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2회 죄는 영혼의 병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4일(요한묵시록 1장~ )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돌아다 보면》교만하고 자랑해 보이려고 하는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겸허해야 되는데, 겸손해야 되는데 ...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자꾸 보입니다. 정말로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은 무언가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일 그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그 사람이 나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태껏 나보다도 선행을 쌓을 기회가 많았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보다 젊다고 하면 죄를 적게 지었으리라 생각해서 존중한다. 만일 나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나보다도 더 자선을 베풀어 왔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가난하다면 그는 나보다도 훨씬 더 괴로워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현명하다면 그의 지식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 만일 나보다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나보다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좋아하라는 뜻도 아니고, 무조건 서로 잘해 주기만 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구원과 선의 실현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보았다면(알고 있다면), 그 죄를 막아야 합니다. 무관심과 방관은 ‘사랑 없는’ 태도입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죄와 악을 막고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계명은, “원수를 좋아하여라.” 가 아니라,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그를 ‘구원의 길’ 로 인도하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에는, 용서와 자비도 있고, 원수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주는 것도 있고, 그를 꾸짖거나 타이르는 것도 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 18,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너에게’ 라는 말은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이 말은, 아마도 필사 과정에서 잘못 들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개인 사이에 사적으로 잘못한 일이 생긴 상황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께’ 죄를 지었을 때의 상황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단둘이 만나...” 라는 말씀을 먼저 하신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아직 회개하고 보속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도 처음부터 그 죄를 공동체 전체에게 공개해 버리면, 그가 회개하기는커녕 더 나쁜 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타일러라.’ 라는 말은, “그것은 죄다.” 라고 깨우쳐 주는 일과 “그 죄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회개하여라.” 라고 권고하는 일을 모두 포함합니다. 부드럽게 타일러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강하게 꾸짖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죄를 지은 형제를 타이르는 일은 그의 구원을 위한 ‘사랑 실천’ 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사랑뿐입니다. 형제에게 사랑을 실천하려고 가서 사랑은 주지 않고 상처만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형제를 타이를 때, 산상 설교에 있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마태 7,1)라는 말씀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5)라는 말씀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라는 말씀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죄 없는 의인이라서 죄인인 그를 꾸짖고 타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죄인이지만, 그가 나의 형제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에 있는 죄인의 입장에서, 구원의 길로 함께 가자고 호소하는 것. “그가 네 말을 들으면” 은 “그가 네 말을 듣고 회개하면” 입니다.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잃었던 형제를 되찾은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하느님을 등지고 돌아서는 것과 같고,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죄 지은 형제를 회개시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일이고, 잃은 형제를 되찾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마태 18,16)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회개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또는 “남의 일에 참견 말고 너나 잘해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공동체 전체의 사랑으로 그를 타이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수의 힘으로 개인을 압박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한 몸이고, 한 지체가 병이 들면 몸 전체가 병든 것과 같기 때문에 공동체가 나서는 것. 죄는 영혼의 병입니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7-18) “교회에 알려라.” 교회 직권자에게 고자질하거나 밀고하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처분에 맡기라는 뜻입니다. 이미 두 번째 단계에서, 죄 지은 사람의 상황을 공동체가 모두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때부터 공동체의 문제가 됩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죄를 지은 그 사람이 교회의 공적인 회개 권고도 거부하면” 입니다.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그를 파문하여라.” 입니다. ‘파문’ 은 영구 추방이 아니라, 회개할 때까지 신자 자격을 정지시키는 일입니다. 회개하면 다시 받아 줍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땅의 결정을 하늘이 따른다는 뜻이 아니라, 하늘의 결정이 땅에서 실현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결정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파문과 같은 중대한 일은 더욱더 기도하면서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이 말씀을 앞의 말씀들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죄 지은 형제를 회개시키는 일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일이라는 것, 또 예수님께서는 공동체 전체가 한 마음으로 그 일을 함께하기를 바라신다는 것, 등을 나타냅니다.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또 죄 지은 사람 자신이 회개하고,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하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입니다.(마태 18,14)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귀는 열라.’라는 말을 담고, 하느님의 선물인 우리들이 가진 것을 하나하나 나눔으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갖는 행복한 날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에 있다.'' - 무어 - |
