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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감동순간 그림과 사진

[스크랩] 성모영보(혹은 수태고지) 사건은 루카 복음서만이 전하며, 마태오 복음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마태오, 1,18)”

 

성부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마리아는 몹시 놀랐지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며 신에 뜻에 순명한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부터 비롯된 인류의 타락, 이로 인한 신과 인간 사이에 생긴 기나긴 반목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사건을 교회는 5세기부터, 예수 탄생의 9달 전인 3월 25일로 정해 ‘주님 잉태(Conceptio Domini)’ 축일로 지냈다. 그리스도 일생의 시작점이기도 한 이라고 간략히 언급한다. 한편 [야고보 원복음서]와 이를 인용한 [황금전설]은 더욱 흥미롭게 각색된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성모영보] 4세기 초
프레스코, 카타콤 프리실라, 로마

[성모영보] c.400~410년
대리석 부조, 브라치오포르테 묘당, 라벤나

 

 

실 잣는 마리아, 우물가의 마리아


최초의 이미지는 4세기 초, 로마의 프리실라 카타콤에 등장한다. 마리아는 긴 튜닉과 망토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가브리엘 천사는 오른 팔을 들어, 마치 연설하는 듯하다. 5세기 동로마 제국에서 제작된 석관에는 흥미로운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마리아가 의자에 앉아 실을 잣고 있다. 마리아와 천사 사이에는 양모바구니가 있으며, 마리아는 손에 물레가락(spindle)을 들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근거는 2세기 말에 쓰여진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른 것인데, 그 내용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사원에 새 커튼을 만들 것을 결정한 유대 성직자들은 다윗 가문의 여덟 처녀들을 불러 그들에게 양모를 나누어 주었다. 그들 중 한 처녀인 마리아는 실을 잣기 위해 자주빛과 진홍빛 양모를 받게 된다. 어느날, 우물에서 물을 긷는 마리아에게 천사의 음성이 들렸다. 그녀는 천사를 외면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 실 잣는 일을 계속한다. 거기서 다시 천사가 나타난다.

 

[성모영보] 432~440년
모자이크,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 로마

 

 

위경의 내용은 루카복음에 기록된 성모영보 이전의 장면으로, 이는 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비잔틴에서 즐겨 회자되었다. 에페소 공의회 직후 교황 식스투스 3세의 명으로 로마에 세워진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Santa Maria Maggiore)는 마리아에게 받쳐진 최초의 교회로, 앱스를 장식한 개선문에 [성모영보]가 등장한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고, 옥좌에 앉아 황금색 황후의 옷을 입고, 왕관을 쓰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늘을 날고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도 함께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마리아 오른편 발치 놓인 양모 바구니, 그녀가 쥐고 있는 자주빛 양모, 물레가락 등 실 잣는 도구들은 위경에 근거한 표현이며, 신전 장막 짜기에 헌신했던 마리아가 하느님을 공경한 표현이자 처녀성의 상징이기도하다. 한편 베네치아에 있는 산마르코 바실리카의 모자이크에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마리아가 등장한다. 마리아는 물을 긷기 위해 물주전자를 들고 있는데, 이 주전자는 ‘예수를 담을(잉태할) 그릇(container)’으로서 준비된 마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동방의 전설은 서방 교회의 신학자들에게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다가 12세기부터 문헌에 등장한다.

 

[성모영보] 12세기
모자이크, 산 마르코 바실카, 베네치아

니콜라 베르뎅 [성모영보] 1181년
에나멜, 클로스터뉘베르그 미술관, 오스트리아

 

 

책 읽는 마리아


1181년 니콜라 베르뎅이 제작한 [성모영보]에서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방문을 선채로 맞이한다. 놀라는 마리아의 심정은 그녀의 손짓에서 짐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전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티브가 등장한다. 그것은 마리아와 가브리엘 사이에 있는 책으로, 책은 지혜의 상징으로 중세 이후 마리아의 중요한 상징물이 되었다. 10세기 비잔틴 설교집에는 마리아를 아테네가 가진 지혜의 속성과 연결지었으며, [위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마리아보다 더 현명하거나 하느님의 율법을 잘 교육받은 자가 없고, 다윗의 시편을 그녀만큼 잘 부르는 자 없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 중세에는 마리아를 신의 지식으로 이끄는 일곱가지 학예(liberal Art)의 여왕으로 간주하였다.

