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Angelo Albani, Massimo Astrua 원저
이 종욱 안셀모 신부 역
2장. 인간의 운명; 하느님과의 일치(一致)의 삶.
1. 그리스도교적인 삶
하느님과 인간, 이 두 실재(實在)는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을 지향(指向)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 두 실재(實在)는 분리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啓示)해주는 것은 역시 신앙(信仰)이다.
이 합일(合一)이 처음으로 실현된 것은, 인성(人性)을 취하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셨던 하느님의 아들의 인격(人格) 안에서이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 모두의 원형(元型)이시다. 성부(聖父)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성자(聖子)를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 되게 하셨고, 우리는 당신 성자(聖子)의 모습을 닮게 하셨다.[12]
인간에 대한 모든 신학(神學)의 핵심은 바로 이 '예정(豫定)' 안에 있는데,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인간은 오로지 예수의 '살아있는 모상(模像)' (copie vivante)으로 간주되고 있다.
2. 자녀적인 삶
예수 안에서 우리의 변모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성령(聖靈)이시다. 성부(聖父)와 성자(聖子)께로부터 파견되신 성령(聖靈)께서는, 우리를 예수 안에 변모(變貌)시키시고 우리가 성자(聖子)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면서, 예수의 생명[13]으로 우리 영혼을 비추러 오신다.[14]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당신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15]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16]
3. 삼위일체적(三位一體的)인 삶
성령(聖靈)의 위격적(位格的)인 현존(現存)은, 성령의 신적(神的) 본성(本性)이 지닌 본질적인 단일성(單一性)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느님의 다른 두 위격(位格), 즉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를 모셔들여, 예수의 다음 말씀 그대로 성삼위(聖三位) 전체를 우리 영혼 안에 현존(現存)하시게 한다: "우리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17]
따라서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와 성령(聖靈)께서는 우리 안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양식으로 생활하시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변모(變貌)되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을 체험하게 된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우리의 '삼위일체 안에서의 변모'[18]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가졌고, 바로 그것을 자신의 모든 영성적(靈性的) 교의(敎義)의 바탕으로써 표제로 내어놓았다. 영혼은 영혼 자신 밖에서가 아니라 영혼 자신 안에서 하느님과 자신과의 독특한 합일(合一)을 실현시킬 것이고, 이 합일은 영혼 안에 단순히 하느님께서 현존(現存)하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의 생명에 완전히 참여함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성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실제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聖三位) 안에서 분명하고 명백한 방법으로 영혼이 변모되지 않는 한, 하느님 안에서의 진실하고 완전한 변모란 있을 수 없다."[19]
성인은 이어서 또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그렇게 고귀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신화(神化, deiforme)되어 있는 데까지 이르게 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聖三位) 안에 일치되어 있게 하시니, 그 안에서 영혼이 '참여'로써 하느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聖靈)을 숨쉬며 살아계신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본성적 활동 자체에 영혼이 참여함으로써, 영혼이 삼위일체 하느님처럼 삼위일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왜 믿어지지 않는가?"[20]
"비록 그것이 저 세상에서 만큼 완전하게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영혼이 완덕(完德)의 상태에 도달할 때에, 영혼은 그 상태를 미리 맛볼 수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얻게 된다."[21]
성인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오, 이 위대함들을 위해서 창조된 영혼들, 이 위대함들에 초대된 영혼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무슨 일로 소일(消日)하고 있는가? 그대들의 소망은 비열하고 그대들이 소유한 것들은 비참한 것들이구나. 이토록 밝은 빛 앞에서 그대들은 어찌 눈이 멀었으며, 이토록 우렁찬 소리 앞에서 그대들은 어찌 귀가 먹었는가?"[22]
우리로서는, 이 값비싼 진주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것을 진정 모두 팔도록 결심하게 하기 위해서, 신앙(信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고귀한 진리(眞理)들을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이 값비싼 진주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23]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에 참여함을 말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