♡2383회 “공감능력”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5일(요한묵시록 11장~ )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어느 신부님께서 서품을 받자마자 첫 본당에 막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청년들과 첫 단체 회식이 있었는데 일이 있어 조금 늦게 참석하게 되었다. 신부님께서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청년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신부님 자리는 테이블 한 가운데에 마련되어 있었다. 신부님께서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서글서글한 청년들 사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주위를 둘러봤는데 테이블 양쪽 끝에 앉은 청년들의 분위기가 꽤나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성격이 활달한 여자 청년들이 제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양쪽 귀퉁이에는 신부님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남자 청년들이 앉아 있었던 것. 남자들이 원래 그렇다. 같은 성별이기 때문에 사제를 더욱 조심스러워 하고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신부님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자리를 옮겨 앉았고 평소 남자 청년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당구 이야기가 나왔고 야구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 순간 이구동성으로 신부님에게 축구 게임을 하냐고 물어왔다. 당시 남자 청년들 사이에서 축구 게임이 유행이었으므로 신부님 역시 그 게임을 하는지 물어온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부님은 그 게임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솔직히 사실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대로 지내다간 아무래도 남자 청년들과 친해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신부님은 바로 다음날 전자시장에 가서 게임기를 사왔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열심히 연습했다. 매뉴얼을 뽑아서 연구하고 여러 가지 영상을 찾아보며 틈이 나는 대로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면 저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충분히 거룩했다. 관계가 형성되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고민을 털어놓는 청년들이 생겨났고, 그러다 보니 함께 기도하고 기타치고 성가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수요일 저녁에는 청년들과 소성당에서 평일 미사를 따로 하고 교리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신앙적 측면에서 매우 좋은 결과가 이어졌다. 이 경험 이후, 어떻게 사목활동을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후배들에게 신부님은 항상 이야기합니다. 사제로서 기본적인 소양이 갖춰져 있음을 전제로, 적당한 스포츠, 하나 정도의 악기, 최신 가요에 대한 지식과 유행하는 게임 하나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목활동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이를 다른 말로 “공감능력” 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공통적인 감각이 있을 때 상대방은 마음을 열게 되고 신뢰를 갖게 되며 바로 그때에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활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아이들에게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지?” 라고 이야기 하면 아이들은 무표정하지만, “나는 요즘 어떤 연예인이 좋더라” 라고 말하면 비로소 미소를 띱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 그러므로 이 “공감능력” 은 사제에게 매우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지적하십니다. 이들은 세례자 요한이 고행을 할 때에 그에 공감하지 못하고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고 비난했던 자들입니다. 공감능력이 없으므로 세례자 요한이 어떤 의도로 고행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거룩하고 신실한 것인지 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예수님이 그와 반대로 먹고 마시자, 이제는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니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함께하며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는 것. 결국 공감할 수 없는 그 상태로 머물러 있으니 그들의 마음에 지혜가 드러날 기회는 사라지고 자연스레 미움과 원망만 생길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공감능력을 어떻게 하면 잘 발달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 합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와 함께 하고자 애정을 담아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를 아끼게 되고 진정어린 교류를 나누게 되는 것.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청하기만 하지 나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께 공감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투정만 늘어가고 기도를 즉각즉각 들어주시지 않는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수록 우리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애정 어린 시선과 사랑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주님과 우리의 대화의 창은 열리게 되고 나아가 깊은 주님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것.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지금 이 순간 기도로 우리들의 채움과 비움을 이루어내는 은총과 축복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절망과 희망으로부터 기도가 태어났다." - 성 요한 비안네 - |
♡2384회 모두들 세상을 바꾸려 들지만 스스로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6일(창세기 1장~ ) 히에로니무스는 “구원자 예수님의 얼굴에는 거역하기 어려운 거룩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나서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첫 제자들이 했을 리가 없다. 자신들의 아버지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따라가고자 아버지를 버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첫 제자들은 영의 아버지를 따르고자 육의 아버지를 버렸다. 아니, 아버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은 것입니다.” 《삶에 적용되는 멋진 생각들》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다. 당신이 하루종일 아무런 문제에 부닥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 성공을 위한 3가지 필수 조건 ㄱ.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 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할 것. ㄷ. 남보다 큰 기대를 갖지 말 것. 승리하는 자는 설명이 필요없다. 그리고 패배하는 자는 변명 전에 스스로 사라져야 한다. 당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을 모욕하는 것. 당신이 보이는 사람들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1등이 꼭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보다 더 잘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나는 1000번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실패할 수 있는 1000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 모두들 세상을 바꾸려 들지만 스스로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무나 믿는 것은 위험한 짓이지만 아무도 못 믿는 것은 더욱 위험한 짓이다. 인생에 있어 실패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삶에 있어 소중히 지켜야 할 것들은 믿음, 약속, 인관 관계 그리고 상대의 마음이다. 이 네 가지는 깨질 때 소리는 나지 않지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양심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상태를 ‘반사회적 인격장애’ 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소시오패시(Sociopathy), 우리에게는 사이코패시(Psychopathy)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수는 어떻게 될까요? 