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된 완덕
❚정대식 신부님의 영성생활 중에서
완덕의 그릇된 개념과 그릇된 실천이란 어떤 것인가? 사랑과 애덕이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일 때 이것은 결코 완덕이 될 수 없다. 또한 열심과 열성을 감정적인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열심과 열성은 어디까지나 성실과 겸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감정적인 것은 감상적이고 상상적인 것이다.
완덕이란 기도를 많이 하고 또한 여러 가지 신심 단체에 가입하는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본당의 모든 신심단체에 가입하고 또 다 관여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하는데 영성을 신심활동과 혼돈했을 때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신심생활을 한다는 변명 아래 자기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도 완덕의 그릇된 실천 모습일 뿐 아니라 고행, 속죄, 단식을 지나치게 하여 건강을 해치는 것도 완덕이 아니다. 또한 어떤 신심의 실천이든 애덕을 거스른 경우는 완덕이 될 수 없다. 한편 영성적 위로를 느끼려 하는 것도 완덕이 아니다. 사도직에 지나치게 열중함으로써 내적 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도 완덕의 그릇된 모습이며 반대로 내적 생활에만 열중함으로써 외적인 사도직 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도 완덕의 그릇된 모습니다. 완덕의 그릇된 모습으로 중요시할 것은 의식적으로나 의지적으로나 탈혼, 환영, 환시 등에 정신과 상상력을 집중시키는 경우이다.
요즈음 진행되고 있는 성령 운동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나쁘게 될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소리를 들었다하고 어떤 사람은 성모님을 보았다 한다.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귀로 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사람은 기(氣)가 약해지면 헛것이 보이기 쉽다. 그러므로 이런 언행은 조심해야 한다. 신비신학의 대가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이 하느님을 체험하면 입을 다문다고 한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하느님을 체험하고 난 뒤 인간의 표현 중 가장 고차적인 시(詩)로써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깊은 영혼의 체험을 시(詩)로써 〈어둔 밤〉,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영성 지도자 양성과정에서 신비적인 체험은 즉시 잊어버리도록 가르치라고 배웠다. 계시나 환상 등의 체험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언제나 그 사람안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잊어버리라고 가르쳐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악령에게서 온 것이라면 올바른 지도를 한 것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완덕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올바른 완덕이고 어떤 것이 그릇된 완덕인지를 언제나 우리 생활 안에서 구별해가면서 살아야 한다.
Gute Nacht (안녕) |
'영육간의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마음속 길들이기 | Ernesto De Curtis - Non ti scordar di me (0) | 2012.01.21 |
|---|---|
| [스크랩] 감각적인 어둔 밤과, 영적인 어둔 밤. (0) | 2012.01.18 |
| [스크랩] 욕망이 진리가 될 수도 있다. (0) | 2012.01.04 |
| [스크랩] 든든한 무無 (0) | 2012.01.04 |
| [스크랩] 마음의 주인 (0) | 2012.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