 오늘날 대학입시나 불안한 경우 점을 치거나 사주팔자를 한번쯤 보고싶은 유혹에 신앙인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엘리야는 당시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야훼만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증거하고, 종교의 참된 본질이 하느님의 말씀에 있으며, 예언직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위대한 예언자였으며, 그의 선포말씀은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종교, 사회생활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가르침이라 하겠다. 
 
[월간 빛, 2001년 9월호]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7)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Elijah)’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
 
 
<작품설명>
'천사로부터 물과 빵을 건네받는 예언자 엘리야'. 피터 폴 루벤스, 1625-28.
 
 
독일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은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행진곡,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교향곡 ‘이탈리아’ 등으로 유명하지만, ‘엘리야’와 ‘파울루스’ 같은 걸작 오라토리오도 남겼다. 열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조숙한 천재 멘델스존은 계몽주의 철학자인 조부(祖父)와 유다계 은행가인 아버지 밑에서 풍요롭게 자라났지만 어릴 때부터 병약해 고생을 했고, 결국 서른여덟 살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사도 바울로의 이야기를 담은 ‘파울루스 Paulus’가 1836년에 큰 성공을 거두자 오라토리오 작곡에 자신감을 얻은 멘델스존은 다음 오라토리오를 위한 소재들을 검토했다.
 
그러다가 구약성경 열왕기에 등장하는 예언자 엘리야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 자기 스스로 성경 구절들을 조합해 ‘엘리야’의 대본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46년에 영국에서 초연되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라토리오의 하나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비는 물론 이슬 한 방울 이 땅에 내리지 않을 것이오.”
 
‘엘리야’의 첫 곡은 열왕기 17장 1절에 적혀 있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된다. 엘리야 역은 중후한 저음의 바리톤 가수가 맡는다.
 
당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과 결혼해 페니키아의 관습과 종교를 받아들이면서 다산(多産)의 신 바알(Baal)을 섬기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엄격한 야훼에 비해 너그러워 보이는 이 신에게 빠져 야훼 신앙에 등을 돌렸고, 왕비 이세벨은 야훼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다.
 
결국 바알 신의 예언자가 450명에 달했을 때 야훼의 예언자로 살아남은 사람은 엘리야 하나뿐이었다. 민족의 신앙이 송두리째 뿌리뽑히게 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엘리야가 택한 것은 전국의 가뭄이라는 극약처방이었다.
 
3년이 지나 가뭄과 기근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진 다음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 나타나 하느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겼음을 비판한다. 엘리야의 제안에 따라 바알 신의 예언자들(합창단이 노래한다)은 황소를 제물로 바치며 ‘제물에 불을 붙여 달라’고 바알에게 기도한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이 예언자들의 첫 번째 시도를 현악기와 목관악기로 경쾌하게 반주한다. 그러나 바알 신은 대답이 없다. 엘리야는 “더 크게 불러라. 너희들의 신이 여행을 갔거나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하며 이들을 조롱한다. 그러자 바알의 예언자들은 제단 위에서 춤을 추면서 두 번째로 바알을 외쳐 부른다.
 
이 부분에서 멘델스존은 합창단과 함께 금관악기가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으로 바알 신을 재촉하게 했다. 그래도 제물에 불이 붙지 않자 예언자들은 칼과 창으로 자해까지 해가며 미친 듯이 바알에게 부르짖는다. 그러나 역시 바알 신은 침묵할 뿐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합창단과 타악기가 함께 예언자들의 신경질적인 광기를 표현한다.
바알의 예언자들이 탈진해 포기상태에 이르자 이번에는 엘리야가 앞으로 나선다. 백성들을 곁에 불러모은 뒤 그는 조용조용 정답게 야훼 하느님께 기도를 올린다.
 
“야훼여, 응답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백성이 야훼께서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이에 이어지는 천사들의 4중창 ‘너의 걱정을 야훼께 맡겨라 Wirf dein Anliegen auf den Herr’는 귀에 익숙한 멘델스존의 성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내 삶의 모두여’의 멜로디로, 마음을 편안하게 가다듬어 주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드디어 엘리야의 제물에 불이 붙자 백성들은 야훼가 유일한 하느님이심을 믿게 되고, 바알의 예언자들은 모두 처형당한다. 다시 엘리야가 기도를 올리자 온 나라에 비가 내리고 백성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이세벨 왕비는 엘리야의 예언 때문에 기근이 들었던 것이라며 백성을 선동하고, 믿음이 약한 백성들은 어느 새 다시 왕비에게 동조하며 엘리야를 비난한다. 절망에 빠진 엘리야는 광야로 피신해 자신의 헛된 노력에 탄식하며 죽은 듯이 쓰러져 잠든다. 그때 세 천사(소프라노와 알토)가 엘리야 앞에 나타나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맑은 목소리로 ‘눈을 들어 산을 보라Hebe deine Augen auf zu den Bergen’를 노래한다.
 