학자들은 그 수를 전체 인구의 4%로 즉, 25명당 1명에 이르는 것으로 봅니다.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의 수치가 이렇게 된다는 것. 점점 도덕적 불감증이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다른 사람과 상관없다는 생각, 나의 욕심과 이기심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생각, 내가 받을 사랑에는 민감하면서 남에게 베풀 사랑에는 무감각한 것 등등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는 사람이 늘어만 갑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아주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 곁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지만 모두 큰 상처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한 번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반복된 행동으로 이런 모습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운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앞차가 속도를 내지 않고 있으면 막 화를 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앞차는 규정 속도를 지킬 뿐인데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며 화를 냅니다. 이렇게 화내는 것에 전혀 죄책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반복된 행동을 통해 양심이 사라지는 것. 이렇게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푸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사랑이 쌓이고 쌓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에 준비시키기 위해, 첫 번째 수난 예고와 거룩한 변모가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두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혼란에 빠져 잘못 생각하는 제자들은 수난에 관한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님과 늘 함께했던 제자들이었다. 함께 먹고 마셨으며, 바로 옆에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놀라운 표징들을 끊임없이 목격했다. 그런데도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하면서, 정작 가져야 할 사랑을 잃어버린 것. 그래서 주님과 함께하면서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주님 곁에 함께 있었던 제자들도 이 정도였는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떠할까요? 지금 이 순간 더욱 더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의 사랑이 아닌 함께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면서 이 세상 안에서의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될 것. 어느 신부님께서 ''죽음의 힘이 얼마나 센 지를 ‘천국의 문’ 봉안당을 운영하면서 더 크게 깨닫게 됩니다. 언젠가 자신의 부모님을 개장해서 모신 팔십 대 후반의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8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가 30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본인도 팔십 대 후반의 나이로 이제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안치 예식을 하면서 눈물을 터뜨리십니다. 아이 같이 소리를 내어 우시면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십니다. 죽음이 얼마나 힘이 센 지를 이 모습을 보며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죽음을 이기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하셨다. 여기에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생깁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을 것이고, 이렇게 힘이 센 죽음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 편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라는 말씀을 담고, 은총을 베풀며 나날이 천국 가는 길에 주님 자비의 손길을 누리시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넘어졌다면 무언가를 주워라.'' - 오스왈드 시어도어 에이버리 - |
♡2385회 ''자유를 빼앗기면 존엄성이 빼앗깁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7일(창세기 21장~ ) 아우렐리우스는 ''천년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시오.'' 《좋은 아내》지혜로운 아내의 혀는 은혜로워 남편에게 양약(良藥)과 같고 그 혀는 천은(天銀)과 같아 그 남편에게 생명의 샘입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그 입을 열어 남편을 인정하고 칭찬함으로 그 남편은 금과 같이 귀한 사람이 됩니다. 현숙한 아내는 그 입을 슬기롭게 열어 사랑하는 남편에게 기쁨과 소망과 자신(自信)을 주는 말을 합니다. 명철한 아내의 입술의 말은 그 남편에게 깊은 물과 같고 솟구치는 내와 같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아내의 입술에는 덕(德)이 있으므로 남편이 그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학자의 혀를 지닌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이 피곤 할 때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압니다. 지혜가 있는 아내는 그 입술로 말합니다. "난 당신으로 인해 행복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자존감이 낮은지, 높은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녀나 직장에서 책임자의 위치에 섰을 때는 그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방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나무 분재를 하듯 사람들을 통제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들은 아주 작은 일에까지 간섭하지 않으면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앞에서 통제를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자존감을 상실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습니다.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의 저자 아른힐 레우뱅은 끊임없이 통제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통제되어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통제권을 자기 내면의 폭군이자 자아인 ‘선장’ 에게 내맡겼다. 통제권을 상실한 아른힐은 선장이 시키는 대로 밥 대신 벽지를 뜯어먹었다. 그러면서도 선장은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니?” 라고 다독입니다. 이렇게 벽지라도 뜯어먹으며 배를 채우게 한 선장은 으쓱해집니다. 그런데 선장과 같이 자신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주위에 너무 많았다. 자주 자해를 하는 덕에 아른힐은 정신병원에서 1년 동안 햇빛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독방에 갇혀 있거나 지독한 통제를 받아야 했다. 자기 자유의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자해하는 것과 약을 거부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자해할 수 있는 어떤 물건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른힐은 마지막 남은 통제권인 약을 먹는 것을 거부했다.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그의 목을 누르고 주사를 놓았다. 매우 아프기도 했지만 그 굴욕감이 더 아팠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자신의 선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른힐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 때는 자신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한 명, 두 명 만나면서부터입니다. 한 번은 경찰 두 명과 여섯 명의 간호사가 아른힐을 붙잡고 병실로 옮겼다. 아른힐은 아이 한 명에 어른 여덟 명은 좀 비겁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때의 의사는 아른힐을 풀어주라고 했다. 