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레레1 - 분도출판사 / 1978 / 장익 역
조르주 루오처럼 두드러진 종교화가의 경우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가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물어봄직도 하다. 일단은 냉담하고 조심스러웠다 하겠다. 그를 배척하지도 지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교회에서 아무런 청탁도 받은 적이 없고 프랑스 교회치고 루오에 의해 장식된 데도 없다. 있다면 그의 생애가 저물 무렵 아씌(Assi) 성당 건립자의 요청으로 색유리창의 본을 종이로 만들어준 일뿐이다. 아마도 교회 당국은 그의 '속된' 그림들을 보고 정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루오에 열광하던 이들 마음같아서는 그가 그린 창녀 그림들을 성당에 걸었으면 했는데, 성직자들의 비위에는 몹시 거슬리는 일이었다. 뿐더러, 그 자신 제도적 교회의 작품에 항의한 일은 없었으나 루오와 블로아(L. Bloy) 간의 친교도 성직자들 눈에 들 리 없었다. 프랑스에서 한동안은 거의 아무도 루오의 예술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교회 역시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 예순이 다 돼서야 처음으로 규모를 갖춘 전시회를 가진 루오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루오는 자기를 내세우기에는 너무나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령의 루오에게는 영예가 돌아왔다. 교황 비오 12세는 여든이 된 예술가를 그레고리오 대교황 훈위에 올렸다. 이로써 그는 오랜 괄시의 갚음을 받은 셈이다.
화가 루오는 파격적 화풍으로 자기 시대를 멀리 앞섰었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그는 서양의 새로운 성화가였다. 그의 작품의 핵심을 살펴보면 이런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루오는 크리스천 예술 쇄신에 있어 프랑스의 공헌을 대표한다.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그의 그림은 너무나 거룩함의 영역에 잠겨 있어 숨을 죽이지 않고서는 그 작품을 논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교적 야경
루오의 풍경화도 종교적 특성 때문에 그 시대의 테두리에서 벗어났다. 무엇보다도 인상파의 외광 회화와는 달랐다. 이런 풍의 그림과는 딴 세상에 속했다. 인상파 풍경화의 아름다움이란 요연한 것이고 그 여운 또한 관상자를 도취케 한다. 그런데 루오에 있어서는 광채도 볼 수 없고 인상파의 매혹도 사라져, 자연스런 명암 대신 다른 것이 나타난다. 이 다른 것이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루오는 통념적인 풍경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프랑스 사람치고도 그와 한 고향사람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는 애착으로 풍경을 그토록 사랑하던 루오였건만 자연의 사실적 묘사는 몹시 싫어했다.
성서적 풍경
예루살렘
그렇다면 루오는 풍경화에서 침울한 몽상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세말의 어떤 감각을 그린 것일까? 아무튼 그의 묵시록적 관조의 세계를 더 깊이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 화가들 중 소위 '위대한 이교도들'에게는 더 이상 보이지도 않던 종교적 풍경을 루오가 말하고 있음을 문득 느끼게 된다. 그들과는 달리 루오는 이 종교적 풍경을 다시 의식했던 것이다. 루오 자신 설화적 풍경(paysages l?gendaires)이라는 비범한 표현을 쓰고 있다. 과연 루오에게는 오직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풍경만이 문제되고 있다. 그의 풍경화는 실패를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근거하는 세계를 표출한다. 루오의 설화적 풍경화는, 신화적 환상에 빠짐이 없이 영혼의 눈으로 감지된 것들이다.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
루오의 풍경화는 일종의 비밀로 덮여 있다. 그런데 이 비밀을 포착하려 들면 도리어 그 신비를 파괴하고 말게 된다. 루오의 종교적 풍경화는 청, 적, 갈색이 압도적인 데에 그 특징이 있다. 화가의 배색은 매우 독특하다. 루오가 젊었을 때 익혔던 색유리도 그의 화법이 미친 영향하에 간접적으로 갱생했다고 할 수 있다. 루오는 색들의 광휘와 신비로운 빛에 대한 감성이 뛰어났었다. 음울한 풍경 위에 은혜의 밝은 해가 둥글게 뜬다. 이런 강한 대조에서 야릇한 서러움이 화폭에 스민다. 어떤 이들은 루오의 타오르는 색조를 보고 뜻밖에도 그의 풍경화를 '명랑한 가톨릭 신앙'이라고 한 일도 있다. 루오가 신조나 교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적은 없는 터인데, 그런 말은 도리어 사람들을 오도할 따름이다. 그의 신비로운 풍경화들은 형언할 수 없는 종교성에 젖어 있고 때로는 높은 신비적 경지에 도달한다.
저녁 노을
"나는 신비가입니다."라고 루오는 쒸아레스(Suar?s, 루오의 지기, 시인)에게 쓴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근실하고 단순하게 살기를 잊지 않았다. 그에게는 내적 필연이 결정적인 것이었다. 루오는 풍경에서 한 가닥의 신비적 노래를 들었기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적 희열' 또한 믿었던 것이다. 루오의 신비성은 그가 조화의 추구에 있어 쓴 색채 특유의 열정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색채는 렘브란트(Rembrandt)를 어렴풋이 상기시킨다. 어두운 빛을 내는 저 화란 화가의 경우처럼 루오에 있어서도 초자연적 빛이 어두움에서 나온다. 어두움 한가운데에 은혜의 빛이 빛나면서 이 세상 영광이 아닌 영광을 가리킨다. 루오의 설화적 풍경화가 상징하는 진리는 인간이 쾌락과 사치와 행복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신비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루오는 성인들의 초상에도 몰두했었다. 그는 같은 성인을 여러 번 그리기도 하고 완성된 성상 위를 다시 그리기도 하였다. 그것은 어느 역사적 인물을 실물대로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성인의 숨은 얼을 암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의 명화 '우리 요안나(Jeanne d'Arc의 기마 초상화)의 경우를 보아도 하늘을 우러러보는 성녀의 자세가 뜻하는 바는 오직 하늘로부터만 성녀가 소명을 받았다는 것이고, 배경에 불타는 마을은 프랑스의 수난을 뜻하며, 하늘의 해는 요안나와 더불어 떠오른 새 빛을 말한다. 루오가 거듭 쓴 표현으로 "우리 교회는 성인들의 교회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자찬이 아니다. 재판관이나 외교가나 나으리들의 교회가 아니라 성인들의 교회라는 뜻이다. 성인들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 교회는 벌써 망했으리라는 뜻이다.