“이 산 저 산 쳐다본다,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야훼에게서 나의 구원은 오는구나.
네 발이 헛디딜까 야훼, 너를 지키시며 졸지 아니하시리라”(시편 121장 1~3절).
 
40일을 걸어 호렙 산에 다다른 엘리야. 그곳에서 야훼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힘을 얻어 예언자의 사명을 다한 다음, 하늘에서 내려온 수레를 타고 승천한다. 모두들 포기하고 타협할 때 홀로 정의의 목소리를 칼날 같이 세운 엘리야의 모습을 멘델스존은 고요하고도 단호한 음악으로 그려냈다. 합창의 활력과 극적 효과가 특히 두드러진 걸작이다.
 

Tip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등으로서 당대 총아였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 의한 유명한 서곡을 쓴 것도 불과 17살 때.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멘델스존은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을 재현, 지휘하면서 지휘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830년대 초반에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많은 음악적 영감을 쌓으며, 활발한 작곡과 연주 활동을 펼쳤다. 또 1835년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이 관현악단을 세계적으로 성장시키는데 공헌했으며, 교육자로서 라이프치히 콘서바토리움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F. 멘델스존은 예술음악과 교회음악을 접목해 교회 밖 연주회장에서 보다 활발히 이뤄지게 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오라토리오 ‘엘리야’도 영국 버밍엄 음악제로부터 위촉받아 작곡된 대작이다.
 
‘엘리야’를 담은 음반 중에는 필립 헤레베게가 지휘하고 라 샤펠 로얄 관현악단이 연주한 음반(아르모니아 문디)이 뛰어난 연주와 음질로 호평받고 있다.
 
또 영국의 대표적인 지휘자인 리차드 히콕스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음반도 명반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헬무트 릴링이 지휘한 전곡 음반과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1947년 음원을 담은 음반과 헨델의 메시아와 한 CD로 엮은 음반도 인터넷 등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해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싶거나 멘델스존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지난 2006년 발매된 음반 ‘Listen & Lesson - Mendelssohn’(Grammophon)도 추천한다. ‘Listen & Lesson…’은 클래식옴니버스 음반으로 KBS의 한 클래식음악 프로그램이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두장으로 구성된 CD에는 멘델스존의 대표적인 곡을 담았으며, 곡과 곡 사이에 유명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8년 4월 6일, 주정아 기자]

 

 

[성서의 세계 구약] 엘리야, 물질주의를 꾸짖는 하느님의 목소리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하나의 프로그램인 이름
 
엘리야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르멜산과 거기서 예언자가 사백오십 명의 바알 사제들에게 집행한 하느님의 심판을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바알이여, 들어주소서.” 반복되는 그 사제들의 부르짖음은 끊임없이 우리 귀에 들려 오는 듯하고, 또한 엘리야의 빈정거림도 되살아나는 듯하다. “더 크게 불러 보아라. ……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 보아라”(1열왕 18,27).
 
엘리야의 삶에서 단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인 이 이야기에서도 이 예언자의 정확한 초상화가 우리에 제시된다. 그는 바알의 추종자들에 맞서서 우상 숭배를 거슬러 싸우는 자이며,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정력적인 방어자다. 그리고 그의 이름 자체도 하나의 모토와 같다. 엘리야(Eli-Jah)는 “나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엘리야의 출현은 물질적인 축복과 문화를 누리던 시대와 일치한다.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여로보암과 함께 대략 사십 년간 함께했던 남쪽 지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놀라운 일치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작은 유다 왕국에 비해 훨씬 더 거대한 왕국이었으며 거기에다 그 국경 내에 크고 비옥한 골짜기를 보유했다. 이러한 동기들 때문에 특히 885년부터 874년까지 통치한 오므리 시대에는 놀라운 번영을 이루었다. 성서는, 적어도 이스라엘의 경우, 물질적인 진보가 종종 정신적인 쇠퇴를 뜻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오므리 시대가 그랬다.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 않고 그만큼 물질적인 면과 부 그리고 편익을 존중했으며, 곧 자신의 힘을 유일하게 믿기에 이르렀다. 예배 행위에 있어서도 낯선 세력과의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자신의 하느님을 잊었다. 게다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시돈의 이교도 공주 이세벨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왕과 왕후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 이스라엘의 일신교는 파멸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백성은 그들의 하느님 야훼를 송두리째 버렸고, 하느님께 계속 충실하고자 한 사람은 박해를 받고 살해되었다.
 