하지만 여덟 명의 어른들은 아른힐이 또 자해할까 봐 놓아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사흘 동안 세 번의 자살 시도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의사는 아른힐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이렇게 느낀 자유는 아른힐에게 조금 더 살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또 어떤 간호사는 아른힐과 함께 산책을 해 주었다. 보통은 간호사가 아른힐의 손을 묶고 그 줄을 자신에게 묶어서 함께 산책하러 다녔다.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볼 때는 굴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간호사는 자해할 수도 있고 도망칠 수도 있는 자신을 믿어주었다. 줄도 풀어주었고 걸으면 함께 걷고 뛰면 잡지 않고 옆에서 함께 뛰어주었다. 그 간호사 앞에서는 자해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병원에는 유리나 사기로 된 접시나 잔이 없다. 그것을 깨서 자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어머니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넌 내 딸이다. 난 너를 믿는다” 라고 하며 가장 귀한 사기로 만든 잔에 커피를 주었다. 물론 아른힐은 그렇게 믿어주는 대로 행동했다. 며칠 전 사람들이 실험한답시고 유리잔에 커피를 따라주어 아른힐이 그들의 믿음대로 그것을 깨서 자해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반응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 자유가 나의 자존감이 됩니다. 이렇게 아른힐은 수많은 자살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덕분으로 자기를 믿어주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힘이 되어 불가능하다고만 했던 조현병을 이겼고, 공부를 하여 심리학 교수가 됩니다.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 중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유를 빼앗기면 존엄성이 빼앗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남을 통제하면서 자신들이 유용하고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려 합니다. 자신의 열등감을 남을 통제하며 극복하려고 하는 것. 그러나 그렇게 통제되는 사람들은 점점 자기가 존중받을 사람임을 잊어갑니다. 믿으면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 자유가 자존감을 만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통제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불쌍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신이 통제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법으로 예수님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율법으로 무조건 통제만 해 왔던 이들은 무엇이 옳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또 누군가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 서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나를 통제하려는 사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주는 분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은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이들 가운데서 그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습니다. 우리의 통제권을 남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바로 그 오른손입니다. 오른손은 의식을 나타냅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나의 통제권을 자아나 나를 통제하려는 사람에게 맡겨버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해 주십니다. 나를 통제하려는 것들에서 지금 이 순간 벗어납시다. 우리는 누구의 노예가 될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 자녀가 하느님 아닌 것에 통제받는 일은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폭군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햇살 가득한 주님의 사랑과 정성을 느끼며, 밝게 바라보고 귀하게 듣고, 무슨 일을 시켜도 짜증이 없고 불평이 없는 은총 가득한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가장 유능한 사람은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이다.'' - 괴테 - |
♡2386회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2월 28일(탈출기 1장~ ) 박병규는 “세상의 미움에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은 믿음의 수련기관이고, 그 기간 동안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아픔 또한 겪어 내야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뜻함》중국 노나라에 '민손'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 생모를 여의고 계모에게서 동생 둘이 태어났는데, 계모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늘 그를 학대하였다. 겨울철에도 두 동생에겐 솜을 넣은 옷을 지어 입혔지만, 그의 옷에는 부들 풀을 넣어 겉으로 보기엔 솜옷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겨울 그가 아버지의 마차를 몰게 되었는데 너무 추워서 떨다가 말고삐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에 말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채찍을 휘두른 것이 그의 옷을 스치자 찢어진 옷 사이로 부들 꽃이 풀풀 날려 나왔다. 이를 본 아버지는 그동안 아들이 계모의 학대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화난 기색으로 서둘러 방을 나서려하자 민손이 여쭈었다. ''아버님, 옷도 갈아 입으시지 않고 어딜 가시려 하옵니까?'' ''내 이제야 어미가 너를 그토록 모질게 대했음을 알았으니 그냥 둘 수 없다! 당장 내쫒아야겠다!'' 민손은 부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아버님! 어머님이 계시면 한 자식만 추울지 몰라도, 안 계시면 세 자식이 추위에 떨어야 합니다.'' 차를 내오다가 문밖에서 부자의 대화를 엿들은 계모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사랑을 ''따뜻하다'' 고 표현합니다. 따뜻함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지닌 이. 얼어붙은 마음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이는, 결국 그에 합당한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인과의 법칙인 것 같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말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나눔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 인격의 향기는 영원히 간다고 합니다. 우리 친구들의 향기가 영원하길 기도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 을 이야기하였고, 책으로 출판하였다. 성공이라는 말은 없고 삶을 효과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고 하겠다. 한국 사회는 ‘성공’ 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한 것 같다. 일곱 가지 습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였다. 우리의 판단이 순간에 머무르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옷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바른 판단을 위해 한 번 더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매 순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실 매 순간이 마지막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 안에서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많다. 코로나19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있다. 