우리들의 잔 다르크
그는 또 베로니카(Veronica, '참 모습'이라는 뜻)의 얼굴도 그렸다. 이 처녀는 성서에 이름도 나오지 않지만 십자가의 길에서는 빠지지를 않는다. 베로니카는 예루살렘 부인들처럼 길가에 서서 울면서 수난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는다. 주님께 바삐 다가가 그 이마에서 땀을 닦아드린다. 그리고 그 갚음으로 그리스도의 얼굴 모습이 자기 수건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 전설의 의의는 명백하다. 오직 주님과 함께 수난할 용의를 보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내적인 모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오는 베로니카의 얼굴을 맑고 평안하게 그렸다. 거기에는 거룩함의 카리스마가 빛난다. 달콤한 얼굴은 전혀 아니고 엄숙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얼굴이다. 루오의 창녀 그림들도 그가 추잡한 것을 즐기는 데서 나오지 않았듯이, 그는 또한 순박의 화신인 처녀 얼굴의 정결도 포착할 줄 알았다. 화가가 베로니카를 사랑했음은 그 초상의 필치에서 역력히 느낄 수 있다. 루오 자신의 잊을 수 없는 말도 있다; '부드러운 수건 든 베로니카는 지금도 길을 가는데......'
베로니카
루오의 신비적 종교성은 그의 그리스도상에서 가장 강한 표현을 찾아얻는다. 루오 자신도 십자가의 그늘에서 살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했고 예술원 사람들이 내세우는 '미의 고정관념'을 싫어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을 거듭거듭 그렸고 또 얼마나 깊이 체득했던지 중세의 대가들과 겨룰 만한 그림들을 냈다. 루오의 관조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비유로 말했으나 그 자신은 어떠한 비유보다도 큰 인물이었다.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류의 구원자였다. 루오는 당시 속화되고 무신론에 젖은 파리 한가운데에 수난하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다. 겸연쩍게 비웃는 이들을 개의치 않고, "그분은 여기 계시다"고 담박하게 말할 수 있는 신앙의 힘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얼굴
그는 더없이 진지하게 거룩한 얼굴을 관상하였고, 그 얼굴은 화가의 마음속 깊이까지 들어왔던 것이다. 그의 그리스도상을 익히 보면 볼수록 관상자는 사로잡혀 수난 신비에 이끌려 들어간다. 루오의 수난하는 그리스도는 이를 데없이 서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겠는가. 루오의 그리스도는 변두리 동네의 추한 골목을 헤맨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누리기 위해 몸소 서러움을 짊어진 그리스도이기에 변두리 동네를 내적인 빛으로 밝혀주는 것이다. 화가 자신도 변두리 출신이었고, 도심을 끝내 기피한 그는 평생 변두리에 대한 일종의 편애를 느꼈다. 그러나 루오가 그린 것은 자신 안으로 애처롭게 오므라든 인간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통해 비치는 것은 신적 현실의 위엄이다. 크리스천 현실이란 비천과 존엄의 불가사의한 결합에 담겨 있는 것이다. 고통의 종교적 비창이 루오의 그리스도에 있어서는 가시관으로 살아난다. 루오의 그림들은 "밤이 담장을 따라 몰래 왔다"는 그의 말대로 진정한 수난화들이다.
그리스도의 얼굴
루오의 그리스도가 마치 줄을 타다 떨어진 광대같다는 따위의 말은 무모한 오판이다. 하기야 그가 그린 그리스도가 때때로 광대같아 보이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르다. 도리어 루오의 창녀 그림, 판관 그림, 광대 그림들이 그리스도상에서 빛과 뜻을 얻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의식적으로 그리스도상과 대면시켜 역으로 조명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루오에게는 그리스도가 여러 주제들 중의 하나가 아니고, 그리스도상이 다른 그림들과 같은 차원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루오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의 그리스도상은 '역사적 예수'의 묘사가 아니라 골고타에서 일어난 사건의 끝없는 묵상이다. 루오는 모든 것을 하나의 구원사적 관조로 보았다. 그러나 결코 교조주의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리스도 수난의 비길 데 없는 처참이 루오를 압도했던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두려움과 의로움의 피땀을 흘리지 않았던들 구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화가는 오늘까지도 그 수난이 계속되는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그렸다. 소시민적 인간들의 눈으로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감득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루오의 그리스도상에서 파스칼(B. Pascal)의 감동적 말을 듣는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 외롭다......"
광대
네 명의 피에로
어린 마술사
어릿광대의 초상
루오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통 사람 얼굴 그리듯 즉 특정한 어떤 인물로 여길 수 있게 그리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보통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정형화된 얼굴이라는 해결책을 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독특하고 혼동할 수 없는 성격을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루오에게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원형 그 자체였다. 이 원형이 그에게는 기점이 되어주었고 인생의 암야를 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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