이러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쇠퇴를 보고 엘리야는 하느님과 함께 비탄에 잠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고 ……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예언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는데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찾고 있습니다”(1열왕 19,14). 이세벨에게 쫓기는 동안에 엘리야는 그 박해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다. “네가 예언자들(바알의 사제들)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내일 이맘때까지 반드시 죽이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천벌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내가 받으리라”(1열왕 19,2).
 
이렇게 고통스럽고 거의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하면서 엘리야는 -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 자신의 직무를 거부하고 항복해야겠다는 유혹을 느꼈다. 그러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목숨을 건지려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망가 거기에 시종을 남겨 두었다. 그리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가서 싸리나무 아래 자리잡았다. 그는 죽여 달라면서 부르짖었다. “오,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선조들보다 나을 것 없는 못난 놈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싸리나무 덤불 아래 그대로 누워 잠들었다(1열왕 19,3-5).
 
그러나 그러한 일시적 낙담 뒤에 엘리야는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서 도움을 발견하게 된다. 천사 하나가 그를 깨워 - 그에게 여행용 음식을 제공하고, 이것으로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시나이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신비스러운 신현(神顯)이 일어난다. 야훼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가 일생 동안 그분을 위해 투쟁한 바로 그 하느님이셨다. 이 발현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준다. 주로 아합과 이세벨 가문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야훼의 이름으로 착수된다.
 
신현이 엘리야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고 그것으로 그의 활동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예언자가 무대에 들어섰으며 그의 첫 번째 열정은 어디에 그 바탕을 두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그의 첫 번째 활동은 이후의 활동보다 덜 정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야훼를 위한 싸움은 수많은 기적이 동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성서의 독자는 엘리야의 활동에 보이지 않는 은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언자가 자라 온 환경에 연결되어 있는 내적 부르심이 선행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여기서 그가 이스라엘의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작은 마을 티스베 출신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국경 지방에는 사마리아의 사치가 뚫고 들어오지 못했고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손상되지 않고 지켜졌다. 이러한 일신교적인 분위기에서 엘리야는 우상 숭배의 탈선 소식을 듣고 열정을 불태웠으며, 은총은 그를 왕국의 중심부, 사마리아의 궁전에까지 몰아붙였다. 그는 궁정의 우아함과 부패에 대한 전원 생활의 메아리 혹은 더 낫게는 반란이었고, 물질주의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목소리였다.
 
 
비범한 일들과 화술(話術)
 
열왕기는 긴 성서 역사 가운데서 솔로몬에서 바빌론 유배에 이르는 시기만을 기록한다. 기원전 950년에서 586년에 이르는 이 시기에 이스라엘 문화와 역사는 놀라운 영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렇게 흥미로운 이 시기가 무미건조한 평론과 도식으로, 이름과 날짜의 단조로운 열거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다스린 왕들은 모두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암시도 없이 혹은 거의 그들 시대와 관련된 고문서고의 일부로만 남아 있다. 따라서 열왕기는 “도식화된 역사”라고 명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전망 속에서 이런 무미건조한 도식이, 진정 신선하게 나타나고 현실과 연결되는 예외적인 두 인물을 의도적으로 지극히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두 차례나 단절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두 이야기는 엘리야와 엘리사에 관한 것이다.
 
엘리야 이야기는 아합이 언급될 때 저 무미건조한 도식을 차단하고(1열왕 16,29), 한편 아합의 아들 여호람 시대는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의 공적에 의해 원기와 활기를 찾는다. 이 두 예언자상에 대한 진술은 그만큼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신선함으로 빛나고 있기에, 도식적이고 감정이 없는 저자가 어떻게 자신의 문화적 경향에 있어서 그러한 식으로 자신의 경향을 부인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쉽게 제기하게 한다.
 