규칙적으로 걷고, 외식의 자리도 적으니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서양의 철학자 세네카는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술자리도 자주하게 되었고, 결국 건강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세네카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서 섬으로 8년간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시간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지내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명상과 독서를 통해서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정치가에서 사색과 철학으로 시대를 선도하는 철학자가 되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지냈다. 자신을 탄핵한 사람을 원망할 수 있고, 유배를 보낸 왕이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고, 많은 저술로 존경받는 학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제 더 이상 그물과 배는 제자들에게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 가 되도록 하셨다. 예수님께 소중한 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높은 자리와 권력을 달라고 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따르면서 더 높은 자리와 권력을 원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도들은 소중한 것을 알았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체험하였고, 소중한 것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전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소중한 일이었다. 율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잡는 일이 소중한 일이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잡는 일이 소중한 일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율법의 가치를 무너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체험하였고, 이제 소중한 것이 바뀌었다. 예수님께서 전해 주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박해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제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라고 고백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지금 죽는 것도 좋다고 하였다. 신앙인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쳐서 신앙을 증거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발라드린 여인은 소중한 일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오늘 하루 소중한 일은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일을 찾았다면 지금 이 순간 행동으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다..너는 나다. 우리는 그리스도이다.” 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라는 울타리 안으로 초대받아 온 우리들, 나의 작은 때문에 우리의 자존심 때문에...우리의 욕심 때문에 ‘우리’ 라는 하느님의 은혜를 내버리는 일이 없기를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성령의 능력이 채워지는 사랑의 사람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노력하는가가 문제이다.'' - 쿠베르텐 - |
♡2387회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3월 1일(탈출기 21장~ ) 생텍쥐페리는 ''부모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가족이란 늘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함께 생활하는 사람인지라 흔히 소중함을 잊고 지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곁에 없는 삶을 상상하면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낍니다. 서로 바라보고 지켜주며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 속에 홀로인 것처럼 외롭고 공허할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의미가 사라지는 것.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면 많은 재물을 모으고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즐거움이 있을까?" 비록 무심하고 뚝뚝한 남편이나 바가지와 잔소리꾼의 아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그늘이자 마음의 버팀목인 아내와 남편이란 이름은 세상 속에서 당신이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 당신의 아내와 남편에게 한세상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세요.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당신이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꿈과 소망을 함께 키우며 사랑의 동반자로 함께 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내 사람 바로 당신의 남편과 아내입니다. 어떤 분이 실수로 회사 동료의 바지에 콜라를 쏟았다.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떻게 해요? 엉덩이까지 홀딱 젖었어요.” 라고 말하자 회사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괜찮아요. 엉덩이가 조금 더 달콤해졌을 뿐이에요.” 바지에 콜라를 쏟은 사람은 이 회사 동료를 앞으로 어떻게 볼까요? 이제까지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을 것. 만약 자기 바지에 콜라를 쏟았다고 화를 낸다면 좋은 감정을 갖기는 힘들었을 것. 화내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머로 넘기는 모습에서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서로 정반대인 두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두 아들에게 일렀는데, 맏아들은 싫다고 했다가 생각을 바꿔서 일하러 갑니다. 반면 또 다른 아들은 가겠다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이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고서 이행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 처음엔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하고서 나중에 생각을 바꾼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했다. 일하러 가겠다고 하고서 가지 않은 아들은 꾸지람을 듣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녀들이 믿은 뒤에도 믿지 않았다. 이로써 그들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요한은 그들에게가 아니라 너희에게 먼저 왔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았다. 그들은 거부하지 않고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 고 하십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가정 폭력으로 상처받은 아이는 오랫동안 정신치료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한 정신과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작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은 안 오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 정신치료를 받는 아이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지요. 그 상처를 준 사람이 문제이고, 상처 준 사람의 정신을 올바르게 치료해야 할 것. 문제는 늘 피해자가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때로는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상대의 문제까지 내 문제로 끌어와서는 안 될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지금 이 순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믿음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우리들의 그 믿음으로 기도하고 사용하여 몸과 마음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을 이루어내는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다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 오드리 햅번 - |
