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오의 사진을 보면서 '루오는 밝은 사람은 아니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진속의 루오의 모습중 웃는 모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난 요새 심리학, 인상, 관상에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많이 읽어서인지 사람 얼굴을 보고 그의 삶을 추측해보는걸 좋아한다. 굳이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잘 모르더라도 작가의 모습을 본 후 작품을 보다보면 대충 작가의 성격을 알 것 같다랄까.
일단 그런 느낌을 가진 후 그림을 보니 그림이 밝지 않다.
첫번째 섹션에는 서커스라는 제목으로 광대와 소외계층의 모습을 주로 그렸었는데, 이 그림을 보며 또 느꼈다. 루오는 소외받은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부유한 태생은 아니었구나. 그림속의 광대들 표정이 슬프고 어두워보이는데 그 그림을 그리는 루오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같이 어두웠으리라는 나만의 짐작을 했다.
두번째 섹션에서는 미완성 작품, 장식용 신체에 대해서 다루었다.
나는 이번 전시 때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지 않았다.
사실 루오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류의 그림은 아니다. 나는 밝고 화사한 그림을 좋아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림. 그림의 분위기는 보는이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에 어둡고 음침한 그림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암튼 두번째 섹션에서는 사이즈가 작은 그림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그리고 루오 그림은 유독 미완성 작품이 많았던것 같다.
루오는 자신의 그림에 서명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부했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다 미완성이고. 그는 언제든지 생각이 바뀌면 덧칠을 하거나 고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완성을 뜻하는 서명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알기 전에 나는 그림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는 대작보단 습작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A4보다 작은 사이즈의 그림들도 많았던것을 보면서
진득하게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인내심보단 이것저것 즉흥적으로 손대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고, 완성작이 없다는건 그만큼 그가 그림을 그리기 전 첨부터 뚜렷한 완성된 이미지를 생각하고 그리는게 아니라 그때그때 떠오른 어슴프레한 형상을 그림으로 옮겨봤던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
종이위에 그린 그림이 많았으며 얇게 칠해진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서 재료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지만 대체적인 완성된 느낌이 비슷해보였기에 특별히 다른 재료를 쓴 이유가 다른 느낌을 내고 싶어서였다기보다는 '그냥' 여러 재료를 쓰는걸 좋아했었지 않나하는 생각.
루오는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로와 독점계약을 해서 그림을 팔았다고 하는데,
볼라르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볼라르의 유족들이 아뜰리에에 있던 루오의 그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바람에 10년간 소송을 벌였었다 한다. 루오는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기보단 볼라르의 후원을 통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고, 그랬기에 더 소외되고 누군가에게 종속된 자들에게 관심을 갖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1912년 루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큰 상실감을 느낀 루오는 미제레레 판화 제작에 몰두한다고 한다. 미제레레는 시편 51편의 내용을 토대로 지어진 시편송이라고 하는데 시편 51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다윗이 밧세바를 탐하게 되고, 그 남편이던 신하를 전장으로 내몰아 죽게 하였고 그러한 그 탐용과 죄는 그의 영혼을 흐리게 하였고 절망과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은 그로 하여금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고 그 참회의 글이 이 시편에 남아있다.
이때가 루오 작품중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였던것 같다.
내가 만약 이런 시리즈를 그렸다면 하고 생각해보니, 인생의 암흑의 터널을 건널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전쟁을 싫어하고, 약한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루오였지만,
상대적으로 밝고 환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전쟁과 약자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을 봐도 루오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루오는 리옹역 근처의 주택에서 작업실겸 숙소삼아 지냈는데,
그는 일할때 말이 없었으며, 일하지 않을땐 지인들을 불러 그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고 하니, 자기 이야기 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건가?^^)
작업실 창문도 리옹역 시계가 보이는 부분 빼고는 흰색으로 칠했다고 하니,
그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사람만나길 좋아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속에 있길 좋아했던것 같다.
섹션 4에서의 루오 그림은 한 층 밝아진 느낌이었다.
그림의 색감도 화사했지만, 분위기도 덜 어두웠고, 마띠에르를 두텁게 발라 입체감도 표현하였다.
어둠에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게 된 것일까?
캔버스 그림도 눈에 많이 띄었고, 루오 삶의 모티브중 하나인 성서관련 그림은 여전히 보였다.
그는 삶의 많은 절망을 종교의 힘으로 견뎌냈던것 같다.
루오는 어쨌든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화가였다.
어떤 화가는 자신이 영향을 받은 화가의 그림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면서 과도기를 겪는 화가도 있는데, 루오는 이런저런 영향을 받더라도 결국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해 냈다는 점에 점수를 크게 주고 싶다.
그림을 보다가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쳇, 나도 이런 그림 그리겠다~"
물론 이런 그림 그릴수 있다. 모작은 쉽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게 모작이자 비평인것 같다.
어려운 건 창작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옳곧게 추구해가는 과정이 참 힘든것 같다.
예전에 관람하러 다녔을때에 비해 재밌었던 건, 그림보면서 나름 이런저런 추측을 했었는데 전시관 내에서 상영했던 루오 생애 다큐멘터리의 루오와 일치했을때...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점점 작품을 느끼는 감이 생긴것 같아 좋았다.
고독과 번민은 창작이라는 또다른 선물을 주시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림을 보면서 내 관점에서야 루오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해도,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거라 루오가 그림을 그리면서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도 맞을 것이다.
샤갈이나 르누아르처럼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클림트처럼 사랑에, 루오처럼 번민, 고뇌, 속죄에 초점을 맞춘 사람도 있다. 내안에 무엇이 크게 자리잡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작가의 그림에 더 감명받는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어떤이는 섹션 3의 강렬한 판화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층 밝아진 섹션4가 좋다.
(루오가 한결 긍정적이고 밝은 마인드를 갖게 된 것 같아서이다)
밝다고 가볍고, 어둡다고 중후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위기가 어두워야만 무게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밝음으로서 보는이에게 밝음을 전이시키는 작품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밝음에 초점을 맞추며 살고 싶다 :) - 복 짓기 휴계소에서
The Evening Bells.....Sheila Ryan
'울타리 > 감동순간 그림과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신사임당의 <초충도〉 (0) | 2012.07.18 |
---|---|
[스크랩] 소박하고 순수한 루소(Rousseau)| (0) | 2012.07.18 |
[스크랩] 루오 -미제레레 (0) | 2012.07.18 |
[스크랩] 미제레레1 (4) | 2012.07.18 |
[스크랩] 미제레레2 (0) | 2012.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