그렇듯 생생한 이 이야기 군은 하나를 다른 것 옆에 가져가 두 줄로 확실히 세워 놓을 때 훨씬 더 주목할 만하게 된다. 그 경우에 두 이야기 군의 첫 번째 사건들이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엘리야의 첫 번째 출현은 비정상적인 가뭄이 닥친 사기와 일치한다. 가뭄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궁핍을 겪고 있을 때 엘리야는 기적으로 사렙다의 과부를 구원한다. “엘리야가 전한 야훼의 말씀 그대로 뒤주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도 동이 나지 않았다”(1열왕 17,16). 얼마 후 과부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는 초상집으로 가 아이 위에 엎드려 그를 살려내 어머니에게 준다(1열왕 17,24).
 
엘리사의 첫 번째 출현도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묘사된다. 한 과부의 가족이 반쯤 찬 병 속에서 결코 줄어들지 않는 기름으로 구원받는다. 그리고 얼마 후 수넴의 한 가족 중에서 외아들이 죽자 엘리사는 상을 당한 어머니로부터 예리한 비난을 듣게 된다. 그러자 그도 엘리야처럼 죽은 아이 위에 엎드려서 그를 살려내 부모에게 넘긴다(2열왕 4,18-37). 이 두 번째 이야기 군에서 밀가루의 기적은 빵을 많게 한 기적으로 기름의 기적과 분리된다(2열왕 4,42-44).
 
두 이야기 안에 담긴 유사성은 해석학자들에게 특별한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이야기의 진설성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이 실제로 그처럼 유사하게 반복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반복이 오로지 저자의 작업 탓이라면 그는 유능한 이야기꾼일 것이나 참된 역사가는 아닐 것이다. 그것으로 열왕기와 성서 전체의 진실성이 불신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두 명의 대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도 역사적인 등장 인물로서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믿는 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들에 대해서 신중한 해결을 찾을 필요가 있다.
 
첫째로 이미 그 진실성의 보증이 되고 있는 두 이야기 군의 생생하고 근원적인 특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에서 상기한 결과들 곁에는 아주 중대한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 즉 엘리야의 삶은 엘리사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엘리야는 정치적인 적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고독한 투쟁가이나, 엘리사는 이른바 예언자의 아들들이라는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항상 둘려 싸여 있다. 게다가 그는 정치적인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직접 전장으로 행군해간다. 마지막으로 엘리사의 삶은 이보다 덜 중요한 작은 기적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다양성이 분명히 각자의 고유한 성격은 압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또한 아주 분명한 몇 가지 유사성들은 주목되어야만 한다. 두 이야기 군은 예언자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나아가 상투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제시한다. 여기에서 예언자들을 묘사하는 결정적인 방식, 즉 예언 기록의 고유한 양식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는 분명히 이러한 문학 유형 안에서 아주 오래 된 것이고, 열왕기의 저자는 그것들을 이미 있는 자료로 수집했다. 즉 그것들은 몹시 오래된 것이며 기원전 9세기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삶에 대한 원초적인 보고서 같은 것이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1년 5월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주님,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1열왕 19,1-8) 
정태현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는 1열왕 17-19; 21; 2열왕 1-2장에 나오는데,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바알 숭배를 둘러싸고 일어난 엘리야와 이스라엘 오므리 왕조(기원전 9세기) 사이의 갈등이다. 엘리야는 특히 띠로 출신 이세벨 왕비의 조종을 받는 아합(오므리의 아들)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오므리 왕조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안정과 평화를 이룬 이 시기에 왕실 안에서는 바알 숭배가 성행하였고, 이세벨 왕비의 주도 아래 야훼 선앙을 뿌리뽑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주님을 섬기는 수많은 예언자들이 살해되고 주님의 제단 대신 바알의 제단들이 세워졌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때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이스라엘에 몇 해 동안 가뭄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다. 아합은 엘리야가 폭풍우의 신 바알을 반대하기 때문에 가뭄이 닥치는 것이라고 오히려 엘리야를 비난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아합 집안이 바알을 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불행에 빠졌다고 반박한다. 누구 말이 옳은가? 엘리야는 아합에게 이스라엘 온 백성과 이세벨에게서 녹을 먹고 사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을 페니키아 근처 가르멜산에 모아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당시 가르멜산은 팔레스티나에서 유행하던 온갖 종류의 우상 숭배, 특히 바알숭배가 성행하던 곳이다. 가르멜이라는 이름 자체가 바알처럼 폭풍우의 신을 가리켰다.
 