♡2388회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 ’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3월 2일(레위기 1장~ )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언가 자꾸 반복하다 보면 우리 자신이 그것이 됩니다.'' 《화가 날 때》한 노인이 중학교 근처에 집을 샀다. 처음 몇 주는 평온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날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미삼아 못 쓰는 깡통을 차곤 했다. 그 소리를 참을 수 없던 노인은 이상한 제안을 했다. “매일 여기 와서 이 깡통들을 차주면 매주 너희들에게 각각 3000원씩 주마.” 청소년들은 매우 기뻐하며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주일 후 노인은 아이들에게 사정이 여의치 않아 1500원씩으로 줄여야겠다고 했다. 실망스럽긴 해도 아이들은 수긍했다. 어느 날 아침 노인이 깡통을 차고 있던 아이들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정이 어려워져서 지금부터는 일주일에 500원씩밖에 못 줄 것 같구나. 너희들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러자 한 아이가 “500원에 저 깡통들을 계속 차주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안 돼요. 이제 깡통 안 차줄 거예요” 라고 말합니다. 그 뒤로 노인은 조용하게 살았다. 노인이 깡통 차는 아이들로 인해 화가 났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해결했다.서로가 상처를 받지 않은 것. 우리도 화가 날 때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보면 어떻겠습니까. 중국에 에디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과 시비가 붙으면 집 주위를 세 바퀴 돌았다. 그런 다음 밭에 앉아 숨을 골랐다. “왜 화가 나면 집 주위를 도는 거죠?” 사람들이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에디바는 나이가 들고 집도, 땅도 넓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화가 나면 지팡이를 짚고 땅을 돌았다. 그 모습을 본 손자가 물었다. “연세도 많으신데 계속 땅을 도는 이유가 뭐예요?” “젊었을 때부터 다툼이 나거나 시비가 생기면 땅을 돌면서 자책했단다. 내 땅이 이렇게 작은데 남한테 화내고 싸울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말이야. 그러면 이내 화가 가라앉고, 온 열정을 일하는 데 쏟아부을 수 있었지.” 손자가 또 물었다. “지금은 부자가 되셨잖아요. 이 부근에서 할아버지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진 사람도 없고요. 그런데 왜 계속 집 주위를 도세요?” 에디바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도 화날 때가 있단다. 화가 나면 땅을 돌면서 생각하지. 내 집이 이렇게 크고 땅도 많은데 남들과 싸우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말이야. 그러면 화가 가라앉는단다.” 현대를 자기피알 시대라고 합니다. 자기를 알려야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이력을 과대 포장하고 심지어 거짓으로 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알려지는 법이고 마침내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 ’ 으로 피알시대의 의미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째든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알리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바라며 좋은 평가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주님 안에 머물면 주님께서 필요할 때 드러내 주십니다. 그러므로 묵묵히 위엄과 사랑과 믿음 안에서 피할 것 피하고, 알릴 것을 알리는 지혜를 차지해야 하겠다. 그리고 늘 의로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겠다. 어떤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리는 삶 되시길 바랍니다. 공자(孔子)가 제자와 같이 길을 가다가 나무 뒤에서 몰래 똥누는 사람을 발견했다. 공자는 그 사람을 크게 꾸짖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 며 용서를 빌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남자를 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의아하게 생각한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자가 더 나쁜데 왜 그냥 지나치십니까?" 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숨어서 똥을 누는 사람은 그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훈계를 하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자는 미친 인간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훈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라는 말씀을 담고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뭐든지 된다.’ 라는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입고 살아서 천국을 향한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나무는 그 열매로 알려지고 사람은 그 일로 평가된다.'' - 탈무드 - |
♡2389회 조건 없는 사랑은 그것 자체가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 비뚤어졌어도 올바른 길을 찾습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3월 3일(민수기 1장~ ) 체이즈는 ''회복의 유일한 길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한 사람이 조용히 기도했다. "하느님 목소리 좀 들려주세요.“ 종달새가 노래했다. 그러나 사람은 듣지 못했다. 사람이 소리쳤다. "하느님 목소리 좀 들려주시라구요!"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하지만 사람은 듣지 못했다.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느님, 모습을 좀 보여주세요."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그러나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람은 다시 외쳤다. "하느님 기적을 보여주세요!" 한 아기가 태어났다. 하지만 사람은 알차채지 못했다. 사람은 절규했다. "절 만져주세요.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자 하느님이 내려와서 그를 어루만졌다. 그러나 사람은 어깨에 앉은 나비를 귀찮아 했다. 하느님은 이렇게 작고 간단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함께 계십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말입니다. 사람은 울부짖었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따스한 위안과 좋은 소식을 담은 이메일이 도착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 메일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울부짖었다. 이렇게,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알아보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래요, 하느님은 일상 생활 중에서도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다가오시고 어루만져 주십니다. 단지 우리의 귀와 눈이 가려져서 제대로 듣고 보지 못할 뿐이지요. 귀와 눈이 열려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음성과 자취를 듣고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겠지요? 예루살렘 부인들이란 예수님께서 골고타를 향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눈물 흘리며 통곡하던 여인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녀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를 주셨다. 여인들은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신분을 알 수 없는 수산나라고 하는 여인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신 여인입니다. 유명한 죄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요안나는 헤로데의 집사였다. 권력층이었다는 뜻입니다. 수산나는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라는 것을 보면 모두 재력이 어느 정도는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제들에게도 예루살렘 부인들이 있다. 사제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여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도움’ 이 되라고 하와를 만드셨다. 