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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사랑울림

[스크랩] 소유할 수 없는 사랑 - 이제민 신부

 

소유할 수 없는 사랑

                                                           이제민 신부님

 

 


모든 종교는 사랑(자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랑은 인생을 완성시켜 주고 인간이 인간 되게 하는 주요덕목이다.
그런데 사랑처럼 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사랑은 소유하려는 마음을 없애는데서 비롯한다.
상대를 소유하려는 순간 사랑은 그 순수성을 잃게 된다.
소유에서 초연해질 때 사랑은 영원하고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욥의 이야기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근본을 극적으로 들려준다.
야훼께서 사탄에게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없다” 하고 말씀하셨을 때,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하고 아뢴다.
욥이 하느님께 신뢰를 보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소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훼는 욥의 소유를 모두 사탄의 손에 붙이신다.
사탄은 무자비하게 욥의 소유를 짓밟는다.
재물뿐 아니라 자식과 명예도 거두어간다.
욥을 완전 무소유의 인간으로 만든다.
하느님을 원망하고 저주할 줄 알았던 욥은
그러나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는다.
온갖 소유를 자기 몸에서마저 벗겨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입을 열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무소유를 찬미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다.
일체 소유를 비운 곳,
그 곳에서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일이 이루어진다.
예수께서 사랑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소유의 포기를 강조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루가 복음은 이렇게 보도한다.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든 마귀를 제어하는 권세와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쳐 주라고 보내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
지팡이나 식량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그 동네를 떠나라.
떠날 때에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려라."
열 두 제자는 길을 떠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며
이르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 주었다.(9,1-6)

자기를 지탱해주는 지팡이도 먹여 살릴 식량자루나 빵도 돈도
자기를 보호하고 명예를 지켜줄 옷가지도 소유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집도 마을도 사람도 떠날 준비를 하여야 한다.
그 때에야 비로소 마귀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고
남의 병을 고쳐 줄 수 있을 것이고 남에게 평화를 빌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소유하려는 마음으로는 남을 환영할 수도 없고 평화를 빌 수도 없다.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없다.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고 싶은가? 소유에서 초월하라.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자만이 진정 사랑할 수 있다.


  

per sempre nai  

 
 


  *                                               *    *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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