먼저 바알의 예언자들이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았다. 그들은 온 몸에 상처를 내고 절뚝거리는 춤을 추며 바알을 불러보았지만, 제단과 제물에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엘리야 차례였다. 그는 온 백성을 가까이 부른 다음, 야곱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와 그 돌로 그들이 무너뜨린 주님의 제단을 고쳐 세우고 그 위에 장작을 쌓아 올렸다. 이 돌 열두 개는 모세가 세운 열두 개의 돌기둥을 상기시킨다(탈출 24,4). 비록 왕국이 남북으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종교적 전통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을 열두 부족의 통합체로 보았다(이사 8,14; 예레 31,1.31; 에제 37,16-19 등). 제단을 다 쌓은 엘리야는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번제물과 장작에 마음껏 물을 붓게 하였다. 물이 제단 둘레에 흘러 넘쳐 큰 도랑을 이루었다. 엘리야가 부르짖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주십시오”(1열왕 18,36).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물에 흠뻑 젖은 제물과 장작은 물론 돌과 먼지와 도랑에 흐르던 물까지 다 삼켜버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고 엘리야의 지시에 따라 바알의 예언자들을 키손 시내로 끌고가 살해하였다. 그런 다음,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이스라엘에 가뭄이 그치고 큰 비가 내릴 것을 예고하였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이스라엘에 큰비가 내렸다.
 
(구약성서 “새 번역”)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를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이야기하였다. 2 이세벨은 심부름꾼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그대의 목숨을 그들의 목숨과 한가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신들이 나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릴 것이오.” 3 엘리아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유다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곳에 시종을 남겨두고 4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리고 나서 엘리아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하늘의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6 엘리야가 깨어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7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마흔 낮 마흔 밤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가르멜산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엘리야는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1열왕 17,3 참조). 이교도 출신 이세벨 왕비가 자기 휘하의 예언자들을 죽인 것에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시종을 브엘-세바에 남겨두고 자신은 광야로 나가 하느님과 대면한다. 사막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엘리야는 지금 지쳐있고 자신의 소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1열왕 19,4). 그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머리맡에 갖다놓았다. 그는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 사십 주야를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였다. 모세도 사십 주야를 이 산 위에서 지냈다. 이 ‘하느님의 산’은 이미 엘리야 시대에 순례의 장소가 되었던 것 같다. 엘리야가 이곳을 찾은 것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주님의 계시가 처음 전해진 곳에서 자기 믿음을 단련시키고자 함이었다.
 
호렙산에 이른 엘리야는 그곳의 한 동굴에 들어가 밤을 지내게 되었다. 모세 자신도 동굴에 머물렀다(탈출 33,21-23 참조).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주님께 자신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한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큰 열정으로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그들이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1열왕 19,10). 그러자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동굴에서 나와 산 위에 서라고 하셨다. 때마침 강풍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고 지나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불속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주님께서 그 작은 침묵의 소리 가운데 계셨다.
 
이제껏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주님께 대한 큰 열정으로 숨가쁘게 살아온 엘리야에게 이런 침묵의 소리는 생소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폭풍과 지진과 불처럼 강한 자연 현상 속에서만 나타나시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 파괴적인 행동을 알리는 것이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는 주님의 창조적인 구원 행위와 연관된다. 주님께서는 폭풍우만을 관장하는 바알과 달리, 가장 작고 연약한 바람을 이용해서도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엘리야는 이 침묵의 소리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알아보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도 주님 앞에서 얼굴을 가려야 했다(탈출 33,20-23).
 
주님께서 그 작은 소리 가운데에서 엘리야에게 다시 물으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도 같은 대답을 주님께 드렸다. 엘리야는 고독과 침묵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신분과 소명을 다시 확인한다. 주님께서는 지치고 절망한 그의 영혼을 폭풍과 지진과 불로 몰아붙이지 않으시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달래시듯 그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오므리 왕조에 맞서 대적할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신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 아람의 임금이 된 하자엘, 님시의 아들 예후가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선이 굵은 인물 둘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모세와 엘리야를 꼽겠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두 예언자에 대한 구약의 기록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변모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나타난다(마르 9,2-8). 묵시 11,3-6에 보면 이름 모를 ‘두 증인’이 나타나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예언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묵시록 연구가들에 따르면 이 표현에서 묵시록 저자가 염두에 둔 인물은 종말에 나타날 모세와 예언자이다. 묵시문학에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인자나 메시아는 모세와 엘리야를 동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엘리야를 예수님과 곧잘 비교하는데, 정작 예수님은 그를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신다.
 
열왕기의 엘리야 이야기는 소명을 받은 사람이 지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떻게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소명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잘 가르쳐준다. 유다교 전승에서 엘리야는 억압받는 자들의 주보성인이다(마르 15,35).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사도직)
 
[경향잡지, 199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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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고진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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