그 도움은 나중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 가 되었다. 하지만 도움인 척 하면서 오히려 방해되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안 좋은 부류가 “안 돼”, “틀렸어”, “못 해”, “그걸 하겠다고? 교만하네” 라고 말하며 기를 꺾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도움을 주는 듯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자신의 제자로 만들려는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을 가까이하면 이용만 당할 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올바른 길을 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스승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다음 부류는 “내가 도와줄게”, “내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어” 라고 말하며 자신의 도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제를 다른 사제와 비교하며 자신이 도와주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은 그 사제를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모두가 사제를 칭찬해주니까 사제가 교만해지고 권위적으로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자신처럼 사제들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없어도 됩니다. 사람은 비난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바뀝니다. 참다운 도움은 ‘예루살렘 부인들’ 입니다. 조건 없는 신뢰와 도움을 주는 이들입니다. 그녀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가실 때, “그러길래, 내 말을 좀 듣지!”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확신과 어머니와 같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협력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주는 것은 물질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믿음’ 입니다. 무조건 믿어주니까 덕분에 힘이 나는 것. 어떤 이들은 무조건 믿어주다가 사제가 교만해지고, 잘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여자가 그저 “예수님의 일행” 이라고 하여 시중을 들었다고 하지, 가려가며 시중들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는 무조건 아들을 믿고 기도하여 주었다. 조건 없는 사랑은 그것 자체가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비뚤어졌어도 올바른 길을 찾습니다. 그런 사랑으로 돕는 여인들이 참으로 예루살렘 여인들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아마 그 여인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따듯함을 느끼고 힘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재산으로만 제자들을 도왔던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이 줄 수 없는 무언가가 여인들에게 분명히 있다. 아마 그것은 무조건적 사랑과 신뢰일 것. 아마 예수님께서도 골고타로 올라가실 때는 도망가버린 제자들에 비해 그 여인들에게서 더 큰 힘을 받으셨을 것. 하느님께서 아담의 도움으로 하와를 창조하셨듯이 예루살렘 부인들은 제자들과 버금가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필수적인 도움입니다. “아프고 고생스러운 것이 기도를 가르친다.”라는 말씀으로 희생과 보속의 사순시기를 축복되게 보내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목표가 미래의 당신을 결정해 준다.'' - 줄리어스 어빙 - |
♡2390회 “누가 가장 큰(높은) 사람이냐?”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3월 4일(민수기 21장~ ) 지그 지글러는 ''겁쟁이 세일즈맨의 자식들은 굶는다.'' 《감사의 조건》우리에게 감사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사의 조건은 우리가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조건일 것. 하지만 신앙인에겐 그 어떤 조건보다도 앞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나를 자녀삼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부나 명예와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사랑을 내가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사의 조건을 지금 이 순간 찾고 계십니까? 채우고 또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감사의 조건들이 아닌 주님 한 분만으로 채워지는 감사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교만’ 은 그 자체로도 죄가 되지만, 더 큰 죄로 이어지는 ‘죄의 씨앗’ 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업신여김으로써 사랑을 거스르는 죄, 하느님과 같아지고 싶어 하는 신성모독죄 등이 바로 그 ‘더 큰 죄’ 입니다. 사탄은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느님처럼 된다고 유혹했다.(창세 3,5) 인간들은 하느님처럼 높아지고 싶은 욕심으로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창세 11,4) 사도들이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하거나 자리다툼을 한 일이 있는데, 그런 논쟁과 다툼은 명예욕, 교만, 우월감 등에서 생긴 잘못된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겸손’ 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하셨다. ‘겸손’ 은 이웃 사랑 실천에 직결되는 ‘덕’ 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의 기본자세’ 이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나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나는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다.” 라고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구원받으려면 하느님과 예수님 앞에서만 겸손하면 되겠다.” 생각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하지 않다면(교만하다면), 그것은 ‘가장 작은 이’ 와 당신을 동일시하신 예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하느님과 예수님 앞에서만 겸손한 것은 사실상 ‘거짓 겸손, 위선’ 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46-48) “누가 가장 큰(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제자들이 논쟁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모두 “나는 너희들보다 높다.” 라고 자기를 높이는 교만, 동시에 “너희들은 나보다 낮다.” 라고 다른 제자들을 낮추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자기를 높이는 것도 잘못이고, 다른 사람을 낮추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자기들끼리만 다투고 예수님 앞에서는 겸손하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 말씀을 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가 그것을 반박했다가(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말렸다가) 혼난 일이 있는데, 그때 베드로 사도가 했던 말은 겸손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예수님께서 판단을 잘못하고 계신다고 나무라는 말이고, 동시에 자신의 판단이 옳으니 자신의 충고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감히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하는, 제자의 본분에서 많이 벗어난 교만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꾸짖으셨다.(마태 16,23) 베드로의 말과 행동이 사탄의 그것과 같다는 뜻이고, 또 제자의 본분을 지키라는 가르침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 는 “내게서 떠나라.” 가 아니라, “내 뒤로 가라.” 이고, “제자의 본분을 지키면서 스승의 뒤를 따라라.” 라는 뜻입니다. 배반자 유다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때(요한 12,3), 유다는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라고 비난했다.