 

아미앵 대성당 문설주 조각에도 가브리엘 천사와 마주한 마리아는 책을 들고 있는데, 이는 카롤링거 왕조, 오토프리드의 시 ‘크리스트(Krist)'에서 ’천사가 도착할 때 마리아는 책을 읽고 있었다.‘라는 표현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 13세기 말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묵상록 Meditation]에는 마리아가 천사가 나타났을 때,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이사야서 7장 14절에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라고 기록된 것과 연결된다. 실 잣는 마리아에서 책 읽는 마리아로의 변화는 12세기에 마리아 공경(Cult of Mary)이 절정에 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성모영보] 1220~1230년
문설주 조각, 아미앵

로베르 캉팽 [메로드 제단화] 1425~1430년
목판,64.5cmX64.5cm, 64.4cmX27.2cm, 27.8cm,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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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의 장소, 마리아의 집


14세기 이후, 화가들은 마리아와 가브리엘의 만남과 대화를 강조하기보다 신이 인간 세계에 도래했다는 의미에서 성모영보가 일어나는 장소, 즉 마리아의 집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관심을 보인다. 1425년경 프레말의 거장(Master of Flémalle)으로 알려진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이 제작한 [메로드 제단화]에서 마리아는 자기 집 거실에 앉아 책을 읽는 당시 플랑드르 중산층의 평범한 소녀로 등장한다. 전경 테이블에는 지금 막 꺼진 촛불, 백합, 그리고 책이 있는데 막 꺼진 촛불은 계약의 완성을 상징하는 관습적인 표현으로 당시 이 지역 상인들이 계약이 체결 되었을 때, 테이블 위의 촛불을 끄는 것으로 약속을 확인했다고 한다. 즉 성모영보에 등장한 꺼진 촛불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약속이 마리아의 잉태로 완성되었음을 시사한다.

 

로베르 캉팽 [메로드 제단화] 중앙 패널

[메로드 제단화] 중앙 패널의 테이블 세부

 

 

또 백합은 마리아의 꽃으로 그녀의 순결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후경 벽에 걸린 흰 수건 역시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 옆의 큰 주전자는 앞서 언급한 외경에 근거한 상징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담을 그릇’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일상적인 가정용품들을 종교적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플랑드르 회화의 특징으로 일종의 ‘숨겨진 상징(hidden symbolism)'이다. 한편 화면 왼쪽 닫혀진 창을 뚫고 십자가를 매고 내려오는 아기 예수는 성령을 번안한 표현으로, 신학자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조그맣게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화면 오른쪽 벽난로 위에는 촛대가 두 개 있는데, 이는 구약과 신약을 의미하며, 초가 꽃힌 촛대가 신약을 상징한다.

 

 

로지아와 정원


15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였던 프라 안젤리코는 성모영보를 15점이나 제작했는데, 그는 배경으로 로지아(loggia)와 정원을 일관되게 그린다. 1438-50년경에 완성한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 벽에 그려진 [성모영보]는 마치 마리아의 잉태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로지아는 이탈리아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복도나 거실 용도로 쓰는 건물의 한쪽 벽을 없애고 바깥과 직접 연결되도록 한 공간이다.

 

프라 안젤리코 [성모영보] 1437~1446년경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프레스코화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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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천사와 마리아가 각각 자리하고 있는 아치는 마치 M자와 같고, 이는 마리아의 이니셜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마리아의 이름을 분석하면서 M의 상징성을 어머니(Mother)이며 중개자(Mediator)로 보았다. 또 화면 왼편 담으로 둘러 쌓인 정원(hortus conlusus)은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중 “그대는 닫혀진 정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닫혀진 정원, 봉해진 우물”(아가 7,12)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마리아의 동정성의 상징이자, 마리아를 위한 낙원의 상징이다. “진리를 관상하라 그리고 전하라” 라는 모토를 가진 도미니코 교단 수도원 복도에 그려진 이 작품 속 마리아는 실을 잦지도 책을 읽지도 않고, 그저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명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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