(요한 12,5) 유다의 말은,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재물을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비난인데, 이 비난은 마리아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행동을 내버려둔 예수님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유다는 감히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한 것. 유다가 도둑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기록했는데(요한 12,6), 어떻든 유다의 태도는 교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요한 13,16)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40)라는 말씀이 있다. 제자는(신앙인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고, 예수님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예수님 앞에 서서 예수님을 인도하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만죄이고, 신성모독죄입니다. 그 죄를 짓지 않으려면 예수님 앞에서도 겸손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보다도 더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가르침은 곧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곧 하느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진심으로, 또 진실하게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을 높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만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 때에도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루카 22,24)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신 다음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7) 예수님께서 ‘섬기는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에 계신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이 ‘낮춤’ 과 ‘섬김’ 을 실천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희망(꿈)은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능히 될 줄을 믿고, 축복을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이 거룩한 백성인 우리들의 품에 담아 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명언 💖💖💖 "회복의 유일한 길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체이즈 - |
♡2391회 ''행복은 누가 갖다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부딪히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가 - 만들어 가는 창작품입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5년 3월 5일(신명기 1장~ ) 헬렌 켈러는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인생에는 뜻밖의 일이 많습니다. 한 가지 일이 잘 안 될 때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실패에 너무 집착하여 새로운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면 새로운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일곱 가지 행복》행복이란 위를 쳐다보면서 절망하지 않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교만하지 않고 오늘을 감사하면서 내일의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마음에서 자리를 잡고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의 온상이 되어 가족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하여 신뢰의 열매를 맺어야 행복해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일곱 가지 행복(Seven happy)을 가정에서 실천해 봅시다. " Seven happy " 첫째 : Happy look 부드러운 미소,웃는 얼굴을 간직하십시오. 미소는 모두를 고무시키는 힘이 있다. 둘째 : Happy talk 칭찬하는 대화, 매일 두 번 이상 칭찬해 보십시오. 덕담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밧줄이 됩니다. 셋째 : Happy call 명랑한 언어, 명랑한 언어를 습관화하십시오. 명랑한 언어는 상대를 기쁘게 해줍니다. 넷째 : Happy work 성실한 직무, 열심과 최선을 다하십시오. 성실한 직무는 당신을 믿게 해줍니다. 다섯째 : Happy song 즐거운 노래, 조용히 흥겹게 마음으로 노래하십시오.마음의 노래는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여섯째 : Happy note 아이디어 기록,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십시오. 당신을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 것. 일곱째 : Happy mind 감사하는 마음, 불평 대신 감사를 말하십시오, 비로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행복은 누가 갖다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부딪히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가 만들어 가는 창작품입니다. 내가 그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 생활에서, 내 가정에서, 내 직장에서, "Seven happy" 를 실천해 봅시다. 행복이 물밀듯 그대 마음과 가정에 찾아들게 될 것입니다. - 작자 미상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배부른 사람들!"(루카6,20.25) '행복선언' 과 '불행선언'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행복의 기준이 크게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지금 부유하고,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고, 지금 칭찬 받는 일인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불행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행복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지금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복선언입니다. 하지만 이 행복선언 앞에다 '예수님' 이라는 거룩한 이름과 '영원한 생명' 을 붙여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 때문에 가난하고, 예수님 때문에 굶주리고, 예수님 때문에 울고,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영원한 생명 때문에 가난하고, 영원한 생명 때문에 굶주리고, 영원한 생명 때문에 울고, 영원한 생명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지금 여기에서가 아니라, 죽음 저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1코린7,29) 사도 바오로는 이 세상 형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죽음의 때와 종말의 때!' 인간적으로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때이지만, 이는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모두에게 주어진 '결정적인 때' 입니다. 이 결정적인 때 앞에서, 지금 부유하고,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고, 지금 칭찬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지막 때에 기뻐할 수 있도록 오늘도 화이팅 합시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힘을 쓰고 살아가면서, 오늘도 좋고, 내일은 더 좋아지는 축복된 하느님의 거룩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도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 소포클레스 - |
'성령기도회 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92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고 악마는 복채를 챙깁니다, ''오늘 가난 때문에 힙겹습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 (0) | 2025.03.06 |
---|---|
2025.2.24 이한기 요셉 신부-내 멍에는 편하고 내짐은 가볍다 (0) | 2025.02.26 |
25.4기도공동체 성가외우기 (0) | 2025.02.15 |
♡2372회 ''지혜의 스승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잠깐 브레이크를 잡으라고 - 외칩니다.'' ♡ (2) | 2025.02.14 |
기도공동체 성가외우기 25.3 --박혁호 미카엘 신부 ,회개와 은총의 삶 (0) | 2025.02.13 |